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상인물 만들어 '유령 계약', 한국오라클의 불법 영업 백태
[경향신문] 글로벌 IT기업 오라클(한국오라클)이 각 공공·금융기관 명의의 가짜 납품계약서를 작성해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을 부풀려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의 퇴직한 직원 명의를 도용하거나 있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가짜 계약서를 만드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정황도 포착됐다. 법률상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지 않은 오라클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아예 제공할 수 없게 돼 있다.

가상의 인물 만들어 ‘유령계약’
한국오라클의 가짜 납품계약서로 피해를 본 기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회, 옛 기무사 등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10여곳에 달한다. 허위계약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이들 기관 중 일부는 오라클을 상대로 명의도용,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오라클이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총판과 협력업체에 클라우드 제품을 강매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한국오라클의 계약서에 따르면 국군 1363부대(옛 기무사)는 지난해 5월 18일 한국오라클의 국내 메이저 총판업체를 통해 3100만원 상당의 ‘Oracle IaaS Public Cloud Services’를 구입한 걸로 돼 있다. 이 계약서에는 1363부대 ㄱ소령의 직급과 사인이 있다.
하지만 <주간경향>이 국방부에 확인한 결과 ㄱ소령은 2014년 9월에 전역했다. 계약서가 작성되던 시점에는 이미 민간인 신분이었던 ㄱ소령이 담당 서명권자로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한마디로 전역자 명의를 도용해 작성한 가짜 계약서다. 국방부도 “1363부대는 한국오라클과 해당 계약을 맺은 사실 자체가 없고 서비스 역시 이용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아예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유령 계약’도 있다. 한국오라클의 또 다른 계약을 보면 국회 사무처는 2월 19일 두 곳의 오라클 협력사와 6600만원 상당의 클라우드 서비스 계약을 맺은 걸로 돼 있다. 계약서상 서명자는 국회 정보전산팀 강성균 사무관과 입법정보실 이영호 사무관이다. 이 역시 가짜 계약서다. 두 사무관은 국회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계약서에 나온 부서 역시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당시 이뤄진 가짜 계약은 계약서에 물품대행 공급업체로 등장하는 오라클 협력사도 모르게 이뤄졌다. 해당 협력사 관계자는 “국회 계약건은 모르는 내용”이라며 “한국오라클에서 계약을 진행하면서 내 이름을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공기업들도 오라클의 불법영업 대상이 됐다. 지난 1월 31일자로 작성된 한국가스공사 명의의 클라우드 서비스 계약도 가짜 계약이다. 이 계약서에는 정보기획팀 ㄴ팀장이 서명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공사 측은 “클라우드 계약건은 전혀 모르는 사안이고 ㄴ팀장 역시 계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 정보계획팀 ㄷ차장 이름이 들어간 2월 19일자 계약도 도로공사에 확인한 결과 허위로 판명됐다.

오라클은 공공 클라우드 서비스 자격 없어
NH농협도 가짜 계약 대상에 포함됐다. 오라클 내부 계약서에는 농협중앙회가 1년 동안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2억2000만원이 넘는 이용료를 지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역시 엉터리로 쓴 계약서다. 농협중앙회를 고객사로 해놓고 정작 서명은 NH농협은행 소속 직원 이름을 도용했다. 법인이 다른 계열사 소속 직원 명의를 가져다 쓴 짜깁기 계약서인 셈이다. NH농협 관계자는 “계약서에 개인이 사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연히 오라클 클라우드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짜 계약 소식을 접한 해당 기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라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며 계약한 바 없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었다. 계약서상 1억6000만원 상당의 오라클 클라우드 서비스 제품을 구입한 것으로 돼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은 오라클에 해명을 요구한 상태다. 심평원 관계자는 “한국오라클 측이 ‘회사에서 협력사에 요청해서 업체에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며 “향후 법적 대응을 포함한 여러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한국오라클과 총판·협력사의 이 같은 영업방식은 엄연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디딤 홍영택 변호사는 “명의를 도용하고 서명하는 등의 행위는 권리·의무에 관한 문서인 계약서를 위조한 사문서위조죄에 해당한다”며 “형법 제231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명의인의 고소가 없이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한국오라클은 국내 공공부문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사업자다.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공공기관용 추가 보호조치)를 통해 ‘클라우드 시스템 및 데이터의 물리적 위치는 국내에 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라클과 같은 미국계 업체가 미국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에 한국 정부의 공공정보를 저장할 경우 미국 정부의 열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생긴 조치다. 해외 클라우드 서버에서 공공정보가 유출될 경우 피해구제가 요원하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고시에 따라 정부는 국내 데이터 센터를 둔 ‘보안 인증’을 받은 업체에만 공공 클라우드 사업을 허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보안 인증을 받은 사업자는 KT,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NBP), 가비아, NHN엔터테인먼트, LG CNS 등 국내기업 5곳뿐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오라클은 보안인증을 받지 않은 상태”라며 “오라클의 데이터 센터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공공 클라우드 사업에 있어서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오라클 스스로도 현재 공공부문 클라우드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김형래 한국오라클 대표는 내년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 설립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데이터 센터를 지으면 데이터 서버가 국내에 있어야 하는 문제나 보안 이슈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간경향>은 한국오라클에 가짜 계약서 작성에 대한 사실 확인 및 사측 입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오라클은 한국가스공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해명을 요구한 기관에는 명의를 도용해 가짜 계약서를 만든 사실을 인정했다.

총판에 밀어내기 영업까지
오라클의 이 같은 불법영업에는 본사 영업담당, 총판사, 협력업체 등이 총동원됐다. 조직적으로 불법영업을 벌인 이유는 회사의 강압적인 실적 강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한국오라클의 사내 업무지시 메일에는 ‘9월 클라우드 매출실적이 목표 대비 10분의 1에 그쳤다’며 ‘심각하게 노력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클라우드 사업 후발주자인 오라클은 아마존과 구글 등 경쟁업체에 밀려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과 KT가 선점한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실적 개선에 급급한 한국오라클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총판·협력사에 클라우드 물량을 강제 매입할 것을 강요했다. 총판·협력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객이 서비스 제품을 발주하지 않았는데도 임의로 발주내역을 꾸몄다. 문제가 된 가짜 계약서는 이 과정에서 작성됐다.
한국오라클의 강매행위는 전형적인 ‘밀어내기’ 영업에 해당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클라우드 매출을 늘려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게 총판사들”이라며 “지금 매출이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클라우드를 매입하라고 총판사에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라클과 종속관계에 있는 총판사들은 오라클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단일 계약금액만 수천만 원 이상이다. 억지로 클라우드를 매입한 총판사들은 일단 해당 금액을 한국오라클 본사에 지급한다. 이후 한국오라클은 클라우드가 아닌 다른 제품을 총판사에 팔면서 기존 가격보다 더 싸게 넘기는 방식으로 클라우드 매입대금을 보전해준다.
이때 오라클이 클라우드 매입대금 전부를 보전해주는 것도 아니다. 클라우드 매입이 늘수록 총판사의 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다. 비용부담을 이기지 못한 총판사는 결국 또 다른 협력사에 클라우드 물량을 떠넘긴다. 이 과정에서 대금결제 문제로 협력사 간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사측의 비정상적인 클라우드 영업방침으로 인해 총판사와 협력업체 직원은 물론 본사 영업 직원들도 심리적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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