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미식한담] 한민족, 소고기 120개 부위로 분류.. 세계에서 가장 세밀하게 먹어

박정배 음식평론가 2018. 10. 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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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까지 소 내장 음식만 100여 가지… 소머리 중 혀가 으뜸
도축자들이 노임 대신 받은 소머리·뼈·내장 등 부산물로 음식 만들어 팔아

설렁탕은 소가죽을 제외한 온갖 부위를 다 넣고 끓이지만 소머리가 주연이다. 경기도 곤지암 소머리국밥은 설렁탕과 같은 음식이다./조선일보DB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소고기를 가장 세밀하게 나눠 먹는 민족이다. 미국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ead)는 한국인은 120개 소 부위를 식용한다고 밝혔다. 35개 부위를 활용하는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4배, 51개 부위를 먹는 아프리카 보디족의 2배나 된다. 1994년판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소의 내장과 살코기에 관한 단어가 136개나 등장한다.

다양한 부위로 구분한만큼 한민족은 여러 방법으로 이러한 소의 부산물들을 먹어왔다. 조선시대 도축은 한양에서는 성균관 반인(伴人)이, 이외 지역은 백정들이 담당했다. 이들에게는 노임 대신 소가죽, 내장, 뼈 , 피 같은 부산물이 제공됐다. 이들은 이걸로 가죽 제품이나 설렁탕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소 부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유독 한국에서 발달한 이유다.

◇소머리: 설렁탕의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

1924년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쇠머리편육 편에는 ‘쇠머리는 열두 가지 맛이 잇다하고, 서(혀)는 연하고 구수하야 맛이 상둥(가장 좋다)이요 섯밑술치또한 조코’라는 구절이 나온다. 설렁탕은 소가죽을 제외한 온갖 부위를 다 넣고 끓여 먹는 일종의 소고기 잡탕이지만 소머리가 주연이었다.

일제강점기 설렁탕집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설렁탕집은 소머리를 ‘브랜드 로고’처럼 가게 앞에 걸어놓고 영업했다. 1909년 일본인 우스다 잔운(薄田斬雲)의 ‘조선만화’에는 ‘소머리, 껍질, 뼈, 우족까지 집어넣고 시간을 들여 끓여 낸 것을 다른 냄비에 국물만을 퍼서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라고 설렁탕집 풍경이 묘사돼 있다. 가게 앞에 소머리를 진열해 놓은 것은 다른 고기가 아닌 오직 소고기를 이용한 음식을 판다는 기표였다.

소머리 여러 부위 중 최고로 쳐주던 소 혀는 현대 들어서 다소 기피하는 부위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설렁탕에는 들어간다. 소 혀는 질감의 음식이다. 혀 끝으로 갈수록 질감이 강해지고 안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진다. 콜라겐 함량은 높지만 결착력이 낮아 매우 연하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 ‘태성집’ 우설구이./박정배

소 혀는 혀 부위인 우설(牛舌)과 혀 받침인 혀밑으로 나뉘는데 각각 1.2kg 정도가 나온다. 이중 우설은 쇠서, 섯밑, 혀밑, 쇠서받침, 혀뿌리, 혀날 등으로 다양하게 부를 정도로 옛날부터 한국인이 좋아한 부위다. 섯밑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단어다.

세종·문종·세조 등 세 왕 시대에 걸처 의관(醫官)을 지낸 전순환이 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1459년경)에는 ‘팽우두’(烹牛頭) 즉 소머리 삶는 조리법이 나온다. ‘앵두잎을 소 입 안에 채우거나 찧어서 소머리에 바르면 쉽게 익는다. 찌면 쉽게 익으니 말할 수 없이 좋다.’ 우설은 삶아서 껍질은 벗겨 먹어야 한다. 구이로 먹을 수 있는 부위는 소 혀의 안쪽 400g 정도다.

1980년대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서울 등 대도시 설렁탕집 앞에 소머리 진열이 부담스러워진다. 이후 상대적으로 소머리 사용에 관대한 경기도 곤지암 같은 지방에 소머리국밥을 파는 식당들이 성업하게 되지만, 설렁탕과 소머리국밥은 같은 음식이다.

◇양: 소 내장 중에서 맛과 영양 최고

양은 소의 4개 위 중 첫 번째 위를 말한다. 양의 맨 윗부분인 양깃머리는 양 부위 중에서 가장 두툼하고 단단하지만 씹는 맛이 좋아 최고의 소 내장 부위로 꼽힌다. 대창보다 3배, 곱창보다 2배 이상 가격이 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방이 전혀 없는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라 건강에도 좋다. 정육점 아들들이 건강한 이유가 양깃머리를 먹어서라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돼있다.

조선시대 궁중음식에도 양을 이용한 요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산가요록’에는 꿀이나 탁주를 넣고 삶은 ‘팽양’(烹䑋)이나 솥에 참기름을 조금 넣고 쪄낸 양찜인 ‘증양’(蒸䑋), 양으로 만든 식해인 ‘양해’(䑋醢) 등 다양한 양 요리가 등장한다.

1990년대 이후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비육우(肥肉牛)가 한우 사육의 중심이 되었고, 풀대신 수입 사료를 주로 먹이게 됐다. 사료는 반추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한우의 양과 양깃머리가 퇴화해 얇아졌다. 게다가 사료를 주로 먹은 소의 양은 불유쾌한 냄새가 난다. 유명 양대창 식당에서 뉴질랜드산 소의 두툼한 양을 사용하는 이유다. 예전 한국처럼 풀로만 소를 기르기 때문이다.

신선한 양깃머리는 ‘겨드랑이에 사이에 끼워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로 먹거나 살짝만 구워 먹어야 맛있다. 양은 내장인만큼 점막이 있는 탓에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질기고 냄새가 난다. 손으로 작업해야 양의 쫄깃함을 제대로 느낄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양을 즐겨왔다. 조선시대까지 소 내장으로 요리한 음식이 100여 가지이며, 이중 양이 36종류로 가장 많다. 양이 소 내장 중에서 최고로 꼽혔음을 알 수 있다.

박정배는 한국, 중국, 일본 음식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글로 쓰고 있는 음식칼럼니스트다. 조선일보, 주간동아, 음식전문지 쿠켄 등에 오랫동안 음식 칼럼을 연재해왔다. ‘박정배의 음식강산’ 시리즈 3권 등 다양한 음식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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