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셈정상회의는 왜 북한에 당근보다 채찍을 더 내놓았나

입력 2018. 10. 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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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美보다 더 강경한 CVID 요구, 대북제재 완전이행 다짐
"EU 기존 입장 반영된 것".."이란 핵문제 의식해 원칙 강조"
인도적 상황 개선·북미 합의 신속이행 언급, 북에서 환영할듯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아시아와 유럽의 51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브뤼셀 아셈(ASEM) 정상회의가 19일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폐막한 가운데 이번 회의에서는 당초 국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기류가 아니었느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아셈정상회의에서 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한 것이 이런 평가에 무게를 싣고 있다.

브뤼셀 아셈 정상회의 기념 촬영 [EU 홈페이지 캡처]

CVID는 이미 미국 정부도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 '잠시 접어둔 카드'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애초에는 CVID를 북한에 요구해왔지만, 협상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FFI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인하지만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당초 CVID에서 한 발짝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한국 정부도 비핵화 방식에서 'CVID'보다는 '완전한 비핵화(CD)'를 강조하고 있으며, 결국 CVID나 CD가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그동안 북한 문제 해법에서 한국 정부와 보조를 맞춰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군사적 옵션을 거론할 때도 줄기차게 군사력이 아닌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해결을 역설하며 한국 정부를 뒷받침해왔다.

그러나 비핵화 방식에 있어 EU는 여전히 CVID를 유지하고 있고, 그런 입장이 이번 아셈정상회의 의장성명에 그대로 반영됐다.

트럼프, 북한 핵 관련 CVID 요구(PG) [제작 이태호, 정연주, 최자윤] 사진합성, 일러스트

브뤼셀 외교 소식통은 "EU는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 대외정책에 대한 입장을 정해 이행하는데, 이사회에서 앞서 채택한 CVID 원칙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엔 안보리도 이미 채택한 대북결의에서 CVID를 천명했고, 이후에 이에 대한 입장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UN 회원국 28개 나라가 속한 EU는 그런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셈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방문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채택한 공동선언에서도 CVID가 고수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브뤼셀자유대학의 유럽학연구소에 설치된, 유럽 내 유일한 '한국학 석좌교수'인 라몬 파르도 교수는 "이란 핵 문제를 의식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EU로서는 이란 핵 문제 해결이 가장 큰 고민인데 이란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북핵 해법'이 참고모델이 될 수 있으므로 EU는 잘못된 선례를 우려해 북한 비핵화 방식에 엄격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비핵화 의지 표명 (PG) [제작 정연주] 사진합성·일러스트 (사진출처: AP, EPA)

또 아셈 의장성명에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약속했다고 천명한 것도 일각에선 당초 예상보다 강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럽 방문을 계기로 정상회담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북한 비핵화가 불가역적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축 메시지에 대한 지원사격에 힘입어 국제무대에서 대북제재 완화 논의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되기를 한국 정부는 내심 바랐을 법하다.

더욱이 아셈 무대에선 이미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측면지원을 기대해볼 수 있었지만, 결과는 '완전한 대북제재 이행'으로 결론 났다.

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대표는 이미 지난 7월 중순 EU 외교이사회에서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고 검증된 비핵화가 선행돼야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경제적 압박을 유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모게리니 대표는 당시 이란의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는 핵과 관련된 대(對)이란제재를 12년간 진행된 협상 말미가 아니라 이란 측에서 합의를 이행한 후에 해제했다"고 강조했다.

의장성명에 북한에 불리한 것만 실린 것은 아니다.

성명에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및 북미 간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은 북한 입장에선 환영할 대목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남북 간 합의사항에 대해 미국이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내 왔다.

한편, 이번 의장성명에서 현재 진행 중인 외교적 노력이 북한의 인권과 인도적 상황 개선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비판과 과도한 대북제재로 북한의 인도적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균형 있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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