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당' [박래용 칼럼]

박래용 논설위원 입력 2018. 10. 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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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말 정기국회가 끝나면 야권의 정계개편이 본격화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꿈은 보수대통합이다. 모든 보수세력을 모아 문재인 정권에 대적하겠다는 것이다. 당면 목표는 통합 전당대회다. 2월 전당대회에 당 안팎의 보수 인사들을 총출동시켜 흥행도 성공하고 야권의 헤게모니도 쥐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려면 최대한 판을 키워야 한다. 황교안, 이완구, 오세훈, 원희룡, 김태호 등이 무대에 오를 선수들이다. 입당은 시간문제다. 김무성·홍준표도 몸을 풀고 있다.

관심은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다. 명실상부한 대통합이 되려면 바른미래당으로 간 탈당파들이 돌아와야 한다. 유승민이 들어오면 보수대통합 그림은 완성된다. 생각대로 될까. 유승민이 2월 전대에 합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진 것은 친박과 비박 간의 갈등이 탄핵 과정을 거치며 더는 동행이 어려울 정도로 증폭됐기 때문이었다. 유승민은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철학도 정책도 없는 무능한 보수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보수의 길을 열겠다”고 했다. 그에겐 다시 돌아갈 명분이 없다. 탈당파들은 고민이 깊다. 유승민이 복당할 경우 동반 복귀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가 버틸 경우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 어느 당으로 출마할 때 당선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이다.

손학규는 중도 빅텐트를 그리고 있다. 맨 왼쪽부터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맨 오른쪽에 한국당이 포진하는 그림에서 한가운데, 중원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중도통합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민주평화당과 오갈 데 없는 한국당 의원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구상이다. 일종의 이삭 줍기다. 살아남는 쪽이 이기고,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당은 곧 사라질 정당”이라고 맞서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분투 중이다.

전원책은 돈키호테다. 허세다. 그는 인적쇄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난망이다. 인적쇄신은 단순히 구태 인물들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 희망을 줄 만한 새로운 인물을 채워 넣어야 완성된다. 한국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 피를 수혈하지 못해 결국 올드보이를 내세운 바 있다. 홍준표도 대표 시절 당협위원장 물갈이한다고 하면서 결국 새로운 인물을 한 명도 데리고 오지 못했다. 당협위원장 몇 명 바꿀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누구를 쫓아내면 누구를 새로 데려오느냐가 중요한데 김병준과 전원책은 그런 유인책을 갖고 있지 않다. 인적쇄신이랄 것도 없다. “특위는 허세 부리고 변죽만 울릴 뿐 쇄신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윤여준 전 장관)이란 얘기는 허튼 전망이 아니다. 의원들이 지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한 것은 한번 지켜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계파, 특정 인물을 축출할 경우 당사자가 가만있을 리 없다. 게다가 2020년 총선을 위한 공천은 새 대표의 권한이다. 총선에 앞서 다시 구성될 공천심사특위는 얼마든지 당협위원장을 바꾸고, 공천을 새로 줄 수 있다.

김병준은 바지 사장이다. 그는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겠다며 자유·민주·공정·포용 등 4대 가치를 내놓았다. 하나마나한 공허한 얘기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중요한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란 말과 똑같다. 그의 좌표 설정은 허망했고,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당을 혁신하러 온 김병준은 전원책에게 인적쇄신 재하청을 줬다. 내 손에 피 묻히기 싫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차도살인(借刀殺人)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좌충우돌 전원책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김병준은 한국당을 뿌리부터 바꾸겠다고 했지만, 취임 100일 동안 문재인 정부에 깐죽댄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가 찾아갈 뿐이다. 바지 사장의 한계다. 당은 여전히 시민에게 외면받고 있다. 비대위원장 취임 당시 한국당 지지율은 10%였는데 현재 당 지지율은 13%(한국갤럽)다. 인적쇄신, 보수혁신, 처절한 반성이 이뤄져야 했지만 모두 건너뛰고 통합 카드를 꺼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위기 때마다 혁신을 외쳤지만 다 시늉이었다. 대선 때도, 지방선거 뒤에도 시민 앞에 무릎 꿇고 ‘청산과 혁신’을 약속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당의 지지층은 맨 오른쪽에 있는 극우보수 20% 세력이 주축이다. 이른바 태극기부대다. 이미 태극기부대로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는 마당에 새삼 그들과 통합을 얘기할 필요도 없다. 달라지겠다더니, 결국 ‘태극기당’으로 가고 있다. 한국당의 한 중진의원은 “한 명은 교수, 한 명은 평론가가 와서 저러고 있으니 참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은 한국당의 몫이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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