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키운 내 회사 없어진다니.." 한수원 협력업체의 눈물

곽창렬 기자 2018. 10. 1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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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정규직化 방침 따라 9개 협력업체 현장직원 900여명 한수원이 직접 고용·자회사에 채용

"20년 키워온 회사를 하루아침에 내놓으라니요…." 방사선 분야에 전문 기술을 가진 A업체는 20여년간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관리했다. A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선의 오염 정도를 점검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한수원은 A업체와 같이 기술을 보유한 민간 업체에 방사선 관리 업무를 맡겼다. 한수원에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는 용역 업체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A업체 운영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수원이 현장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정부의 공공 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따른 것이다.

◇한수원 협력 업체 직원의 정규직화 후폭풍

한수원 '정규직 전환 제시 의견' 문건에 따르면 한수원은 협력 업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자회사의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자회사 정규직으로 입사할 경우 정년을 65세로 하고, 지금까지 경력을 100% 보장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현재의 연봉 이상을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한수원이 직접 고용하는 경우 정년은 60세이며 경력도 3년만 보장한다. 그러면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했다. 한수원은 지난달부터 방사선 관리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 대표자들을 만나 이 같은 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리·영광·월성·울진 등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관리하는 작업은 현재 국내 9개 업체가 경쟁 입찰을 통해 맡고 있다. 9개 협력 업체의 전체 직원 수는 약 1200명이다. 이 중 자회사로 소속이 바뀔 가능성이 큰 인력은 900명 정도. 이들은 어떤 식이든 정규직이 되므로 나쁠 것이 없다. 협력 업체별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한 결과 과반 이상이 자회사 전환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협력 업체 관계자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연봉도 올려주고, 정년도 보장한다고 하니 당연히 반긴다"고 했다.

◇협력 업체 "20년간 기술 투자했는데 사업 접으라니"

문제는 협력 업체들이다. 한수원이 자회사를 통해 직접 방사선 관리를 맡게 되면 이들은 졸지에 사업을 접어야 한다.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술에 투자하고, 인력을 키웠는데 거리로 나앉게 된 것이다. 이 회사들에서 일하는 300여 명의 관리·연구 인력도 갈 데가 없어졌다.

해당 업체들은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작성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방사선 관리 업종은 정규직 전환 업종에서 제외됐는데, 한수원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고 했다. A업체 대표는 "정부가 만든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라 20여 년이 넘는 기간에 기술과 인력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며 "국가가 사유재산을 다 빼앗아가도 되느냐"고 말했다.

B업체 대표는 "전문 기술 인력을 파견하는 우리는 원래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한수원 입장이 바뀌면서 모두 망연자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고 논의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제빵 기사들을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을 때도 이 같은 논란이 빚어졌다. 당시 제빵 기사들을 채용한 협력 업체 관계자들은 "십여 년간 가꿔왔던 중소기업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묻고 싶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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