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Dream] 한화 이글스 지성준

독수리 날개 단 ‘복덩이’

한화 이글스가 오랫동안 품었던 가을야구의 한(恨)을 풀고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승선 티켓을 차지했다. 부러졌던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군단은 하늘 높게 날아올랐다. ‘보살’이라고 불렸던 팬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함성으로 터뜨렸다. 온갖 서러움을 겪으면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지켰던 이들만의 우정과 의리!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이뤄낸 결과다. 전부 하나가 돼 달려 나갈 ‘가을축제’ 포스트시즌! 그 중심에 선 ‘포수’ 지성준이 팀, 선수단, 팬들과 형제결의를 다지고 그라운드로 나선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표권향  Location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복덩이 포수 등장이오!


올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지에서 한용덕 감독은 선수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자극이 됐고, ‘백업’ 선수들에게는 기회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지성준을 말할 수 있다. 지성준은 오키나와에서의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맹활약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타격에서 자신감을 얻은 지성준은 김성훈의 첫 퀄리티 스타트를 돕는 등 선후배 투수들과 좋은 케미로 수비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날개를 단 듯 그라운드를 자신의 하늘로 만들었고, 기회의 순간마다 등장해 승리로 이끄는 구세주가 됐다.


요즘 지성준 덕분에 한화 팬의 흥이 두 배가 됐다. 뜨거운 함성을 느끼는가.

플레이할 땐 경기에 집중하느라 잘 안 들린다. 하지만 플레이가 어느 정도 끝나갈 때쯤에는 잘 들린다. 최근에 팬들이 사인이나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데 솔직히 어색하다. (웃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해 드리겠다.


지난 스프링캠프 때 한용덕 감독이 ‘지성준을 백업으로 마음 굳혔다’고 선포했다. 이 말이 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는가.

당연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감독님의 말씀 덕분에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떤 각오로 시즌을 치르고 있는가.

1군 스프링캠프에서 중도하차 당하는 것이 싫었다. 계속 일본에서 같이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개막 후에는 부상을 조심하려고 했다.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시즌을 치르면서 경험이 쌓였기에 다음 시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시즌 팀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 특히 팀 통산 기록들의 주인공이 됐다.

팀에 도움이 됐고, 이겼다는 부분에서 뿌듯하다. 이런 상황이 자주 오는 것이 아닌데 나올 때마다 좋은 결실로 이어져 다행이다.


기회를 잘 잡았다. 이것도 복이다.

대타로 나가거나 중요한 순간에 나갔을 때마다 매번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찬스가 오면 최대한 좋은 결과를 내려고 집중하는 편이다.


많은 경기가 생각날 텐데, 그중에서도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아무래도 지난 6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손승락 선배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친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당시 팀이 지고 있던 상황에서 첫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극적으로 나온 것이라 기억이 많이 난다.


KBO리그 5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 중 평균 비거리가 가장 멀다. 멀리 뻗어가는 공을 볼 때 기분이 어떤가.

홈런 개수가 적다 보니 결과가 그렇게 집결된 것 같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센터, 우중간 쪽으로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선다. 하지만 욕심을 내면 몸이 열린다. 최대한 공을 강하게 때리려고 했고 제대로 맞았을 때 큰 타구가 나왔다. 타이밍을 잘 맞추려고 한 게 결과가 좋게 나왔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6회와 9회에 특히 강하다. 의식하고 경기에 임하는가.

딱히 의식하진 않는다. 중요한 상황이 오면 집중하는 건 당연하다.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투수들과의 좋은 케미로 수비에서 능력치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키버스 샘슨의 전담 포수로 낙점됐다.

사실 영어의 벽 때문에 샘슨과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은 통역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평소 서로 옥신각신하며 장난 치고 짧은 단어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투수들 대부분 선배다. 평소 투수들과의 소통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모르는 부분은 형들이 먼저 다가와서 알려준다. 나도 질문이 있으면 다가가서 물어본다. 경기 중에는 내 생각대로 사인을 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투수들이 원하고 자신 있는 공을 던져야 후회하지 않고 잘 던질 수 있기에 투수에 맞추는 편이다.


포수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팀 전체를 다 보고 있는 포지션이 포수다. 내가 흔들리면 모두가 동요하기에 안정감을 줘야 한다. 투수는 물론 팀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자리다.



지성준 인생에 죽으란 법은 없다


청주중학교 시절 꾸준히 타격상을 받는 등 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선수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스스로 땅굴을 판 구덩이에 빠져 유급했다. 이로 인해 나이 제한에 걸려 야구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일찍부터 꼬인 것일까. 청주고에 진학 후 박세웅의 그늘에 가려져 백업으로 경기에 나섰다. 이때부터 방황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언제까지 허우적거릴 수는 없었다. 이 악물고 달려들어 자신을 다졌다. 보란 듯이 충청권의 돌풍을 일으켰고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충청권 1위 포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실타래가 꼬였는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진의 늪에 빠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짜며 좌절하고 있을 때 그의 이름이 다시 불렸다. 비록 신고선수였지만….


중학교 때 유급하게 된 사연이 길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는데, 속 시원하게 풀어보라.

그 당시 여러 가지 문제로 방황을 좀 했다. 야구를 하고 있긴 한데 집중이 안 됐다. 3학년에 올라가기 전 겨울 동계훈련 때까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는 식으로 2년을 보냈다. 시즌이 시작될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 덩치가 컸고 실력도 늘었는데 난 완전히 뒤처져서 그들 뒤만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격도 작았고 자신도 없었고 방황도 했고… ‘이대로 될까’라는 불안함을 느낄 때 감독님께서 유급을 제안하셨다.


이로 인해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에 제한을 받았다.

물론 아쉽기도 했고 가고도 싶었다. 하지만 운이 없었던 것뿐이며 내가 선택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신경 안 쓰려고 그때부터 야구에만 집중했다.



청주고에 진학 후 박세웅(현 NC 다이노스)의 백업으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기회를 잡아 청주고의 돌풍을 몰고 왔다.

포수를 계속 해왔기에 내 포지션만큼은 자신 있었다. 당시 수비도 괜찮았고 느낌이 좋았다. 3학년 때 성적이 좋았는데, 조금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꾸준히 좋을 수 있었는데 신인 드래프트 전까지 부진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후 성적이 좋게 나와 팀에 도움이 됐으니 만족한다.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끈 유망주였다. 하지만 전반기 때 계속된 타격 부진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기대가 컸을 텐데, 그때 심정이 어땠는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건가 등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야구니까 야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다. 어떤 식으로 이어가야 할지 생각할 때 스카우트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신고선수로 입단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인 드래프트 종료를 기점으로 전반기와 확연히 다른 활약을 했다. 뒤늦게 터진 타격감에 억울했을 것 같다.

아쉬웠다. 진작 이렇게 쳤으면 어땠을까…. 확실히 사람이 심적으로 편한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드래프트가 끝나고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유두열 코치님께서 당시에 인스트럭터로 오셨다. ‘4번 타자인데 스윙을 왜 소극적으로 하느냐. 못 쳐도 되니까 자신 있게 쳐라! 뒷다리도 더 돌려주고 더 확실하게 네 스윙을 가져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심적으로 편안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구단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다수의 구단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전부 신고선수 제안이었다.

지명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 팀으로 와라’고 했을 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계약하고 와서 입단하기로 한 다음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방황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정신 차리려고 했다.


‘포수왕국’이라고 불리는 두산 베어스가 먼저 어필했다. 하지만 한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두산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고향을 떠나는 것이기에 자신이 없었다. 또 두산은 포수진이 워낙 탄탄하기에 결정하는데 고민이 됐다. 반면 한화는 어렸을 때부터 응원한 팀이고, 무엇보다 한화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을 동경했다.



오랫동안 신고선수 신분으로 3군에 머물렀다. 2군 출장의 기회도 있었지만, 경기 수가 많지 않았다. 답답함으로 인한 좌절, 포기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이것저것 다 해봤다. 나가서 놀아도 보고, 야구만 하기도 했다. 또 생각을 비워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야구로 돌아오더라. 약간의 방황은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을 찾아 야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2군에서 제일 힘들 때 채종국 수비코치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내 얘기를 털어내면서 기분전환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채종국 코치님과의 대화가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형들도 살뜰히 챙겨줬다.

(주)현상이 형이 초중고 선배다. 형과 자주 붙어 다니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송)주호 형과 현상이 형이 어디서 무엇을 할 때마다 나를 챙겨서 다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니까 정신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얼마 전 (김)기현이 형이 유성에 돈가스 가게를 오픈했는데 그곳도 찾을 계획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성준입니다!


2015년 이정훈 감독의 추천으로 첫 해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 의욕이 앞섰지만, 당시 본인의 장비가 없어 박노민의 장비를 빌려 쓰는 무명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기대에 차 있었다. 훈련 후에도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의외의 순간에 기회가 찾아왔다. 정범모와 조인성이 부상을 당해 대신 시범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 지성준은 타율 0.389와 도루저지율 0.833(6시도 5저지)로 구단과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스스로 각인시켰다. 그의 인생에도 해가 뜨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첫 해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엄청 설렜을 텐데 캠프 떠나기 전날 특별히 챙긴 것이 있는가.

준비를 크게 한 건 없다. 해외에 가게 됐으니까 집중해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가짐만 다졌다. 챙겨간 물건은… 핸드폰밖에 없었다. (웃음)



스프링캠프 당시 본인 포수장비가 없어서 빌려 썼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그때를 회상해보면 훈련 후 고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굉장히 해맑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으니까!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흔치 않다. 장난기가 많고 너무 쳐져 있는 것을 싫어한다. 꿍해있을 때도 웬만하면 오래 가져가지 않으려고 한다.


당시 매일 검은 흙으로 팩한 유니폼과 성난 손바닥이 화제였다.

2~3군 캠프가 아니라 1군 캠프였다. 나에게는 첫 스프링캠프였기에 부상 없이 완주해보자는 각오로 열심히 임했다.


연습경기에서 끈질김과 선구안이 돋보였다. 무엇으로 승부하고 싶었는가.

적극적으로 치려고 하니까 볼에도 스윙을 많이 했다. 공을 끝까지 보려고 노력하니 선구안이 점점 늘었다. 투 스트라이크 전까지는 내 스윙을 가져갔다. 결과가 안 나오면 이후부터는 신중하게 보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려고 했다. 실투가 나오면 놓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기회를 얻은 것 같다는 생각할 때 허도환의 트레이드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 2군 강등 후 첫 경기에서 4번 타자로 나가 ‘생일 자축 투런포’를 날렸다. 작정하고 때린 것인가.

그랬던 건 아니고! 노렸던 건 아닌데, ‘생일에 홈런 치네. 시위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웃음) 그날 감이 나쁘지 않아서 자신 있게 돌렸는데 홈런으로 연결됐다. 사실 포수가 또 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이런 불안함이 들었다.


2군행과 부상, 수술 등으로 1군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또다시 일어나 1군 주전 마스크를 썼다. 무엇이 야구만 바라보게 했는가.

2016년에 재활하고 복귀했을 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만큼 크게 아팠던 적이 없었다. 생각한 대로 안 되는 데다 3군에 있는 시간도 길어지니 되게 힘들었다. 수비에서 ‘입스’가 오는 바람에 계속 불안하고 조급했다. 잘 보이려는 마음만 앞서서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다.



앞으로 본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부상 없이 꾸준히 경기에 나가는 것이 목표다. 내가 잘하면 팀에게도 좋은 것이기에 계속 뛰는 선수가 되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하다. 경험을 쌓으면서 팀, 벤치, 선수들에게 신뢰받는 포수가 돼야 한다.


한화가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면서 끈기와 집념을 더 강하게 키워야겠다.

솔직히 경기를 치르는 건 똑같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의식 안 하고 좋은 플레이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 팀 분위기도 좋다. 서로 조언하며 좋게 이끌어 가려고 마음을 모았다.


11년을 기다린 한화 팬들에게 축제의 분위기를 안겨줘야 한다.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한다.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만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수들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팬들의 기대치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팬 여러분들도 최대한 우리와 함께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희도 즐기면서 좋은 결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것 봐! 손바닥이 다 까졌어.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아. 안 아파! 내가 이곳 오키나와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마치 기회의 땅을 밟은 것 같아.” 2018년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中 지성준과의 화상전화 내용



            더그아웃 매거진 91호(11월호)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11월호(91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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