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두번 죽인 살인마.. 그런데도 사형이 안 되잖아요" [인터뷰]

구리=문지연 기자, 이신혜 인턴기자 2018. 11.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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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씨와 심씨가 함께 찍은 사진. 유가족 제공

“저 같은 부모가 또 나오면 안 돼요. 제가 사형시켜달라는 말까지 했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안 되잖아요. 사형이 안 되는 나라잖아요.”

엄마 A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잃은 슬픔에 얼굴은 핼쑥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들어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위로 전화에 A씨는 “제가 기운 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세간에 ‘춘천 예비신부 살인사건’(유족들은 딸의 결혼을 허락한 적 없다며 ‘예비신부’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 했다)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8일 구리시 자택에서 인터뷰 내내 딸의 모습을 회상하며 미소를 띠었던 엄마는 범인에 대한 강력처벌을 주장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절규하는 듯했다.

◆ “계획된 범죄에 당한 딸” 가족들의 호소

단란했던 네 가족에게 비극이 찾아온 건 민주(23·가명)씨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A씨가 기억한 그날은 지난 7월이다. 민주씨는 “모든 결혼 준비가 다 됐다”는 심모(27)씨의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은 2014년 한 스피치 학원에서 스치듯 만난 사이였다. 당시 심씨는 K대학 동문이라며 민주씨의 전화번호를 받아갔고 4년간 간직하다 연락해왔다.

심씨는 교제를 시작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결혼을 재촉했고 민주씨 가족은 이를 만류했다. 민주씨 역시 결혼을 미루고자 했지만 심씨는 막무가내였다. 자신이 춘천에서 운영 중인 국밥집 2층 옥탑방에 신혼살림을 차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민주씨와 부모가 동의하지 않자 심씨는 점점 무섭게 변했다.

‘옥탑방 신혼집’이야기가 나온 지 3일 만인 지난달 24일 민주씨는 바로 그 옥탑방에서 남자친구에게 살해됐다. 심씨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식당 부엌 흉기로 시신을 여러 차례 훼손했다. 심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나도 따라 죽으려고 했다” “결혼을 앞두고 혼수·예단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A씨는 “말도 안 되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며 분노했다.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심씨의 철저한 계획아래 일어난 살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최근 그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 증거를 발견했다고도 했다. 사건 당일 민주씨와 심씨가 나눴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다. 딸을 납골당에 홀로 남겨 두고 온 날 발견한 대화를 보고 A씨는 흩어진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대화가 오갔던 걸까.

◆ “오늘 집으로 와줄래?”… 재촉한 만남

민주씨와 심씨가 사건 당일 오전 7시55분부터 10시18분까지 나눈 대화 일부. 민주씨는 "요구사항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심씨는 "(춘천)집으로 와달라"고 답했다. 유가족 제공

민주씨는 ‘옥탑방 신혼집’ 갈등을 풀고자 사건 당일인 지난달 24일 아침 출근길에 “딱 2가지 요구사항이 있다”는 메시지를 심씨에게 보냈다.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과 서울-춘천을 오갈 수 있는 적당한 곳에 함께 벌어 갚아나갈 신혼집을 마련하자고 말할 예정이었다. 여기에 심씨는 “오늘 (춘천) 집으로 와 달라”는 답장을 보냈다. A씨는 “할 말이 있다고 하면 ‘뭐냐’고 묻는 게 정상 아닌가요? 심지어 원래 평일에는 만나지 않아요.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까”라며 답답해했다.

이날 민주씨는 “(부모님을 뵙기에) 옷이 이상하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심씨는 “부모님 안 계신다. 친구가 온다고 했으니 위(2층 옥탑방)에 안 올라오신다”며 민주씨를 안심시켰다. 결국 민주씨는 “한시간만 있다 오겠다”며 춘천행을 결정했다.

민주씨와 심씨가 사건 당일 오후 5시9분쯤 나눈 대화 일부. 심씨는 “남양주(민주씨가 제안한 서울 근교)에 사는 걸 찬성한다. 잘못했다”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 유가족 제공

“마음이 급했던 거겠죠.”

심씨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나가던 A씨의 목소리는 또 한번 흔들렸다. 심씨가 민주씨의 춘천행을 재촉한 것으로 보이는 말들 때문이었다.

심씨는 “남양주(민주씨가 제안한 서울 근교)에 사는 걸 찬성한다. 잘못했다”며 갑자기 말을 바꿔 회유했다고 한다. 민주씨는 춘천으로 향하기 전 A씨와 한 통화에서 “엄마 퇴계원 정도도 괜찮지? 오빠도 좋대. 좋은 데 찾았어.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해서 요즘 2~3일 마음고생 했으니까 잠깐 보고 올게”라고 밝게 말했다.

민주씨와 심씨가 사건 당일 오후 5시29분부터 6시12분까지 나눈 대화 일부. 심씨가 "일찍 나오라"고 하자 민주씨는 "재촉하지 말라"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빨리 퇴근할 것을 강요하고 춘천으로 오라고 독촉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제공

민주씨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심씨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일찍 나와라” “아직 멀었냐”고 했고 민주씨는 “재촉 좀 하지 말라”고 했다. 기차 출발 전 민주씨가 회사를 나오자 심씨는 “다행이다”라며 안심했다.

민주씨와 심씨가 사건 당일 오후 6시18분부터 40분까지 나눈 대화 일부. 심씨가 "(결혼)계획서를 수정하겠다"고 하자 민주씨는 "안 써도 된다"며 만류했다. 유가족 제공

“(국밥집)일을 하고 있을 거냐”는 민주씨의 말에 심씨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민주씨 부모에게 보여줄 ‘결혼 계획서’를 쓰겠다고 했다. 결혼 계획서라면 앞서 한차례 쓸 필요 없다는 대화가 오간 적 있었다. 민주씨는 “안 써도 된다”고 다시 강조했지만 이날 심씨는 계획서를 핑계로 민주씨를 2층 옥탑방에 데려갔다. 가족들은 심씨의 한마디 한마디가 ‘살인 계획’에 포함된다고 믿고 있다.

A씨는 “애초에 민주의 말을 들어줄 마음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오로지 민주를 옥탑방으로 끌어들여 본인의 계획을 강요하려 했고, 그게 틀어지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기에 사건 하루 전날 심씨가 보인 행동은 ‘계획 살인’이라는 의심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 모녀에게 쏟아진 집착의 연락

어머니 A씨가 심씨에게 받은 문자메시지 일부. 심씨의 전화와 문자는 '옥탑방 신혼집' 이야기가 나왔던 다음날인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계속됐다. 유가족 제공

가족들은 심씨의 살인 계획이 하루아침에 짜인 게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전날 심씨가 민주씨와 가족들에게 보였던 행동 때문이다. 심씨의 착실했던 첫인상에 호감이 갔다던 A씨는 “그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심씨로부터 전화와 문자 세례가 쏟아진 날이다.

옥탑방 신혼집 이야기가 나온 후부터 심씨는 회사에 있던 민주씨에게 여러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겼다. 하루에 20번씩 통화를 한 적도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A씨에게까지 집착했다. A씨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밀고 나갔어요. 결혼 후 민주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양가 부모의 만남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어요”라며 그날 심씨에게 받은 문자를 공개했다.

그 안에는 “직장 문제가 저희 결혼 관계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저의 마음입니다” “상견례 일정이 미뤄지면 저희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민주씨는 심씨가 운영하던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 한 국밥집 2층 옥탑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씨가 신혼살림을 차리길 원했던 바로 그 곳이다. 뉴시스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동안 A씨의 어조가 특히나 강했던 건 심씨의 처벌을 주장할 때였다. 가족들은 심씨에게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국민청원’을 강조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나 사랑하는 23살 예쁜딸이 잔인한 두번의 살인행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청원 주소 bitly.kr/PwBm)라는 제목의 청원을 게시했다. 가족들이 제시하는 계획범죄 정황을 경찰과 국가기관이 세심하게 보고 강력한 처벌을 내려달라는 요구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민주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강력 범죄가 아동·노인·장애인·여성 같은 약자에게 자행되면 현행법 체계 안에서라도 더 무겁게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지시했다. A씨는 “그 놈이 가장 무거운 형량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확실한 말을 듣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했다.

A씨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달 31일 게시됐으며 오는 30일 마감한다. 14일 오전 1시20분 기준 총 14만9646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가족들의 청원은 14일 오전 1시20분 기준 14만9646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까지 약 5만명의 움직임이 남았다. A씨는 “가장 무거운 형량이 국민의 힘으로 받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며 두 손을 모았다.

인터뷰 내내 속으로 울던 A씨는 딸에게 못다 한 말이 있느냐는 말에 결국 고개를 떨궜다. “민주야. 엄마는 너랑 사는 동안 너무 행복하고 재밌었다. 맏딸이라 고생 많이 하게 해서 미안해.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니까 그때 가서 많은 이야기 나누자. 너무 사랑했었고 고마웠다.”

구리=문지연 기자, 이신혜 인턴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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