사회

[최보식이 만난 사람] "사립유치원장이 전부 '루이뷔통' 아니다.. 억울함으로 불면에 시달려"

최보식 선임기자 2018. 11. 1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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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랜턴'을 착용한 국감 證人.. 김용임 사립유치원 원장
/남강호 기자

사립 유치원이 온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됐을 때 김용임(61)씨는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녀는 전북 익산에서 '리라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국감장에서 헤드랜턴을 착용하며 "새벽부터 이렇게 불을 켜고 유치원 마당에서 일한다. 저처럼 일하는 원장이 많다. 사립 유치원장이 전부 '루이뷔통'은 아니다. 불쌍하게 봐달라"며 울먹였다.

언론 매체마다 헤드랜턴을 착용한 그녀의 별난 모습을 보도했다. 조롱과 냉소를 담았다고 할까. 일종의 쇼처럼 봤던 것이다. 주말에 그녀와 통화가 됐다.

―국감장에서 헤드랜턴을 뒤집어썼지요. 평소 착용해본 적 없으면서 쇼를 했다고 하더군요. 설령 일출 전에 일해도 실외 전등을 켜면 되는데 무슨 랜턴을 씁니까?

"우리 유치원 주위는 모두 논밭입니다. 밤에 환하게 전깃불을 밝히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주민들이 싫어합니다. 수확기에는 가로등도 꺼버려요. 실제 유치원에서 일할 때는 헤드랜턴이 아니라 큰 랜턴을 씁니다. 국회 안으로 큰 랜턴을 들고 갈 수는 없었어요. 우리 같은 원장 처지를 알리려 마음 졸이며 호주머니에 헤드랜턴을 넣어 갔던 것인데…."

그녀의 말투에서 한 점 꿀릴 게 없다는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헤쳐온 삶이 그랬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녀는 동생 넷을 떠맡은 소녀 가장이었다고 했다. 학교 급사로 일하며 야간 중·고교를 마쳤다. 결혼한 뒤 웅변 학원을 하면서 전문대 유아교육과 야간을 다녔다. 그 뒤 4년제 대학에 편입했다. 1988년 유치원을 열었고, 야간에는 석·박사과정을 병행했다.

"당시만 해도 익산에는 유치원이 없을 때여서 잘됐습니다. 새벽에 줄 서서 입학할 정도로 원생 수가 300명쯤 됐습니다. 10년쯤 지나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뛰놀아야 한다. 좋은 환경을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골에 들어와 지금 건물을 지었습니다. 유치원 부지로는 은행 대출을 못 받게 돼있어 건축·시설비를 모두 개인 신용과 아파트 대출로 마련했습니다."

익산 시내에서 좀 떨어진 그녀의 유치원은 대지 800평에 건평 250평이다. 규모는 커졌지만 요즘 원생 수는 35명이다.

"꿈의 유치원을 지었지만, 시골이다 보니 이쪽으로 옮겨오면서 원생 수가 절반 줄었습니다. 5년 전부터 익산 인구가 급감하면서 타격이 컸습니다. 원생 35명에 수업료 43만원을 곱하면 그게 유치원 전체 수입입니다. 여기에 교사 5명, 기사 2명, 요리사 1명의 인건비를 빼보세요. 매달 관리 운영비는 7백만원 듭니다."

―원장님은 봉급을 얼마 갖고 갑니까?

"제 봉급은커녕, 아파트를 팔고 보험 약관 대출을 받아서 매달 800만원씩 유치원에 메꿔 넣고 있어요. 3년째 이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저만 이런 형편이 아닐 겁니다. 원생 수가 60명 이하인 유치원은 수입이 마이너스입니다. 전체 사립 유치원은 4000곳인데, 원생 100명 이하 유치원이 절반쯤 됩니다."

―적자인데 계속 해오고 있다는 겁니까? 자선 단체도 아니고 믿기지 않군요.

"남편이 살아있었으면 '대출받아서 왜 미친 짓 하느냐'고 말했을 테고 그때 문을 닫았을 겁니다. 저는 정말 소명 의식을 갖고 해온 거예요. 제 아들에게 유아교육학을 전공시킨 것도 물려주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면 엄마가 해온 일을 인정받는 거잖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가족 경영을 못 하게 한다는 거예요."

김용임 원장은 “마녀사냥이 벌어지면 당사자로서는 어떻게 항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 있는 유치원에서. /신현종 기자


―아들이 유치원 교사로 있습니까?

"거의 봉급도 없이 보조 교사로 도와주고 있어요. 가족이 희생해주지 않으면 유치원 운영이 어려워요. 이런 와중에 박용진 의원이 사립 유치원을 비리 집단으로 싸잡아버렸어요. 국민 세금을 빼돌려 외제차와 명품백으로 치장하는 무리로 낙인찍었으니 더 이상 유치원을 할 의욕이 다들 없어졌어요."

―국민 세금 낭비를 감시하는 국회의원으로서는 마땅히 자기 할 일을 한 것이지요.

"본인은 사회 정의라고 주장하겠지만 정작 유치원 현실이 어떤지 아무것도 몰라요. 그게 회계 부정이라고 한다면 사법적으로 따져보면 될 일이지, 저렇게 사립 유치원 전체를 비리의 온상처럼 선동하는 게 교육 현장을 위해 옳은가요. 학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일순간에 다 무너졌어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요. 유아 교육에 자기 나름대로 헌신해왔다는 원장들의 자존감이 어떻겠습니까. 고개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만들었어요. 억울함과 스트레스로 불면에 시달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원장도 많습니다. 저는 박용진 의원에게 손해배상을 받고 싶어요."

―그곳 유치원 학부모들도 그런 시선으로 원장님을 봅니까?

"여기는 제 사정을 다 아니까, 오히려 국감장에 나가서 악성 비방을 들은 것에 대해 걱정했어요."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사립 유치원의 비리 적발 건수가 굉장히 많더군요.

"단순 행정 착오와 서류 미비가 대부분입니다. 가령 유아 도서의 목록을 정리 안 해도 그런 적발 건수에 포함됐으니까요."

―사안의 핵심은 국민 세금인 정부 지원금을 줬는데 유치원 원장이 자기 쌈짓돈처럼 썼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국민이 분개한 것 아니겠습니까?

"2012년부터 정부의 누리과정 지원금이 들어왔습니다.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해줘야 하는데 행정 편의상 유치원에 29만원씩 입금한 겁니다. 저희 유치원 수업료가 43만원이므로 학부모에겐 14만원만 받아요. 유치원 입장에서 보면 그전에 학부모에게 수업료를 다 받을 때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정부 지원금은 유치원 교육 용도로 써야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까?

"정부 지원금을 주면서 '통장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라. 앞으로 감사를 받게 된다'는 지침이 없었어요. 그러니 통장 하나에 정부 돈과 학부모 돈이 섞여 있는 겁니다. 돈에 무슨 표시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듬해부터 몇몇 대형 유치원에 대한 감사에서 통장 지출 내용을 따져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부터 통장을 별도로 하고 정부 지원금 사용에 유의해야 하지 않았나요?

"원장들은 유치원 건물과 시설에 수십억원을 집어넣었어요. 개인적으로 이자 빚도 갚아야 하는 겁니다. 정부가 해야 할 유아 교육을 자기가 대신 하고 있으니 수업료 중 일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마음도 있는 거죠. 그전처럼 학부모에게서 수업료를 모두 받았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 거죠. 이는 서울과 경기도 등 원생 수가 많은 유치원 얘기이지, 우리 같은 경우는 수입 자체가 없어 빼갈 수도 없어요."

―정부 지원금으로 루이뷔통 핸드백과 성인용품까지 구입했다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살 만하지요.

"통장이 하나로 돼있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녀사냥이 벌어지면 당사자로서는 어떻게 항변하겠습니까. 그 원장님 말로는 '유치원 운영에 절대적 공로가 있는 원감(園監) 생일에 120만원짜리 백을 사줬다'는 겁니다. 또 콘돔에 대해서는 아들이 모르고 유치원 통장 카드로 1만5000원 결제했다고 하더군요."

―요란했던 루이뷔통과 성인용품 구매가 같은 유치원 사례였군요.

"그 원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울더라고요. 내가 국감에서 유치원장들의 심정을 대변해줘 고맙다고요. '헤드랜턴'이 화제가 되면서 '루이뷔통' 얘기도 들어갔으니까요."

―그 원장에게 뭐라고 말해줬습니까?

"저도 그런 원장님에게 화가 나요. 루이뷔통 때문에 이 난리 지경이 됐으니…. 그런 말은 못 하고 안쓰럽더라고요. 보도를 보니까, 학부모 앞에서 이분이 무릎 꿇어 빌고 그 옆에 아들은 고개 숙이고 서 있었어요. 그 장면에 저는 미치겠더라고요. 제가 '잘못을 해도 원장님 잘못이지, 왜 아들을 학부모 앞에 세웠나. 우리 아들은 유치원에서 풀 베고 잔디 깎고 머슴처럼 일하는데'라고 했어요."

―이번 사태가 있은 뒤 소위 '박용진 3법'이 제출됐지요. 주말에 젊은 학부모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몰려가 '박용진 3법 통과'에 협조하라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사립 유치원의 재무 회계를 좀 더 투명하게 할 필요는 있겠지요.

"사립 유치원은 사재(私財)로 모든 걸 부담했고 책임져왔습니다. 운영난에 처했다고 해서 정부가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사립 유치원의 모든 재무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겁니다. 지금껏 대다수 유치원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설립자가 원장을 겸했는데, 이제 원장과 설립자를 분리하는 법인 형태로 하겠다는 겁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집어넣은 설립자는 유치원 수입을 한 푼도 못 가져가도록 막겠다는 겁니다. 이런 재산권 침해를 마치 정의인 양 밀어붙이려는 겁니다."

―박용진 의원은 "감사받는 게 싫고 돈을 벌고 싶으면 학원을 하라"고 말한 적 있지요.

"운영이 어려운데도 마지못해 부여잡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위로는 못 해줄망정…. 이런 발언 자체가 사립 유치원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겁니다. 부지 용도가 유치원으로 특정된 곳은 학원으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많은 유치원이 아예 문 닫기를 원해요. 하지만 정부는 폐원을 못 하게끔 거의 협박하고 있습니다."

―폐원하려 해도 학부모 3분의 2 동의나 정원 미달, 원장의 건강 문제에 한해 가능하게 되어 있더군요.

"학부모와 원장 간에 신뢰가 무너졌는데, 교육부에서는 '폐원도 하지 말고 계속 운영해라. 만약 폐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치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나쁘지만 계속 배워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겠다면 비싼 세금 들여 새로 짓지 말고 차라리 사립 유치원을 시가로 매입해줬으면 합니다. 이 상태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의욕도 운영할 능력도 없으니까요."

여론 몰이의 광풍은 그 속에서 실제 어떤 일이 있어 왔는지, 아픔과 힘겨운 분투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대부분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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