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유정희 "고조선은 실재했다. 역사학계의 리만가설 풀릴 수도"

김동호 기자 2018. 10. 2. 11: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일연의 〈삼국유사〉 기록은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감자요, 풀리지 않는 퍼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국왕검의 탄생과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담긴 〈삼국유사 기이편〉 이외에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사료는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 측 사료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측 사서에도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기록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18세기 초인 1710년대에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프로방스 출신 프랑스인 예수회 선교사 ‘쟝 밥티스트 레지(Jean-Baptiste Regis : 1663~1738)’는 한국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을 글로 남겨 유럽으로 전했다.

그와 그의 동료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작성한 중국과 동아시아 관련 기록들은 당대 유럽에서 『Description ge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physique de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기에는 고조선 건국의 실마리를 풀어줄 흥분되고도 충격적인 기록들이 담겨져 있다.

레지 신부의 기록을 해제, 교차검증까지 하여 출간한 이는 유정희(柳正熙, 37, 남)라는 젊은 역사학자이다. 그는 최근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레지 신부의 글을 해제, 교차검증까지 하여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를 만나 주장을 들어봤다.

▲ 고조선 연구에는 어려움이 많은데?

일연의 기록은 단군이 1천 9백 8세에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고조선 연구에 주로 활용되는 중국 측 사료에 고조선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2333년으로부터 무려 1600여년의 세월이 흐른 기원전 7세기의 일을 다룬 <관자(管子)>의 기록이다.

이 시간적 공백은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일연의 기록을 의심케 하였다. 따라서 어쩌면 역사학자들이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기사를 제대로 된 역사기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 고조선에 대한 생각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확인시켜 줄 다른 사료가 없다,”라는 논리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미약하다,”라는 이유로 한국 역사학계는 기원전 20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조선의 건국을 ‘증명불가능한 명제’로 규정하였고, 같은 이유로 고조선 건국문제는 한국 역사학의 ‘리만가설’로 남게 되었다.

“더 이상 사료는 없다”라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줄곧 역사학계가 내린 결론은 결국 역사학자들이 “고조선 건국설화는 ‘신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고 선언하게 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과 큰 거리가 있어 대중과 역사전문가들 사이의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 레지 신부의 책을 해제하고 출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중국 선진사(先秦史), 그중 주로 하상주(夏商周) 전공자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한 대학도서관에서 300년이 넘게 잠들어있던 레지 신부의 불어와 영어 원문기록을 발굴했다. 이를 20세기 초 독립운동가들인 김교헌, 유근 등이 편찬한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등과 교차검증하는 작업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새롭게 조명하였다.

2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중국과 한국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작성된 이 두 기록이 일치한다는 것은, 20세기 초 김교헌 등이 불어, 영어에 무지하고 〈신단민사, 실기〉 등이 레지의 글보다 훨씬 구체적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김교헌 등이 레지의 글을 본 것이 아니라 애초 300년 전부터 이 둘의 공통원전이 되는 중국 측 사료가 오래전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강력한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믿을만한 교차검증으로 역사학계의 리만가설이 풀릴 수도 있다.

▲ 레지 신부의 기록이 가지는 의미는?

레지 신부의 기록은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고조선 건국에 대한 학계의 공식입장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워낙 중요한 사료인 만큼 역사학자들 중 상당수가 레지 신부의 사료를 직감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간접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학계를 고민에 빠뜨렸던 오랜 난제가 풀리려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유정희(Thomas F. G. Yu)

: 대구 태생, 오성고(대구 수성구) 졸업, 미국 리버럴알츠 대학교 중 하나인 Midwestern State U.(TX) 등에서 Global Studies를 전공하고, 또한 고려대(서울) 대학원 사학과에서 동양 고대역사를 전공하여 졸업하였다. 역사학자, 고고학자, 작가.

* 리만가설

: 독일의 천재수학자 ‘리만(Geo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1826~1866)’이 1과 자기 자신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소수의 패턴에 대해 제기한 가설이다. 그의 사후 지독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수학계의 7대 난제로 불린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의 수학자 존 내시(John F. Nash, 1928~2015)가 이 문제에 천착하다가 조현병에 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동호기자 dongho@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