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찰記>유엔司에 대한 무지와 불장난

기자 2018. 10. 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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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북·중·러, 유엔사 근거 비판

中은 ‘정전협정 주체’ 아니다

日에 있는 후방司도 매우 중요

웨인 에어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이 지난 5일 미국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왜 그렇게 열심히 종전선언을 추진하는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종전선언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 ‘위험한 비탈길(slippery slope)’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어 부사령관은 캐나다군 중장이다. 유엔사(司) 관계자들은 그동안 반미(反美) 감정이나 외교적 갈등을 우려해 한국 정부 입장과 다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발언을 가능한 한 자제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게 될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지난달 25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사 소관”이라며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흐름은 종전선언 추진과 함께 유엔사 해체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군사령부에 대해 말한다면 유엔의 통제 밖에서 미국의 지휘에만 복종하고 있는 연합군사령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사를 공격했다. 지난달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마차오쉬(馬朝旭)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유엔사는 냉전 시대의 산물로 군사적 대결의 의미를 잔뜩 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유엔사가 21세기 베를린 장벽이냐”고 물으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한미연합사가 있는데 유엔사가 별도로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1974년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에 이양한 이후, 유엔사의 독자적 군사적 역할이 미미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유엔사가 필요한 것은 정전협정 관리 때문이다. 정전협정은 주권국가 간의 협정이 아니다.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따라서 유엔사가 없어지면, 정전체제의 한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 정전협정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1953년 7월 한반도 휴전체제를 유지시켜온 주요 틀이다. 실질적 구체적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는 정치선언에 불과하고 내용이 모호한 종전선언으로 정전협정을 대체해선 안 된다.

그리고 중국은 정전협정의 주체가 아니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는 중국 정부나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관이 아닌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이다. 중국은 인민지원군에 대해 정부군이 아니라 ‘자발적 참전 지원군’이라고 주장해 왔다. 중국 인민지원군은 1958년 10월 북한에서 철수해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다시 흡수됐으며,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중국 인민지원군 대표단도 1994년 12월에 철수해 버렸다. 따라서 중국 인민지원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중국 정부가 그 계승자임을 주장할 근거도 없다.

또, 유엔군 후방사령부의 정치·군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 위치한 유엔군 후방사의 병력은 몇 명 안 된다. 호주 공군 대령이 사령관을 맡고 있는데, 현재는 연락 업무에 한정돼 있다. 그러나 유엔군 후방사는 한미연합군과 일본 내의 미군 군수기지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미국·영국·캐나다·터키·호주·필리핀·뉴질랜드·태국·프랑스 등 유엔군 후방사 소속 9개국이 일본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맺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별도 동의 없이 평상시에는 사전 통지만으로, 긴급 사태 시에는 사전 통지 없이도 군 병력과 물자를 일본 영토를 통과해 이동시킬 수 있다. 별도의 유엔 안보리 결의나 일본 정부의 동의가 없더라도 유엔군 기치 아래 미국 등 유엔군이 병력과 물자를 신속히 일본을 통과해 한반도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이 선언되면, 유엔사 명분이 약화할 것이며, 해체 주장도 커질 것이다. 최근 북한·중국·러시아가 한목소리로 유엔사 존재 근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가 북한이 종전선언에서 노리는 것은 유엔사 해체라고 여러 번 경고했다. 지금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상습 강도범과의 구속력 없는 약속을 믿고 경찰 지구대에 연결된 비상벨을 치우자는 것과 다름없다. 반대로 올 1월 유엔군 참전 16개국과 한국·일본·인도·스웨덴 등 20개국이 참여한 ‘밴쿠버 그룹’이 결성됐는데, 이를 통한 유엔사의 역할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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