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본 막말하는 시누이, 그게 나였다

양성현 입력 2018. 9. 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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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의 명절] 가족에게 무례할 바엔 무심한 게 낫다

[오마이뉴스 글:양성현, 편집:최은경]

가부장제 중심의 명절 문화를 21세기에 걸맞게 직접 고치고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것들의 명절'에서 그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Pixabay
남동생은 십 년 가까이 열애하고 결혼했다. 남동생이 제 여자친구라며 지금의 내 올케를 소개했을 때가 까마득하다. 이십 대 초반인 나도 어렸고, 두 살 터울인 남동생도, 남동생과 동갑인 그녀도, 우린 모두 어렸다. 우리가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때다.

당시의 나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앓는 천둥벌거숭이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녀에게 이꼴저꼴 다 보였다. 우리는 남동생 없이도 의기투합해 종종 어울렸다. 나는 그녀를 참 좋아했다. 나와 비슷한 점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언젠가 '내가 한 번도 돌봐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불쑥 생긴 고마운 내 동생'이라고 편지를 쓴 적도 있다.

한때 그 커플이 잠시 헤어졌던 기간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만났다. 찰나일지라도, 나는 동생에게 앙심을 품을 만큼 그녀의 편이었다. 그녀가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나를 계속 만나면 연인과의 이별이 마무리 지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슬프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며 그녀는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갓 입사한 회사에 다니던 때인데, 전화를 끊고는 마치 지금 막 실연이라도 한 여자처럼 눈물을 훔쳐댔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이제와 말하니 조금 간지럽기도 하다.

다시 만난 동생 커플은 결혼했다. 당연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했다. 신이 났다. 쑥쓰러움이 많아 살갑게 굴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이런저런 선물들을 보내며 나름대로는 살뜰히 챙기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흐르고, 동생 내외는 부모가 되었다. 그러던 중,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로부터 먼저 연락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오해인진 몰라도, 어쩐지 그녀가 냉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심한 척 왜 연락 한 번 하지 않냐고 묻자, 올케는 간단히 답했다.

"(가족 모두가 있는) 그룹대화창에서 다 소식 주고 받으니까요."

서운했던 것도 잠시. 잊을 뻔한 일들이 떠올랐다. 지난 날을 돌이키고 곱씹은 뒤에야 내 실수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 글은 나의 변명이고 반성문이다.

여동생같던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올케가 됐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밉상 시누이 역할을 했던 오연서.
ⓒ KBS
동생 내외가 결혼한 지 일년쯤 되었을 때다. 올케는 아이를 가져 제법 배가 불룩했다. 직업상 거주지 이전이 잦은 동생은 막 새로운 지역에 발령받았고, 새 집이 준비되는 동안 동생 내외는 잠시 떨어져 있었다.

나는 동생은 직장 근처에서, 올케는 신혼집에서 지내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올케를 만났다가, 그녀가 여러 날 째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됐다. 나는 내 말에 독이 있는지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난 너가 친정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혼자 있는 게 힘들면 OO랑 같이 있지. 아무리 임시 숙소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 OO도 살고 있고. 너 아이들이 커서 전학을 다녀야 할지라도, 가족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친정 부모님이 너를 안쓰럽게라도 여기시면 어쩌니. 괜히 OO가 잘못이라도 한 거 같잖아."

온통 잘못되었다. 구구절절,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 뿐이다. 기억을 되감으며 글을 쓰는 지금도,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느 구절 할 것 없이 몽땅, 자격 없는 말이었다. TV에서나 봤던 막말하는 시누이, 그게 나였다. 심지어 올케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나는 영문을 몰랐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한동안 알지 못했다.

내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동생보다 늦은 결혼을 한 뒤였다.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지, 좋은 말도 자칫 오해를 낳기가 쉬운 복잡한 관계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뒤에야 깨달은 것이다. 겪고 나서야 안다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한심한가. 무례해도 되는 사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올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우리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지진 않았다. 한참 지난 후에야, 그녀로선 우리가 올케와 시누이 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 그렇게만 전해들었다. 뻔뻔하게도, 나는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품기도 했다. 왜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왜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오래 쌓아올렸던 우리 관계는 얼마나 허망한가 하며.

무례할 바엔 무심한 것이 낫다

지금은 인정한다. 그녀가 옳았다. 서러웠다고, 언니가 시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한들, 나로선 변명만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반성문을 자청하면서도 내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얼마나 가깝게 여겼는지, 내 입장의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을 보면. 우리는 그래도 되는 사이인 줄 알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아도 뻔한 변명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시누이-올케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도 그럴 테지만, 나 역시 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 생각없는 참견이 튀어나올라 치면 애써 꾹꾹 누른다.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내가 간섭할 자격은 없다. 무례할 바엔 무심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우리가 쌓아올렸던 시간이 아쉬울 때도 있다. 더이상 우리는 언니 동생 관계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나 이 또한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관계 또한 쉼없이 약동하는 것일 테니. 그저 시간에,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기로 한다. 각자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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