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첸 엄마, 눈동자로 연기하다

표태준 기자 2018. 1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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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돌아온 이나영

"저는 눈동자가 좋아요. 종종 '눈동자에서 연기하고 싶어'라는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고. 사람의 눈에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죠."

지난 20년 동안 이나영(41)은 커다란 눈동자였다. 그는 눈동자로 말을 걸고, 눈빛으로 움직였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도 그는 역시 서늘한 눈매로 화면을 장악한다. 6년 전 영화 '하울링'에 출연한 뒤 배우 원빈과 결혼하면서 활동을 접은 이나영의 복귀작. 장편 영화는 처음 연출하는 신인 윤재호 감독의 저예산 영화를 복귀작으로 택해 화제가 됐다. 시나리오를 읽고 꼭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나영은 "중국 영화 '인생'처럼 한 인간의 일대기를 독립영화 스타일로 거칠게 다뤘다는 점이 확 끌렸다"고 했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탈북 여성을 연기한 이나영. “눈동자에서 연기하고 싶다”던 그는 영화에서도 입보다 눈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한다. /콘텐츠판다


'뷰티풀 데이즈'는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는 불행을 그려낸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 젠첸(장동윤)은 위독한 아버지(오광록) 부탁을 듣고 14년 전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서울에 온다. 어렵게 찾아낸 엄마(이나영)는 술집에서 일한다. 그런 엄마 모습에 분노하며 마음을 다친다. 그렇게 중국으로 돌아간 젠첸은 엄마가 가방에 몰래 넣어둔 일기를 읽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이나영이 온몸으로 겪는 수난사에 가깝다. 영화 속 그 누구도 탈북 여성이었던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젠첸 엄마' '저것' '이년' 같은 호칭으로만 부를 뿐이다. 중국 브로커에게 이용당해 계약 결혼을 하고, 술집에서 일하다 마약 밀수까지 뛰어든다. "어떻게든 살아왔고, 어떻게든 살아갈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생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살다 보니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 생겨도 덤덤하게 받아들이죠. 14년 만에 아들을 만나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이유예요."

/이든나인

시종일관 건조하고 담담하게 연기하지만 중간 중간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이때 카메라는 이나영의 눈동자에 바짝 다가선다. 큼직한 눈이 스크린에서 흔들리고 빛을 낸다. 커다란 눈은 동시에 약점일 수도 있다. 젠첸 엄마의 일그러진 삶 속에서도 이나영의 눈망울은 지나치게 투명하기 때문이다. 또 늘씬한 그는 아무리 촌스러운 옷을 입고 얼굴에 검댕을 묻혀도 화보 속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는 "머리 염색도 일부러 부분만 하고, 옷도 촌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제작했다"며 "탈북 과정을 다룬 다큐를 챙겨 보고, 극 중 술집 동료로 나온 탈북자 출신 배우 김아리씨에게 사투리 강습도 받았다"고 했다.

영화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뷰티풀 데이즈'(아름다운 날들). 이나영은 "밥에 된장국을 얹어주자 아들이 짜증 내는 신이 있다. 제가 된장을 비벼 먹어서 생각해낸 애드리브였다"고 했다. "이렇게 먹으면 얼마나 맛있냐며 아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날들이고, 행복한 날들 아닐까요."

살기 위해 혼자 발버둥치던 젠첸 엄마는 가족이 내민 손을 잡고서야 늪에서 빠져나온다. 이나영은 "아이를 낳고 찍은 영화라 더 몰입했던 것 같다. 30~40대 동년배 여성의 인생에 연대감도 느꼈다"면서 "탈북민·조선족 분들이 많이 보시고 희망의 메시지를 얻어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 먹는 신이 자주 등장하는 영화예요. 탈북민 중엔 가족과 이별한 분들이 많잖아요. 영화 제목처럼 소소하게 밥을 먹으며 느끼는 행복, 별것 아닌 순간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려 보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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