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현대차에 毒인가 藥인가

김우보 기자 2018. 11. 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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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줄어 가격경쟁력 높아지지만
근로조건 개혁 없을땐 '독이 든 성배'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14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주요 자동차 완성차·부품업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를 열고 환경규제 부담 완화, 노사관계 선진화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일거리가 감소한 부품 업계는 대출 만기 연장과 기존 대출 금리 유지, 장기저리의 설비투자·운영자금 확대 등을 요청했다. 정진행(오른쪽부터) 현대차 사장, 박한우 기아차 사장,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차 사장이 성 장관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두고 현대자동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자동차 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는 결정이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에 떠밀려 무턱대고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현대차 나름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막판까지 합의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차가 납득할만한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에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조건이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광주형 일자리가 현대차의 발목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기존 자동차 생산직 연봉의 절반 수준을 주는 공장을 새로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다. 광주시가 최대 주주로 참여해 각종 후생·복지비용까지 지원하면 현대차는 2대 주주로 차량 개발·생산기술 등을 지원한다. 현대차는 기존 현대차 공장 인건비의 3분의1 정도를 부담해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이전과 다른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근로조건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勞 밥그릇지키기에 극렬 반대 ‘단체협약 5년 유예’ 번복 등 광주시 전제조건 갈팡지팡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근로조건을 못 박기 위해서는 주체인 광주시의 명확한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광주시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3월 ‘5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협상 유예’ 등의 내용이 담긴 방안을 만들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임금 인상 요구에 발목 잡힌 현대차로서는 신규 투자를 위한 최소 전제조건이었다. 기대와 달리 광주시는 최근 ‘단체협약 5년 유예’를 번복하고 ‘최소 생산물량 약속’ 등을 현대차에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압력에 광주시가 한발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노조의 반대 이유는 명확하다. 표면적 이유는 경차 시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에서 생산될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오히려 국내 자동차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연봉 3,500만원가량을 주는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면 더 이상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노조의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는 2021년 이후 해마다 2,000명 이상 정년퇴직이 예정된 현대차 노조 입장에서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은 기존 사업장의 신규 채용을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노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 역시 노조 눈치를 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를 받아들일 경우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돈을 대는 투자자인 현대차가 오히려 말하기를 꺼린다. 1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주최한 한 토론회에 참석한 정진행 현대차 사장도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광주시에 물어보라”고 할 정도다.

현대차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자 재무적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광주 완성차 공장 합작법인 설립에 들어갈 총 투자 규모(7,000억원) 중 자기자본은 2,800억원이다. 이 중 광주시가 지분의 21%(590억원)를, 현대차가 19%(531억원)를 분담하고 나머지 60%(1,680억원)는 재무적투자자를 모집해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투자자 모집이 어렵자 광주시는 산업은행의 정책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참여하게 되면 ‘광주형 일자리’는 사공이 하나 더 늘 뿐 아니라 ‘준공기업’의 성격을 띠게 돼 고질적인 국내 차 산업의 ‘고비용’ 생산구조를 바꾸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떠밀려 참여땐 최악 상황으로 “노동유연성까지 검토해야”

이미 현대차가 생각하던 전제조건이 흔들리고 있고 처음 구상과도 달라진 상황이다. 안팎의 압력에 떠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현대차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이 된다. 업계에서는 얽힌 매듭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하면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에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 모델로 자리 잡으면 현대차를 넘어 국내 제조업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나이를 먹으면 생산성과 상관없이 임금이 올라가는 체제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하고 노동 유연성까지도 과감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생산성 저하로 시름에 잠긴 현대차에 약이 되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2015년 글로벌 801만3,001대로 정점을 찍은 현대차의 생산량과 판매량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 현대차의 판매량은 730만대 수준이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127만2,55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28만6,031대)보다 1.0% 정도 줄었다. 수출도 198만여대로 6.0% 감소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수요가 줄어드는데다 수익성 지표까지 악화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생산능력을 더 확대하려고 하는 셈이다. 현대차는 2015년 목표였던 820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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