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섬광'의 기억, 돌아온 건 차별..원폭 피해자의 눈물

박창규 입력 2018. 10. 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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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고국 돌아왔지만..고통과 차별 겪어온 피해자들의 사연

[앵커]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사흘 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찾아와서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휩쓸려 숨지고 다친 한국인 피해자들은 10만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 번도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했고 고국에서도 차별 받아왔지요.

박창규 기자가 현장취재했습니다.

[기자]

[이수용 (당시 18살) : 그 당시에 날씨가 너무 좋아가지고 그날]

[윤수길 (당시 14살) : 플랫폼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어. 8시 15분에]

[김일출 (당시 19살) :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있고 동생들하고 엄마는 방에 있고]

여느 때처럼 하루는 시작됐습니다.

기억 속 그날 아침은 유난히 맑았습니다.

압도적인 폭력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김일출 (당시 19살) : 사이렌 소리도 안 불고 우웅 하더니만 팍 불이 번쩍 하면서…]

한번도 상상 못한 광경이 시작됐습니다.

[이수용 (당시 18살) : 잠시 실신을 했어요. 놀라서. 정신이 돌아와서 보니까 피바다에 누워있어요.]

[윤수기 (당시 14살) : 불빛이 확 왔잖아요. 일본말로 아쓰이 아쓰이 뜨겁다고 불바다가]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고 모두가 서로 살려달라고 울었습니다.

[김헌동 (당시 15살) : 다리 밑에 시체가 부풀었고요. 전부 고꾸라져서 물 먹는다고. 물이 펄펄 끓는다고]

그곳에서 사람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었고.

[이수용 (당시 18살) : 사람 꺼풀이 명태 꺼풀이 벗겨지듯이 손톱 끝에 매달려 있어. 질질질 끌고]

시신은 처리할 폐기물과 같았습니다.

[김헌동 (당시 15살) : 송장을 끌어모아서요. 갈고리로 여기 한무더기 저기 한무더기 불에 태워요.]

후유증은 길고 지독하게 이어졌습니다.

[안부자 (당시 8살) : 첫 애 놓으니까. 노랗데요 핏기도 없이. 3개월 키우다 죽었어요. 애를 놓기만 하면 죽어.]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기다린 것은 차별이었습니다.

숨어 살았습니다.

[윤수기 (당시 14살) : 결혼하고 나서도 결혼할 때도 원폭에 대한 건 일체 얘기 안했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10만 명에 이릅니다.

5만 명은 일본에서 숨졌고 4만 3000명이 살아 남아 귀국했습니다.

[안부자 (당시 8살) : 서러웠던 세월이 많아가지고 한평생에 눈물 젖은걸 생각하면 어디가서 말하겠어요.]

73년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2306명.

평균 나이는 82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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