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크면 2만원 더 비싸요" 돈없으면 창문없는 집

안동현 인턴 기자 2018. 11.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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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커지는 주거격차]①소득격차..매입임대주택 같은 취약계층 주거복지 대책 마련해야

[편집자주] ‘주거격차(House Divide)’가 커지고 있다. 2009년 6597개였던 고시원은 2017년 1만1892개로 급증했다. 경제적 양극화와 천정부지의 집값은 저소득계층을 고시원과 같은 취약지구로 내몰았다. 부동산 현장에선 방쪼개기와 같은 불법증축이 성행했다. 건물주는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고, 세입자의 안전은 외면당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정보를 몰라 기회를 놓치는 취약계층도 많았다. 머니투데이 더300이 ‘소득격차, 안전격차, 정보격차’라는 키워드로 ‘주거격차’ 현실을 짚어봤다.

15일, 대학동 종점 앞 전봇대에는 고시원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었다.

대한민국 ‘고시촌의 성지’로 일컬어졌던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 인근. 지난 15일 찾은 이곳엔 고시원 간판이 눈에 가장 많이 띄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동네의 명성과 상권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고시원이 많았다. 문제는 고시생이 없는 고시원, 즉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빈 방을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1인 가구가 채웠다는 것.

이날 오전 501번 버스를 타고 종점 ‘한남운수대학동차고지’에 내렸다. 차고지 앞 전봇대에는 고시원 전단지들이 줄줄이 붙어있었다. 안내전화를 걸어 한 고시원을 방문했다. 방 값은 17만원부터 20만원까지였다. 창문이 작은 방은 18만원, 큰 방은 20만원이었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생명을 담보하는 창문에는 가격이 매겨졌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당시 몇몇 피해자들은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지만, 창문이 없던 방에 살았던 거주자들은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관리인 이 모씨는 "보증금과 입실계약서는 일체 없다"며 "당장 입금하면 오늘부터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1개월 살기도하고, 1년 넘게 살기도 하면서 많이 다녀갔다”며 "고시원 주변 음식점은 한 끼가 4000원을 넘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어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창문이 있는 방은 18만원, 그보다 큰 창문의 방은 20만원이었다.


◇IMF이후 소득격차, 주거취약계층 양산=지난 8월 ‘주택연구’란 책자에 실린 논문 ‘고시원 공급·운영관리 실태와 향후 정책 방향’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늘어난 경제적 양극화, 가족 해체와 약화,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노인 빈곤 문제 등은 고시원 수요 증가의 복합적 원인이었다.

소득에 따라 주거 환경도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얘기다. 대학동에서 거주한 기간이 30년이 된다는 박 모씨(50)는 “IMF이후 고시촌에 서울대생이나 고시생들이 아닌 직장인들, 일용직 노동자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1970년대,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같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시설로 설립됐던 고시원은, IMF가 터진 이후 집을 잃은 사람들의 생계형 주거지로 급변했다. 지난 1981년도에 이사와 현재 방앗간을 운영 중인 김용원씨(67) 또한 “2000년대 이후 학생뿐만 아니라 일용직, 실업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 '2018년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고시원 수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급증했다. 2009년 6597개였던 고시원은 2011년 1만191개, 2017년 1만1892개로 꾸준히 늘었다. 또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처럼 주택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비주택’의 수는 2010년 12만8657가구에서 2015년에는 39만1245가구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IMF를 기점으로 심화됐고, 2009년 이후에도 계속 악화돼왔다”며 “소득 하위층이 늘어나고 주거비용이 상승한 것이 고시원과 같은 저렴한 주택이 늘어난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여 진다”고 진단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고시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2018 소방청 통계연보)


◇계속되는 화재사건, 매입임대주택 같은 근본적 대책 필요=한 층에 20여 객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낙후된 건물이 많은 고시원은 화재에 취약하다. 2003년 1월 서울 사당동 고시원 화재(1명 사명), 2004년 1월 수원 마이홈 고시원 화재(4명 사망), 2008년 7월 경기도 용인 타워 고시텔 화재(7명 사망, 10명 부상) 등, 2000년 이후 고시원 화재 사건은 빈발했다.

정부는 이에 2009년 고시원을 PC방, 노래방과 같은 다중이용업소에 포함시켜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 안전예방을 강화했다. 또 저소득층을 위한 매입임대 주택 확대를 발표하는 등 주거 환경 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복지 대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고시원들은 굉장히 열악한 구조이기 때문에 아무리 안전설비를 갖춘다고 해도 절대 안전한 주거공간이 될 수 없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나(LH) 서울주택토지공사(SH)가 일반 다가구를 매입, 신축해서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주거시설을 알선하는 매입임대주택이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아직 그만큼의 물량이 확보되지 못했고, 2019년 예산안에도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게 담기지 않았다"며 "민간임대시장에 진출할 수 없는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주거복지가 강화돼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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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인턴 기자 pikapika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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