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이도저도 아니어서 해촉됐다?

이하늬 기자 2018. 11. 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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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에서 해촉된 전원책 변호사가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입장발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내에 (전원책 변호사와)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친박계로 분류되는 자유한국당 한 초선의원의 말이다. 해당 의원만이 아니다. 한국당 곳곳에서 “전 변호사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내 인사들은 이를 전 변호사 해촉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이런 와중에 전 변호사는 6~7월 전당대회를 주장했다. 이를 두고 비박계로 불리는 ‘복당파’에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친박계로 불리는 ‘잔류파’ 역시 6~7월 전대는 위험부담이 적지 않다. 인적 쇄신 전권을 가진 전 변호사가 마치 친박계 의원들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 해촉과 관련한 한국당 속내를 들여다봤다.

복당파, 김성태 당대표 만들기?

복당파에서 주목할 인물은 김성태 원내대표다. 원내대표 임기는 오는 12월 11일까지다. 김 원내대표는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원내대표 임기가 종료되면 본격적으로 전당대회를 준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파다하다. 원내대표를 마무리하고 당대표에 출마하려면 2월 전당대회가 적절한 시기다.전당대회가 내년 6월이나 7월로 미뤄지게 되면 잔류파가 대오를 정비할 시간을 벌게 되고, 이들이 지지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입당할 여지도 적지 않다. 황 전 총리의 입당은 한국당의 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복당파가 6~7월 전당대회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실제 김 원내대표는 당대표를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비박이지만 탈당한 적이 없는 강석호 의원을 챙긴 것이 대표적이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후반기 원 구성에서 강 의원을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강 의원이 2017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지원’이라는 평가다.

잔류파 입장에서도 ‘김성태 당대표’는 나쁘지 않은 카드다. 복당파의 대표수장은 김무성 의원이다. 김 의원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따라서 사실상 김 의원에게 남은 건 당대표에 당선돼 공천권을 가지는 것뿐인데, 잔류파는 ‘김무성 당대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잔류파 입장에서 김성태는 차악인 셈이다.

전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영입됐다. 영입주체는 대부분 복당파로 구성된 당 지도부와 비상대책위원회다. 한 재선의원은 “전 변호사가 바른미래당과 합당을 이끌면서 합리적 보수 색깔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며 “이 과정에서 탄핵정국에 책임이 있는 친박계 수장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복당파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강특위 위원으로 위촉되자마자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을 두고 “전 대통령이 구속돼 반론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재판이 연일 계속되는데 이를 따진 의원이 있었느냐”고 말했고, 태극기부대를 두고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고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추락한 국격을 걱정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십고초려’ 끝에 전 변호사를 영입한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진화를 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김 위원장은 “(전 변호사가) 개인적 학자 또는 변호사로서 피력하는 게 있고 조강특위 위원으로 입장을 피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구분이 잘 안돼 혼란이 많은 것 같다”며 “저 같은 사람은 (다르게) 느껴지는데 국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해촉 계기로 반격 시도하는 잔류파

그렇다고 전 변호사의 존재가 잔류파에 유리하게 작용한 건 아니다. 6~7월 전당대회는 이미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잔류파 중진의원들에게는 좋을 게 없다. 전당대회 개최 시기가 늦어진다는 건 그만큼 복당파 인물들로 구성된 비대위가 길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잔류파 중에서는 정우택 의원이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 변호사가 전권을 가진 인적청산도 마찬가지다. 전 변호사는 계파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영남권이나 수도권 가운데 강남에서 편하게 지낸 다선들은 험지로 나가라” “(외부에서) 들꽃 같은 분들을 모시겠다”는 등의 발언은 잔류파에게 반갑지 않았다.

한 친박계 초선의원은 “의원은 물론이고 당협위원장 다수가 사실상 박근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천을 받아 배지 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라며 “조강특위가 인적청산에 계파는 없다고 했지만 같은 비율이라고 한다면 잔류파가 수적으로 훨씬 많이 청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잔류파 의원들은 이번 해촉을 김병준 비대위를 공격할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초·재선 모임에 참석한 정용기 의원은 “전권을 준다고 영입해온 분에게 그렇게 했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김병준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완수 의원도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활동 성과를 당원과 의원들 앞에 공개해야 한다”며 “그 성과를 당원이 수용한다면 2월까지 마무리해도 괜찮지만 수용하지 못한다면 2월까지 가지 않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대위 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잔류파들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전 변호사는 한국당에 필요한 인물이었는지는 몰라도 한국당 의원들이 필요로 하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재선의원은 “전 변호사는 자신이 계파가 없어서 조강특위를 잘 이끌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정치는 다르다”며 “계파가 없으면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보호받지도 못한다”고 이번 사태를 평가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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