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표지석] <4> 기로소
최수문 기자 2018. 9. 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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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걷다 보면 사진처럼 '기로소 터'라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로소(耆老所)'라는 관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기로소에 든 사람은 국왕 4명을 포함해 7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동판은 현재 KT빌딩 앞에 있지만 실제 기로소 위치는 옆 교보빌딩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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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걷다 보면 사진처럼 ‘기로소 터’라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로소(耆老所)’라는 관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관리들의 예우를 위해 별도로 관청을 설치했다. 2품 이상 전·현직 관리 중에서 70세 이상이 기로소에 들었다. 등록해 관리됐고 다양한 혜택도 주어졌다. 명예와 장수를 동시에 누린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기로소에 든 사람은 국왕 4명을 포함해 7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고전 예기 곡례편에는 60세를 기(耆), 70세는 노(老)라고 했는데 ‘기로’는 여기에서 나왔다. 아쉬운 것은 후손들이 만든 동판의 위치다. 동판은 현재 KT빌딩 앞에 있지만 실제 기로소 위치는 옆 교보빌딩 자리였다. 동판을 오른쪽으로 100m가량 움직여야 맞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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