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사슴 뿔은 '건강진단서'..암컷은 뿔만 봐도 안다

2018. 11. 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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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 탐험
짝짓기 선택권 암사슴에 있어..수컷끼리 싸움서 이겨도 기다려야
뿔은 천적 늑대와 싸우는 무기..좌우 대칭인 수컷이 '1등 신랑감'

[한겨레]

사슴뿔은 건강진단서와 같다. 건강하게 자란 사슴의 뿔은 좌우 완벽하게 대칭이다. 만약에 어릴 때 다리를 다쳐 부려졌거나 금이 간 수컷의 뿔은 좌우 비대칭이다. 나뭇가지처럼 난 뿔이 짧거나 볼품이 없단 얘기다. 암컷 사슴은 이런 걸 단번에 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축은 연중 발정을 하지만 야생동물은 발정 기간이 따로 있다. 사슴을 예로 들면 10월부터 12월까지가 발정기간이다. 젖을 뗀 후부터 암컷 대부분은 거의 매년 임신을 한다. 매년 임신하는 걸 보면 암컷이 짝짓기 대상으로 아무 수컷이나 덥석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천만의 말씀. 마음속에 둔 신랑감 기준이 따로 있다. 사슴이 손에 꼽는 일등 신랑감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나라 사슴은 멸종

사슴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꽃사슴이 가장 많다. 꽃사슴은 일본 시카사슴의 아종이다. 우리 고유종은 따로 있다. 대륙사슴이다. 대륙사슴은 꽃사슴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크다. 대륙사슴은 예전에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살아 선호하는 사냥감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1940년대에 씨가 말라 남한 야생에서 멸종해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우리나라 동물원에도 없다. 우리나라 동물원에 있는 사슴은 대만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종이다.

다행히 대륙사슴이 북한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생태원 소속인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대륙사슴을 복원하려고 시동을 걸었다니 산속을 거닐다 언뜻 만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기대된다.

멸종위기 1급 동물인 대륙사슴. 국립생물자원관

대륙사슴이건 꽃사슴이건 암컷보다 수컷이 더 크다. 몸무게는 암컷은 30~45kg 수컷은 40~70kg이다. 수컷이 암컷보다 더 크다는 것은 수컷끼리 경쟁이 심하다는 증거다. 경쟁에서 밀린 수컷은 짝짓기를 못 해 대를 잇지 못한다. 그러니 수컷들끼리 죽고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에서 이긴 수컷이 우두머리가 됐어도 암컷을 힘으로 제압해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선택권이 암컷에게 있어서다. 우두머리 수컷은 짝짓기 대상으로 강력한 후보 중 하나일 뿐이다.

수컷은 기다릴 뿐

사슴 암컷은 여러 수컷을 둘러보고 비교한 후에 한 놈을 신랑감으로 찜한다. 수컷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기 영역을 정해 놓고 암컷이 안쪽으로 들어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릴 뿐이다. 수컷은 자기를 받아 준 암컷을 목숨 걸고 지킨다. 암컷 주위에 다른 수컷이 얼씬 못 하게 막는다. 암컷이 딴 마음 먹고 떠날까 봐 아예 다른 놈을 못 만나게 하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암컷을 빼앗긴 다른 수컷은 애가 탄다. 자기 유전자가 훌륭하니 자기와 짝을 이뤄 똑똑한 자식을 낳자며 기를 쓰며 암컷에게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머리에 난 큰 뿔로 밀치거나 옆구리를 찌른다. 누군가 항복하거나 죽기 직전까지 싸운다.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이 모여 지내는 무리에 합류하기도 한다. 접근하는 족족 아무 수컷이나 덜컥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원칙이 있고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건강한 개체를 최고의 신랑감으로 친다. 건강한 수컷의 씨를 받아야 튼튼한 자식을 낳을 수 있어서다.

올해 하반기부터 경북 영양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증식·복원될 대륙사슴. 환경부 제공

일단 암컷 무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독점권을 쥔다. 대신에 암컷을 해치려고 접근하는 늑대를 막아내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자칫하면 짝짓기 독점권과 목숨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설령 늑대를 막아내다 목숨을 잃어도 대를 이어 후손을 봤으니 결혼 못 한 총각귀신보다 낫다.

적을 막는데 커다란 뿔이 한몫한다. 그깟 뿔로 날카로운 늑대의 이빨을 막을 수 있을까 싶어도 늑대는 뿔 달린 사슴을 얕잡아 보질 않는다. 다 자란 사슴뿔이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떨어져 나간 후부터 새 뿔이 날 때까지 늑대의 공격이 많은 걸 보면 늑대가 사슴뿔을 무서워하는 건 분명하다. 사슴에게 뿔은 중요하다.

동물원 사슴 뿔이 볼품 없는 이유

사슴뿔은 건강진단서와 같다. 과거에 다친 적이 있는지 말해주는 징표다. 건강하게 자란 사슴의 뿔은 좌우 완벽하게 대칭이다. 만약에 어릴 때 다리를 다쳐 부려졌거나 금이 간 수컷의 뿔은 좌우 비대칭이다. 왼쪽 다리를 다쳤으면 오른쪽 뿔이, 오른쪽 다리를 다쳤으면 왼쪽 뿔의 가지가 비정상으로 난다.

나뭇가지처럼 난 뿔이 짧거나 볼품이 없단 얘기다. 암컷 사슴은 이런 걸 단번에 안다. 뿔이 좌우 완벽하게 대칭으로 난 수컷을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는다. 뿔만 봐도 첫눈에 반할지 퇴짜 놓을지 안다.

넓은 사슴 농장에 있는 사슴보다 동물원에 있는 사슴의 뿔이 볼품 없는 경우도 있다. 넓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슴의 경우 질 게 뻔한 싸움은 한판 붙기 전에 일찌감치 꽁무니를 보여 내빼 도망간다. 힘이 비등비등해 싸워도 워낙 넓어 피할 곳이 있어서 잘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뿔이 정상인 놈들이 많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국립공원 부근 임시계류장에 있는 방사 꽃사슴들이 밥을 주러 온 직원을 경계하는 모습. 외래종 속리산 꽃사슴은 앞으로 복원할 토종 대륙사슴의 종 보존을 위해 2010년부터 포획·격리되고 있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하지만 좁은 곳에서 생활할 경우 싸움이 벌어지거나 부대끼면 다칠 확률이 높다. 좁아서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바닥에 날카로운 돌부리가 있는 곳은 최악의 조건이라 뿔이 정상적으로 자랄 리 없다.

‘노총각 사슴’을 만들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동물원에서 사슴을 농장처럼 우글우글 많이 기를 필요가 없다. 남한에서 멸종한 대륙사슴이라면 몰라도 사슴은 우리나라 전국 농장에 널려 있을 정도로 많다. 사슴이 어떻게 생긴 종인지 알려주려는 의도로 한 두 마리면 충분하다.

만약에 사슴뿔이 볼품없이 삐딱하게 난 놈이 대부분이라면 그 사육장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사슴 방사장에 머리통만 한 돌이 박혀있어 뛰어다니다 걸려 넘어질 수 있는지, 개체 수가 많아 비좁아 싸움이 빈번한지 살펴야 한다.

울타리도 ‘타이트록망’처럼 출렁출렁 쿠션이 있어야 한다. 싸우다 밀치거나 들이받았을 때 강철로 된 딱딱한 울타리는 어딘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칠 수 있다. 꼼꼼히 살펴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뿔이 멋있게 자라 암컷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 노총각 사슴을 만들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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