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우리 선수] ③ 이문석 김포 통진고등학교 감독 & WF 이규빈

손병하 2018. 10. 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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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우리 선수] ③ 이문석 김포 통진고등학교 감독 & WF 이규빈



(베스트 일레븐)

축구의 설렘에 푹 빠진 아이,
박지성의 길을 좆다

운동을 참 좋아하던 아이였다.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와 농구를 즐겼고, 겨울이 되면 스키도 탔다. 그중에서 최고는 역시 축구였다. 이상하게 축구를 하기 전엔 설렜다. 그 설렘은 축구를 하고 나서도 오래 이어졌다. 다양한 스포츠를 꽤 전문적으로 즐기던 아이는 그렇게 축구에 빠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결국 그는 김포에 터를 잡고 있던 이회택 축구 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정말 다양한 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유독 축구하기 전 설레임이 크더라고요. 축구를 하고 난 뒤의 만족감도 좋았고요. 점점 축구에 빠져들었죠.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종의 ‘놀이’였어요. 전문 선수는 아니었죠. 그러던 제가 ‘축구 선수’의 길로 접어든 게 김포 통진중학교에 입학하면서였어요. 정말 ‘선수’가 된 거죠.”

초등학교 시절 놀이로 축구를 접한 그지만, 실력은 꽤 알아줬다. 공격수로 뛰면서 골도 많이 넣었고, 처음부터 탄탄하게 다진 기본기 덕에 또래보다 우월한 기량을 뽐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U-12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래도 중학교 진학 후 접한 선수들의 축구는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진학하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다들 전문 선수들이니까요. 다행인 건, 제가 초등학교 때 기본기를 열심히 닦은 덕에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당시 지휘봉을 잡고 계시던 조성휘 감독님께서도 잘 봐주셨고요.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었어요.”

빠른 슛 타이밍과 좋은 침투. 이규빈은 자신을 지도했던 조성휘 감독에게 이런 칭찬을 들었다. 사실 공격수에겐 더없이 좋은 찬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가능성을 들은 이규빈은 더 개인 훈련에 매진했다. 특히 자신에게 부족한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 골대에 강력한 고무줄을 매달고,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여 앞으로 나가는 투빙 훈련을 수없이 했다. 체력 훈련도 빠트리지 않았고, 중학생답지 않게 전술 공부도 꼼꼼히 했다. 이 모든 노력이 미래에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 훈련한 건 아녜요. 그땐 그저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라 좋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고, 다시 하라면 못 할 거예요. 그런데 그때는 훈련까지 좋았어요. 그만큼 축구가 좋았나 봐요.”


그저 축구가 좋아서 열심히 축구한 그는 같은 공간에 터를 잡고 있는 통진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김포에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통진고 하나지만, 전국에서도 꽤 알아주는 실력을 자랑하는 명문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규빈은 예상하지 못한 시련에 부닥쳤다. 중학교 축구와 고등학교 축구는 수준이 달랐다. 달라도 한참 달랐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는 또 다른 레벨이더라고요. 전국에서 볼 좀 찬다는 친구들이 전학을 오기도 하고요. 입학 후 형들의 실력을 보고는 좌절했어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란 자괴감이 들었던 거죠. 게다가 제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사이 부상을 많이 당해 수술이 잦았어요. 쇄골도 수술했고, 무릎도 다쳤죠. 형들 따라가려면 시간이 부족한데, 저는 뛸 수 없는 처지였으니 정말 괴로웠어요.”

여러 이유로 괴롭던 날이 계속됐다. 어떨 때는 ‘포기’란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유로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통진고 감독과 코치들에게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단 사실이다.

“부상으로 경기는커녕 훈련도 잘하지 못했어요. 고교 진학 후 한참이 지나도록요. 그래서 한 번은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죠. 한 번만 보여주면 제가 계속 축구를 해야 하는지, 접어야 하는지 판단해 주실 테니까요.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달렸어요. 부상 때도 틈틈이 다른 근육을 단련했고, 수 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머릿속 축구를 멈추지 않았죠. 그리고 부상에서 벗어나 감독님께 처음 저를 보여드렸을 때, 이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독한 놈. 넌 뭐로든 성공하겠다’라고요.”

이후 이규빈은 축구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도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나 더 다짐한 게 있다. 스스로 빛나기보단, 남을 빛내주는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건 멘토로 삼은 박지성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박지성 선배를 가장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저도 박지성 선배처럼 다른 선수를 위해 뛰고 싶어요. 가고 싶은 팀이요? 어디든 상관없어요. 제가 뛸 수 있으면 돼요. 그리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팀이면 돼요. 제가 다른 선수를 빛내줄 수 있으면 무조건 좋아요.”
이규빈은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법도 아는 듯했다. 무엇보다 그의 말에서 성실함과 진실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박지성과 참 많이 닮은 듯했다. 혹시 아는가? 머지않은 미래에 박지성만큼 성실한, 박지성만큼 훌륭한 선수가 우리 곁에 다가올지 말이다.


통진고 졸업생,
통진고 ‘지킴이’가 되다

K리그에서 150경기 넘게 뛰었고, 은퇴 후에는 한국 여자 축구계에서 오래 일하며 족적을 남겼다. 한국 여자 실업 최강인 인천 현대제철을 지도했고, 대한축구협회에 들어가서는 여자 연령별 대표팀 전임 지도자가 됐다. 2013년에는 U-16 여자 대표팀 감독도 역임했다. 그렇게 한국 축구에서 분명한 발걸음을 남긴 이문석 감독은 올 초 김포 통진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통진고를 졸업한 그가 통진고의 ‘지킴이’로 돌아온 셈이다.

“제가 통진중과 통진고를 졸업했어요. 그래서 대학교와 프로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지도자가 돼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쭉 지켜봤죠. 사실 제 꿈이었어요. 언젠가는 제가 졸업한 이곳에서 지도자가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요. 그 꿈이 실현된 거죠. 제가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되긴 했지만요.”

통진중과 통진고를 졸업하고 지도자로 활약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 감독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김포를 바라보며 꿈꿨다. 자신을 꽤 성공한 축구인으로 만들어준 모교에, 언젠간 헌신하고 싶다는 꿈 말이다.

“통진고에 오기 전엔 주로 여자 축구 쪽에 있었어요. 처음엔 안종관 감독님 밑에서 현대제철 코치로 일했고, 이후에도 계속 여자 축구 선수들을 지도했죠. 당연히 저와 함께 지낸 선수들도 많아요. 지금은 우리 여자 축구의 대들보가 된 손화연은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때 연을 맺기도 했고요. 처음 여자 선수들을 지도할 땐 어려움이 많아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초등학교부터 축구를 시작한 아이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성인 레벨이 됐는데도 기본기가 부족하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졌지요. 지금은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 못지않아요.”

여자 선수들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살던 그는 2014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구산중학교 코치로 부임하며 남자 선수들과 인연을 맺었다. 2015년에는 감독이 돼 전권을 잡았다. 그곳에서 여자 선수들과 남자 선수들의 다른 지도법을 익혔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축구 철학을 접목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 꿈꾸던 통진고 감독이 됐다.

“제 지도자 생활의 종착역이라 생각하고 온 학교입니다. 제 모교니 당연하지요. 그래서 여기서는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좋은 선수도 많이 길러내고 싶고요.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교육 방법입니다. 제가 축구 지도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과연 제가 어렸을 때 배운 게 맞느냐는 자문도 수없이 던졌고요.”

이 대목에서 이 감독은 힘주어 말했다. 자신이 이린 시절 배운 축구는 요즘 축구와 거리감이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현대 축구는 과거에 비해 달라졌는데, 지도법이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단다. 구산중에서도 자신이 배운 것과는 다른, 그러니까 과거와는 다른 지도법을 펼쳤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오래 고민한 산물을 통진고에서도 발현하고 있는 중이다.

“제 지도법이 옳다는 게 증명되려면 아무래도 성적이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지도법이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소용없죠. 올해요? 올해는 성적이 별로네요. 세 개 대회에서 모두 8강까지밖에 못 갔거든요. 전국 대회라 8강이 무시할 성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욕심에는 안 차요. 아직 멀었나 봐요. 하하.”

이 감독의 지도법을 모두 공개할 순 없다. 일종의 ‘영업 비밀’이니 말이다. 그래도 맛만 살짝 보여주면 이렇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스스로 훈련하도록 한다. 선수들이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다. 물론 손 놓고 있진 않는다. 선수들이 찾아야 할 종착지가 있는 큰 지도를 만들어 주고, 가다가 넘어지거나 길을 잘못 들어선 선수들에게는 친절하게 팁을 준다. 선수 곁에 바짝 붙어서 일일이 코칭하는 게 아닌,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도와주는 식이다. 이 감독이 이 지도법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창의성’ 때문이다.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경기 중에도 창의적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발전이죠. 팀 성적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아이들은 곧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시간을 맞이하는 연령대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잘, 그리고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죠. 중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때와는 그래서 많은 게 다릅니다. 요즘 제가 아이들 진학이며 취업을 위해 원서도 쓰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거든요? 일선에서 이 일을 직접 하다 보니,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제가 얼마나 중요한 역을 해야 하는지 새삼 느끼겠더라고요.”

세상에서 축구 감독만큼 고단한 직업이 없다지만, 인생의 미래를 결정할 시기에 놓인 고교 축구 감독은 그중에서도 더 괴로운 일이지 싶다. 그래도 이 감독은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축구로 시작해 아직까지 축구와 함께 있으며, 마지막까지도 축구 곁을 떠나지 않아도 되니 행복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돌아 모교로 돌아온 이 감독, 그의 열정과 노력이 통진고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길 기대한다.

※ ‘우리 팀, 우리 선수’는 유명하지 않으나, 한국 축구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우리 주위의 팀과 선수를 찾아 조명하는 코너다. 지금은 음지에 있는 그들이 성장해, 언젠가 밝은 양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담았다./ 편집자 주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이규빈·이문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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