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나온 완도군 '염전노예' 피해자 "탈출 시도하면 주변 사람들이 염전주에게 신고"

박광연 기자 2018. 10. 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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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염전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당 기사의 사건과는 무관함)

15년간 전남 완도군의 한 염전에서 사실상 ‘노예’로 일한 김모씨(53)가 17일 서울고등법원 306호 법정에 나왔다.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의 마지막 변론기일에서 하고 싶은 말을 진술하는 자리였다.

2014년 염전을 탈출한 김씨는 현재 광주광역시에서 생산직 일용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재판부 질문에 때로는 머뭇거렸지만, 염전 생활 당시의 실상을 어눌한 말투로 차분히 진술했다. 지적장애 3급인 김씨 옆에는 진술보조인이 앉았다.

김씨는 “노동청에 처음 조사 받으러 갔을 때는 조사를 해주지 않았고, 두번째 갔을 때는 (근로감독관이) ‘갑갑하다’면서 조사 안해주고 그냥 가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김씨 대리인에 따르면, 김씨는 처음 노동청을 간 직후 염전주에게 차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김씨는 노동청에 “나는 노임을 안 주는데 누구는 준다”라는 취지로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는 다소 부정확한 김씨의 발언을 듣고 “그동안 일했던 노임을 받고 싶다는 건가”라고 물었고, 김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염전 노예’로 있던 때의 상황을 자세히 물었다. 김씨는 ‘염전주인이 때리는 걸 주위 사람들이 다 알았나’는 질문에 “주위 사람들이 다 봤다”고 했다. 자신이 노임을 받지 못하는 것도 주변에서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염전주가 협박하고, 주위 사람들이 염전주에게 협조한 탓에 염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씨는 ‘왜 경찰에 신고를 안했나’는 재판부 질문에 “염전주가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갇혀있던 집에서) 나오려 하면 염전주가 차 타고 따라오고, 동네사람들이 다 염전주에게 얘기했다”며 “동네사람이 연락하면 염전주가 잡으러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근 염전에도 노임을 못받아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전 노예’가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노임을 못 받은 분이 염전에 많나’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김씨는 전남 신안군 ‘염전 노예’ 두 사람과 함께 항소심까지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보호 의무가 있는 대상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심각한 정신적·재산적 충격을 입힌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묻기 위해서다. 김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함께 재판을 받던 8명 중 1명은 승소했고, 나머지 7명 가운데 4명은 2년 이상 소요된 재판 기간과 소송비용 등의 부담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는 김씨 외에 다른 원고들이 염전노예 생활을 할 당시 1년에 3~4회 가량의 ‘면담기록부’가 작성됐다는 경찰관의 서면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원고들이 염전에서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나 근로감독관이 잘 알고 있었음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감독관청 공무원 등의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한 공무집행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김씨의 진술을 들은 뒤 모든 재판 절차를 종결했다. 김씨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11월23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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