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닌, 개천을 살기 좋게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화제의 책]
[경향신문] ㆍ비커밍
ㆍ미셸 오바마 지음·김명남 옮김
ㆍ웅진지식하우스 | 564쪽 | 2만2000원

“도널드 트럼프를 용서하지 않겠다.”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의 첫 자서전을 보도하는 뉴스에는 이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달렸다. 미셸의 “용서 못해” 발언은 트럼프가 틈날 때마다 남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출생지에 관한 음모론을 제기해온 것을 비판하는 가운데 나왔다.
설마 하니 백악관을 나온 뒤 처음 펴낸 책에서 분노만을 쏟아냈을까.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고 외쳤던 그다. 미셸이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은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는 “내 인생에 공직 출마는 없다”고 거듭 공언했지만, 연설 하나로 단숨에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지난 14일 전 세계 31개 언어로 동시 출간된 <비커밍>은 분노만 담겨있을 것이란 우려를 말끔히 지워낸다. 책은 솔직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품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인 미셸의 인생 스토리는 일견 익숙하다. 하지만 책은 시카고 빈민가 사우스사이드 출신의 흑인 여성이 막강한 자리에 올랐다는 식의 ‘성공 신화’가 아닌, 그 이면의 내적 갈등과 투쟁, 고통과 상처까지도 주저 없이 드러낸다.
미셸은 헌신적인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친 어머니 밑에서 단단한 성품을 만들어간다. 열 살이 된 그에게 “인생의 숙제를 직감”하게 만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탐독하며 또박또박 말하는 방법을 익힌 그에게 또래 친척 아이가 “왜 백인 여자애처럼 말해?”라고 한 것이다. 그는 “내 출신과 내가 바라는 미래를 내 정체성과 조화시켜나가야 할 터였다”고 말한다.
시카고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마친 그에게 또 다른 전환점은 버락과의 만남이다. 변호사 시절 인턴으로 온 버락은 그의 인생 궤도를 통째로 바꿔놓는다. 첫 만남부터 두근거리는 연애의 시작, 결혼 과정까지 버락에 대한 묘사에는 애정과 존경이 듬뿍 묻어난다. 미셸은 버락을 지켜보며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임신이 쉽게 되지 않아 겪은 어려움을 처음으로 털어놓는가 하면,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의 고충을 상세하게 털어놓는다. 남편이 본격적인 정치인생에 뛰어들고 난 뒤에는 가정의 실질적 리더가 된다. 소수자로 부당한 공격을 받기도 했던 대선 과정, 아동 비만 근절·소녀 교육 등 퍼스트레이디로서 주력했던 의제들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다.
낙관주의로 똘똘 뭉친 그는 “우리 모두 서로를 초대하여 받아들이”면 “덜 두려워할 수 있을 테고, 덜 속단할 수 있을 테고, 쓸데없이 우리를 갈라놓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식 이상주의가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해외 출판계는 미셸이 장장 7시간여 동안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 버전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셸이 남편만큼이나 연설 무대에서 강한 흡인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육성으로 한번 더 책을 만나고 싶어 할 것 같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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