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르포] 사라진 MB 기념비..그리고 수문 여는 이포보

김민욱 2018. 9. 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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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경기도 여주 이포보의 모습. 이포보 수문은 다음달 초 부분 개방된다. 김민욱 기자


한강 3개 보 중 유일한 수문 부분 개방

“쏴아아아~.”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0일 찾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이포보(洑). 짙푸른 색의 한강 물이 높이 6m, 길이 521m의 이포보 위를 살짝 넘쳐 하류 쪽(양평)으로 쉼 없이 흘렀다. 환경부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에 따르면 다음달 초 이포보 수문이 부분 개방된다. 준공 6년 4개월 만이다. 한강에서 운용 중인 3개 보 중 유일하게 개방을 앞두고 있다. 여주·강천보는 주변 생활용수 취수문제로 수위를 낮추기 어려워 제외됐다.

이포보는 가동보다. 상판 위로 보이는 7개의 ‘알 모양’ 조형물 안에 수문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권양기가 설치돼 있다. 그동안 이포보 수문은 폭우나 보 밑 강바닥의 퇴적물을 흘려보낼 때나 열었다고 한다. 이런 유지·보수상황이 아닌 평상시에 수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조사·평가단은 부분 개방으로 인한 수질·수 생태 등 11개 분야의 영향을 모니터링해 앞으로의 개방수위, 기간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 결정은 4421억 원짜리 이포보의 처리방향과도 이어진다. 정부는 작년 6월부터 전국 16개 보 중 10개 보를 순차적으로 개방, 영향을 조사해왔다.
지난해 2월 여주 남한강에서 발견된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 [사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수문 개방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다음 달 2일 이포보 부분 개방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 여주시민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찬성 쪽은 재자연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반대쪽은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포보 전망대에서 직선거리로 200m쯤 떨어진 천서리막국촌에서 만난 주부 김모(42)씨는 “더러운 물에 산다는 실지렁이(수질 4급수 지표종)가 남한강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보를 개방하면 당연히 수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어업인 신모(62)씨는 “수심이 낮아지면 조개류와 어류가 폐사할 게 뻔하다”며 “수상레저 업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2월 말 한국수자원공사가 수질 개선을 위한 시험방류를 하자 이포~여주보 구간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다슬기와 조개 등 어패류가 집단 폐사한 일이 발생했다. 이포보 수문이 열리면 관리수위가 28EL.m에서 25.3EL.m로 낮아질 거로 보인다. EL.m은 해발기준 단위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방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간당 1~3㎝ 수준으로 천천히 단계적으로 수위를 낮출 계획이다”고 말했다.
20일 여주보 전망대에서 바라본 준설토(붉은 원 안). 야트막한 야산처럼 보이지만 흙더미다. 여주시 내 전체적으로 상당한 양이 쌓여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해 9월 여주시내 쌓인 준설토 모습. 김민욱 기자


1900개 축구장 잔디 덮을 수 있는 준설토

보 수문의 개방여부에 정부 당국의 관심이 쏠린 사이 ‘준설토’ 처리문제는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여주보 전망대(능서면 왕대리) 3층에서 천남지구공원을 바라 보면, 공원 바로 뒤로 야트막한 ‘인공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4대강 사업 당시 강바닥에서 퍼 올린 준설토를 쌓아 생긴 것이다. 잡초 등이 자라 마치 야산처럼 보인다.

현재 여주시 내 적치장 8곳에 쌓인 준설토는 1366만2000여㎥에 이른다. 애초 퍼 올린 전체 준설토 3562만9000여㎥ 중 아직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양이다. 1913개의 축구장(면적 7140㎡)에 흙을 높이 1m까지 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당초 여주시는 한강 준설토를 판매해 1899억 원의 순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재고관리 비용 등 지출이 커지면서 순이익이 지난달 말 기준으로 40억원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주시 관계자는 “준설토가 한꺼번에 시장에 풀릴 경우 골재 가격의 하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보니 판매속도를 조절 중이다”며 “이에 관리비용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시내 천서리막국수촌 입구에 세워졌던 이명박 대통령 방문기념비 모습.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김민욱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주 이포보 및 천서리막국수촌 방문 기념비가 놓여 있던 자리(붉은 원 안). 김민욱 기자


사라진 MB 막국수촌 방문 기념비는 어디로

한때 천서리막국수촌 초입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는 비가 설치돼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1년 10월 22일 여주 이포보 일원에서 열린 ‘4대강 새 물결 맞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여주 지역을 방문한 적 있다. 행사 당일 이 전 대통령은 이포보 외에 천서리도 찾았다. A막국수 대표 B씨(58)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비를 세웠다고 한다. 성인 허리쯤 오는 크기의 비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늬와 이 전 대통령의 친필사인 등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기념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난 3월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후 기념비가 사라졌다고 한다. B씨는 “천서리를 찾은 젊은 사람들이 (이 전 대통령 방문) 기념비를 향해 욕을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심지어 비 주변에 침까지 뱉더라”며 “더는 안되겠다 싶어 철거해 다른 곳에 보관해 놓았다”고 말했다. 사라진 MB 기념비와 6년 만에 수문을 여는 이포보는 4대강 사업의 묘한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여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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