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스타플레이어 반열에 오른 이정후의 중·고교 시절 일화를 소개합니다

신명철 2018. 10. 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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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센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왼쪽)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3일 자 스포티비뉴스 고유라 기자의 “이정후 빈자리에 대처하는 넥센 맨들의 자세” 제하 기사를 보면서 야구 선수로 무럭무럭 자라나던 이정후에 대해 처음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프로 생활 2년째인 2018년 현재 이정후의 팀 내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기사에서 살펴본다.

“(전략) 지난 20일 대전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9회 수비를 하다 어깨를 다친 이정후가 22일 정밀 검진 결과 왼 어깨 전하방 관절와순 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정후는 남은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않고 2주 이내에 해당 부위에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넥센은 최고의 리드오프이자 최고의 외야수를 잃었다. 이정후는 이번 시리즈에서 2경기에 나와 9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프로 2년차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타석에서 큰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와일드카드 결정전 때부터 매 경기 '슈퍼 캐치'를 펼치며 팀에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중략) 이제 슈퍼스타가 된 이정후의 자리를 메워야 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무거울 법하다. 김규민은 3차전을 앞두고 "무엇보다 수비에서 강점을 보이고 싶다. (이)정후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수비를 잘하고 싶다"며 안정감 있는 플레이에 욕심을 보였다.”

글쓴이는 2010년대 초반 서울 시내 초·중학교 야구부를 순회 취재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이종범 전 한화 이글스 코치 아들이 야구를 하는 제법 잘한다는 얘기를 어느 야구인에게 들었다. 오래전부터 야구인 2세가 꽤 있었지만 거의 모두 아버지에게 밀리는 경기력으로 팬들로부터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종범 전 코치 아들이 야구를 더 잘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전학했다는 얘기까지 듣고 보니 한번쯤 보고 싶었고 마침 휘문중학교를 찾아갈 때가 되기도 했다. 그때 취재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강북 4대문 안에 밀집해 있던 서울 시내 각급 학교가 강남으로 교사를 옮기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 일이다. 전통의 명문 휘문중·고등학교도 1977년 9월, 72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볼재[종로구 원서동 206]를 떠나 강남구 대치동 952-1번지로 이사했다.

6월 중순인데도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 들어선 교정에는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 요지에 있으니 학교 터를 넓게 잡지 못했으리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다.

게다가 중·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운동장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학생들이 쓰는 소운동장은 농구 코트 1면에 축구 경기장 절반 정도 면적이 더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휘문중학교 야구부 부원들이 단거리 토스와 내야 수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잠시 뒤에 풀리긴 했다.

휘문중학교가 어려운 운동장 여건에서도 청룡기전국대회 서울시 예선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며 명문교의 전통을 이어 가는 데에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와 유기적인 협조가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대운동장은 신축 건물 때문에 줄어들긴 했지만 정규 규격의 축구장보다 조금 더 넓었다. 몇 백명이 앉을 수 있는 스탠드도 있었다.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중학교 선수들이 소운동장에서 가볍게 훈련하는 동안 대운동장에서는 고등학교 선수들이 집중력 있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선수들이 훈련을 마친 오후 6시 정도부터 중학교 선수들이 대운동장을 차지하고 야간 조명 시설을 이용해 밤 9시까지 훈련한다.

또 고등학교 선수들이 외부로 나가 연습 경기를 하는 날에는 오후 내내 중학교 선수들이 대운동장에서 훈련한다. 그래도 불편하니 잠신중학교, 배명중학교 등 이웃 학교에 가서 연습 경기를 갖곤 한다. 이때와 겨울 전지훈련 등에서 선수들의 실력이 부쩍 성장한다고 한다.

2011년 가을 휘문중학교 사령탑에 오른 박만채 감독은 어지간한 야구 팬이라면 기억한다. 휘문중·고등학교~건국대학교를 거쳐 2001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1996년 대통령배대회에서 혼자 4승을 올리며 휘문고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받은 유망주였지만 프로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2002년 팔꿈치 수술 후유증 때문이었다.

2006년, 28살의 나이에 휘문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심정은 어땠을까. “솔직히 3년 동안 프로 야구 경기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제자들 때문에 곧 바뀌게 된다. 제자들이 프로 유니폼을 입고 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프로 경기를 보게 되고 지도자 생활에 보람도 느끼기 시작했다.

휘문중학교 지휘봉을 감독을 맡은 뒤에는 휘문고 이정후(이때 이정후는 휘문중학교를 졸업하고 동일계인 휘문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등이 박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했다. 이정후는 이종범 한화 이글스 코치의 아들로 아마추어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선수로 클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2013년)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아버지 키를 넘어섰고 체형으로 볼 때 더 클 수 있다. 체격 조건만 좋은 게 아니다. 지난해 시즌 타율이 6할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포지션도 유격수인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외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주전으로 뛰기 위해서인데 내년에는 원래 자리인 유격수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 기사에서는 내년(2015년)으로 예상했지만 이정후는 1년 더 외야수로 뛴 뒤 2016년 휘문고 주전 유격수로 맹활약했다. 이후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야구 팬이라면, 넥센 팬 여부와 관계없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 무렵 이종범 전 코치와 나눈 대화 한 토막도 함께 소개한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대체 구장인 서울 구의공원 야구장에서 나눈 대화 일부다.

“이 감독(은퇴한 선수들에게 글쓴이가 붙이는 직함), 여기 어떻게 왔나.” “아들이 오늘 경기가 있어서요.” “아, 오늘 휘문고 경기가 있지.”

“그런데 이 감독, 아들내미가 아버지보다 야구를 훨씬 더 잘할 것 같아. 다리가 긴 걸 보니 키도 아버지보다 더 클 것 같고. 그리고 우투 좌타잖아. 야구 하는 데 좋은 조건 아닌가?”

자식 칭찬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감독 입이 귀에 걸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묻고 또 물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야구계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아들이 이를 이뤄 가고 있는 가운데 들이닥친 부상이어서 아버지 걱정이 클 듯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본 리그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인 1998년 가와지리 데쓰로(한신 타이거스)의 공에 맞아 팔꿈치를 크게 다쳤지만 3개월 만에 복귀했고 이후 KBO 리그로 돌아와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 갔듯이 아들도 부상을 딛고 더 큰 선수로 성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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