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서 '차박'하며 힐링하는 현대인들 [김현주의 일상 톡톡]

김현주 2018. 10. 21. 0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박(車泊)은 ‘차에서 숙박하다’란 뜻을 가진 신조어입니다. 말 그대로 자동차 안에서 자는 것을 말하는데요.

최근 ‘차박’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면서 자동차를 구매할 때 ‘차박이 가능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캠핑카나 SUV, RV를 몰고 가면 좋겠지만 하룻밤쯤 일반 승용차라도 괜찮다는 전언입니다.

차박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수도 급증했습니다. 2014년 개설된 네이버의 한 차박 커뮤니티 회원 수는 5월 기준 3만6500명입니다. 국내 차박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4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차박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3~4년 전에 비해 세대층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전문가는 차박은 무겁고 다루기 복잡한 캠핑장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잠을 잘 수 있는 깔개와 배터리 등만 챙겨도 되는 '미니멀리즘'의 여행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실제 혼자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차박이 인기입니다. 조용히 사색하고 싶거나 휴식을 취하며 힐링하고 싶을 때 차는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면서 안정감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다만 차박 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야외에서 춥다고 텐트나 캠핑카 등의 출입문과 창문을 닫은 채 산소를 많이 소비하는 난방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불가피한 경우 출입문이나 창문을 조금만 열어두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최근 확산 추세인 SUV를 활용한 차박을 하는 이들도 자칫 방심했다가는 저체온증이나 저산소증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서울에 사는 직장인 최모(37)씨는 한달에 2번 정도 가족들과 함께 근교로 캠핑을 떠난다. 최씨는 ”백팩킹이나 비박도 좋지만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아이와 함께 자기엔 무리가 있어 날씨 영향을 덜 받는 차박을 즐기고 있다”며 “큰 장비를 챙길 필요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어 더욱 간편하고 좋다”고 흡족해했다.

주52시간 제도가 정착되며 캠핑이 여가생활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요즘같은 가을 날씨엔 캠핑카를 이용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어울리기 좋다. 공간이 넉넉하고 편의사양을 갖춘 캠핑용 차량이 있다면 보다 편하고 즐겁게 차박을 즐길 수 있다.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캠핑 인구는 2011년 60만명에서 2016년 말 500만명 이상으로 집계, 5년 새 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캠핑 시장 규모도 2008년 2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급성장하는 등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캠핑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에는 단순 숙박을 목적으로 하는 캠핑족이 주를 이뤘다면, 캠핑의 감성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최소한의 짐으로 공원 등 야외에서 가볍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차량 내부 트렁크 공간을 이용해 색다른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차박이 캠핑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차박은 산이나 강, 바다 주차장을 이용하며 간소함과 기동성을 추구하는 캠핑족에게 각광받고 있다.

현대인들이 애용하는 SNS 인스타그램에도 #차박(1만8000여개), #차박캠핑(8700여개), #차박여행(1300여개)란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게시물 수가 3만여개에 육박하는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큰 장비 챙길 필요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다" 차박캠핑 수요 급증

실제 옥션에서 올 들어(1~8월) 판매 신장률을 살펴본 결과, 차량용 캠핑장비가 전년 동기 대비 품목에 따라 최대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차량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품의 수요가 늘었다. 독립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천막·캐노피(27%)를 비롯 트렁크 침실을 꾸밀 수 있는 그늘막·스크린텐트(8%), 뒷좌석 공간을 침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동충전식 에어매트(116%)가 상승폭을 기록했다.

캠핑용품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제품도 인기다. 차량 위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렁크네트 판매량이 32% 증가했다.

기존 투박한 캠핑장비에서 벗어나 감성을 더한 캠핑소품들도 인기상품 반열에 올라섰다. 케렌시아(Querencia·나만의 안식처) 및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 바람을 타고 다양한 차량 인테리어 소품을 통해 감성캠핑을 즐기는 2030대 차박족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파티용 깃발 가랜드(44%)를 비롯 인디언 장식품 드림캐쳐(55%)의 판매가 늘었다.

차랑용 편의용품 판매도 급증했다. 차 안에서도 편리하게 스마트폰 충전이 가능한 무선 충전거치대는 2배(100%) 이상 증가했다.

전기방지용품도 45% 늘었다. 차량 내부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막아주는 햇빛가리개(7%)와 기온이 떨어진 밤에 활용하기 좋은 캠핑용 보온물주머니(78%) 같은 캠핑용 냉난방 제품 모두 신장세를 기록했다.

김순석 옥션 리빙레저실 팀장은 "고가의 캠핑장비 없이 자유롭고 간편한 트렁크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차박캠핑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캠핑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며 "가심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차박캠핑 용품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저체온증·저산소증 등 안전사고 유의해야

가을, 겨울철 캠핑에 나섰다가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어 야영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8시10분경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공터에 세워진 캠핑카에서 A(82)씨와 A씨 아들 B(57)·C(55)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공터는 정식 야영장으로 등록된 곳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A씨 다른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캠핑카 안 싱크대에 숯이 타다 남은 화덕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캠핑카 창문과 출입문이 모두 닫혀 있고, 별도 환기시설은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A씨 등은 지난 13일 캠핑에 나선 뒤 밤에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 등이 추운 날씨에 캠핑카 내부를 따뜻하게 하려고 불을 피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캠핑카는 C씨가 1t 트럭을 활용해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11시50분경 광주시 북구 영산강 변 한 다리 밑 텐트에서 D(63)씨와 아내(56)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틀 전부터 D씨 부부와 연락이 닿지 않던 친척이 이날 이들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텐트 안에서는 휴대용 부탄가스로 작동하는 온수 매트가 켜져 있었다. 경찰은 D씨 부부가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이처럼 캠핑을 하다가 질식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기도 이천과 양평에서 각각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낚시 동호회원(35)과 낚시객(51)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2명 모두 부탄가스를 이용한 온수 매트를 켜놓고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해 2월26일 밀양시 오산교 인근에서도 부탄가스를 이용한 온열 기구를 켜놓고 잠을 자던 3명이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옮겨진 바 있다.

가을, 겨울철 캠핑카나 텐트에서 화덕이나 가스 등을 이용한 난방기기를 사용할 땐 좁은 공간의 산소가 연소하고 일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캠핑족들이 화덕 등을 이용해 난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캠핑카나 텐트처럼 협소한 공간에서는 질식사고 우려가 크다며 화덕 등을 내부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