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북한과 중국이 혈맹이라구? 북중관계의 흔한 오해

강민수 입력 2018. 11. 14. 11:34 수정 2018. 11. 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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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중 관계가 무슨 혈맹입니까?"

북한 김정은이 올해 세번 연거푸 중국을 방문한 이후 우리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북중 혈맹', '북중 관계 회복' 등이다. 북한과 중국은 마치 한국과 미국처럼 특별한 동맹 관계일 것이란 막연한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중국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북중 관계가 무슨 혈맹입니까? 북중 관계가 복원됐다는데 도대체 뭐가 복원이 됐습니까?" 중국 학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북중 관계에 대한 흔한 오해들이 있다.

북중 접경 단둥의 마오쩌둥과 펑더화이 동상


□ 항미원조(抗美援朝)에서 '원조'는 절반의 진실

한국전쟁, 6.25전쟁의 중국식 표현은 항미원조 전쟁이다.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돕는다는 뜻이다. 북중관계가 혈맹이란 표현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북중관계 전문가인 화동사범대학 국제냉전사 센터 주임인 션즈화 교수는 "항미원조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앞부분의 항미! 미국에 대항한 것은 진실이지만, 뒷부분의 원조! 북한을 돕는다는 것은 결과적 진실일 뿐 당초 중국의 의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베이징대학 김동길 교수의 2015년 논문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과정 고찰:중국 국방선의 무혈 확장>을 살펴보자. 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정치국 긴급 회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소련에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보낸 비밀 전보를 확보해 분석한 것인데 내용이 충격적이다. "1950년 10월 13일 미군이 평양~원산에서 진격을 멈출 것이라는 펑더화이(彭德懷)의 주장에, 마오쩌둥은 파병을 결정하였다. 싸우지 않고 북한 북부지역을 확보하여 중국 국방선을 압록강에서 평양 이북지역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파병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61년 조약 체결 당시 김일성과 저우언라이


□ 사문화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1961년 북한 김일성과 중국의 저우언라이는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다. 조약 2조에는 "체약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하게될 경우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돼 있다. 3조에는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떤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로 사실상 이 조약은 파기됐다. 1990년 중국 랴오닝 선양을 방문한 김일성이 덩샤오핑에게 "소련도 배신했다. 중국은 배신하지 마라!"고 하자 덩샤오핑은 "무역대표부만 설치한 것 뿐이다."라고 안심시켰지만 2년 뒤 수교를 단행 했다. 태영호 전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증언에 따르면 "한중 수교가 이뤄졌을 때 북한 외무성 성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중국은 이후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에 동참했했다. 지난해 북미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중국 내에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한적 공습에 나설 경우 중국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 北, "일본은 백년의 적이요 중국은 천년의 적이다."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만났다. 핵개발에 얼마가 들었냐는 김일성의 질문에 마오는 "조선은 핵무기를 가질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았다. 김일성은 북한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앞으로 핵무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며 분해했다.(태영호 증언)

2014년 7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북한은 매우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당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지 꽤 됐지만 중국은 핵개발을 이어가던 북한을 외면하고 한국과의 교류만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북한 군부에서는 "중국은 천년의 원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후 중국이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자 "일본은 백년의 원수요, 중국은 천년의 원수다"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 이해관계에 기초한 선별적 협력관계

주로 북한이 당한 것 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중국을 불신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이 크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을 때, 한국보다도 미국보다도 더 못믿겠다고 한 쪽이 바로 중국이었고, 중국에게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이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한반도 주변국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장 의심하는 쪽이다.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전문가 토론에서 장롄구이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조치들은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차원일 뿐이고 미래 핵 사용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믿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은 공산 이념을 공유하는 가치동맹 차원으로 발전해온 역사가 아니다.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철저히 각자가 실리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1990년대 중국은 이념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주력하느라 북한과 멀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서 중국은 핵개발을 강행하는 북한을 골치아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들어 김정은이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핵폐기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했기때문이란 분석이 중국에선 지배적이다. 이제 북중관계의 진짜 회복은 북한의 핵폐기 약속 실천 여부에 달렸다.

강민수기자 (mand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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