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죽어야 끝나는 사육곰의 비명

2018. 10. 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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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웅담 수요 감소해 도축 줄었지만
사육곰 540마리 잔혹한 환경에서 신음
편법과 위법 자행되는데 정부는 방관만

[한겨레]

국내 사육곰들은 기준에 위배되는 철창 안에서 배설물과 뒤섞인 오물을 핥아먹으며 버티고 있다.

“곰? 아, 지금 180여 마리 될라나? 그렇지, 2014년 중성화수술 시킬 때에만 해도 260여 마리였는데 지난 4년 동안 80마리가 넘게 죽었으니 그 정도 되겠죠.” 곰 사육하는 ㄱ씨의 말이다.

나는 곧바로 받아쳤다. “어머, 곰이 줄어들었다는 건 그동안 웅담을 많이 팔았다는 말이네요?”

하지만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ㄱ씨는 손사래 친다. “무슨… 그런 소리 말아요. 안 팔려… 팔아도 웅담만 가지고는 안 되지. 곰 기름, 곰 발바닥, 곰 고기 이런 것을 같이 팔게 해줘야 우리 농가도 빚 갚고 얼른 정리하는 데 정부가 그걸 허가 안 해주니… 아니면, 정부가 곰들을 다 매입하든지.”

그러면 곰들이 왜 죽었느냐는 질문에, 자기들끼리 싸워서 죽거나 늙어 죽어 없어지더란다. 도축용 곰이 늙어 죽는 일도 있다하니 믿을 말인지 판단이 안 선다.

2018년 9월 환경부 자료를 보면, 사육곰 총 540마리 중 5살 이하가 41마리, 6살~9살이 55마리, 10살 이상의 곰들이 444마리이다. 법적으로 도축할 수 있는 곰은 10살 이상이다. 이 곰들의 비율이 82%라는 것은 웅담 수요가 부진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동료와 싸움으로 살이 뜯겨나가 뼈가 보여도 치료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곰.

하지만 곰 사육이 자연 도태되는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엔 곰들의 삶과 그 환경이 너무나 잔혹해,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착취하는 것을 마주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지워낼 수 없다. 이즈음에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인격화된 통키 추모 서사는 540여 마리의 사육 곰을 더더욱 서럽게 한다.

무더위가 정점에 있던 지난 여름 8월 초, 또 다른 곰 농장을 방문했다. 이 농장을 운영하는 ㄴ씨는 웅담 채취를 위한 사육곰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었고, 곰에 관련한 위법 행위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동물자유연대에서도 형사 고발한 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ㄴ씨는 원주 드림랜드 동물원이 폐업할 때 유럽불곰 2마리와 반달가슴곰 4마리, 원숭이 등을 양도받았다. 모두 국제협약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에 해당돼 거래와 시설물 등에 법적인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ㄴ씨는 이 모든 과정을 음성적으로 진행했다. 심지어 ㄴ씨에게 양도된 유럽불곰 2마리는 두 달도 안 돼 죽고 없었다. 전시관람 목적의 곰을 도축할 경우 법 위반이다. 곰을 도축해 웅담을 팔던 이에게 넘겨진 직후에 발생한 곰의 죽음은 의문을 남긴다.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했다.

음식물 쓰레기와 개 사료가 사육곰 먹이의 전부다.

ㄴ씨 사건을 대하는 환경부 소속 환경청은 한 술 더 떠 ㄴ씨가 법망을 피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해당 동물들을 보유하려면 법이 요구하는 바에 따른 시설등록을 해야 한다. 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동물원 등록을 해야 한다. ㄴ씨는 이 모든 절차를 승인받지 않은 채 동물을 불법 반입했다. 서류만 접수했을 뿐이다. 그 마저도 허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서류 접수는 하였으니 ㄴ씨가 불법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검찰에 제출했다. 우리가 고발한 사건에서 ㄴ씨는 모두 무혐의로 빠져 나갔다.

지나간 시간 곱씹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8월 그 무더위에 방문한 ㄴ씨의 곰 농장은 법적인 시설기준에 위배되는 철창 안에 먹을 수 있는 물 한 모금 없는 상태에서 곰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철창 아래 곰 배설물과 뒤섞인 오물을 핥아먹으며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국내 사육곰들은 기준에 위배되는 철창 안에서 배설물과 뒤섞인 오물을 핥아먹으며 버티고 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올해 초에 태어났을 법한 새끼 여섯 마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ㄴ씨는 취재하는 기자에게 도축용이라고 설명했다 한다. 사실이라면 환경부 국정감사감이다. 사육곰 증식금지 지원에 들어간 예산이 57억원인데 새끼 곰이 태어났다면 말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전시관람용으로부터 낳은 새끼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이 되었든 ㄴ씨는 불법 행위를 했다. 수년에 걸쳐 연이어 터지는 ㄴ씨의 불법 행위, 쩔쩔매는 환경부, 볕들 날 없는 540여 마리 사육곰의 곡성. 동물복지 공약을 한 최초의 대통령께 또 한번 읍소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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