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컷스토리] 월급 96만원 예술강사 "학생들 보면 얼어붙어"

CBS노컷뉴스 정재림 기자 2018. 10. 20.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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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강의 주 15시간 미만..사각으로 내몰려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아..매년 10개월 계약에 고민도

※ 이 기사는 현직 예술 강사들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예술 강사들이 지난 8월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집회를 가졌다. (사진=독자 제공)
2018년 7월 15일 전북 전주.

나의 동료 A가 차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외딴 도로변에 주차된 차를 보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시민이 신고를 했다. A가 숨진 날은 이틀 전인 13일. A는 출근 중이었다.

왜 그는 학교가 아닌 차에 있었을까?

A는 당일 오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렌터카를 부를 만큼 파손이 심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A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대신 출근길에 올랐다. 그 걸로 끝이었다.

추정된 사인은 급성신부전증. 소식을 접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A가 왜 끝까지 출근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약 강의에 차질이 생긴다면 나쁜 평가를 받아서 다음해 강의 조건에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투잡(Two Job), 쓰리잡(Three Job)은 낯선 일이 아니다. 야간에 대리운전, 새벽에 편의점, 주말에서 세차장 일을 해야 내 직업을 계속 가질 수 있다.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때 촬영 아르바이트를 갔던 B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B도 리조트가 무너져 우리 곁으로 돌아 올 수 없었다.

예술 강사들이 지난 7월 문화체육간광부 앞에서 예술강사 무기계약 전환 촉구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독자 제공)
우리는 초·중·고 학생에게 국악, 연극,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디자인, 영화, 사진을 가르친다. 학교 정규교육과정에서 미처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우리 일이다. 학생들은 우리를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린 예술 강사다.

예술강사지원사업은 1998년 대통령 주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학교 내 전통문화에 대한 소외현상이 제기된 뒤, 2000년부터 시행된 예술교육사업이다.

2009년 이전에는 투잡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강의 시간이 고정돼 있어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2010년 동료의 산재소송 최종 판결이 나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대법원은 우리에게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산재를 인정했다. 산재를 인정받았으니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고용을 전담했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산재판결 후 지역의 29개 기관에 근로계약을 이관했다. 말로만 듣던 위탁고용의 시작이었다.

보장됐던 강의 시간은 주 15시간미만 으로 줄어들었다. 월급은 세전 기준 96만원. 하루아침에 월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생계는 어려워졌다. 나와 동료들은 항의를 했지만 진흥원의 답변은 황당했다.

"그동안 강사님들은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강의 시간의 보장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강사님들의 일은 근로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근로기준법상 2년 이상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는 무기계약 전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술 강사들이 지난 9월 문체부 서울 사무소에서 '18년을 일해도 시한부 일자리가 웬 말이냐'라는 피켓을 들며 항의 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무기계약 전환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돈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생겼다. 우린 직장건강보험 적용 규정인 월 60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직장건강보험 가입 대상에서 배제됐고 퇴직금 지급 기준에도 들지 못했다. 신용등급은 자연스레 뚝 떨어졌다. 대출을 하려고 해도 제1금융권은 우릴 인정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를 가진 동료는 어린이집에 하루 종일 맡기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게 4대 보험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경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간에는 직장 경력으로 인정 받기가 힘들어졌다. 10년째 학교에서 강의를 했지만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증명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나와 동료들은 고개만 숙였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비굴해졌다.

학교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 18년간 지속된 사업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우리를 찾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정부가 일자리사업 평가로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50억 삭감했다.

예술 강사들이 지난 8월 예술 강사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며 촛불을 밝혔다. (사진=독자 제공)
나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매년 10개월의 계약 통지서를 받을 때면 신경이 곤두선다. 계약이 안 되면 다음해 1월부터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10월 8일 서울역 회의실. 예술 강사의 무기계약 전환 결과가 담긴 문서가 배포됐다. 나는 천천히 문서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한동안 말 없이 자리에 있었다.

예술 강사의 무기계약 전환은 또 다시 벽에 막혔다. 18년 째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문체부의 대답은 '어렵다'라는 6쪽짜리 분량의 문서였다. 그저 한숨만이 나왔다.

학생들이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난 돌처럼 얼어붙는다. 내 직업을 사랑하지만 내 직업을 추천해줄 수 없다.

11월 강사 접수가 다시 시작된다.

나는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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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재림 기자] yoongb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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