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짐승에서 사람이 되고 싶다" 형제복지원 생존자의 외침

부산CBS 김혜경 기자 2018. 9. 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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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때부터 4년 7개월간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최승우씨
30년 트라우마 털고 연극배우로 인생의 새로운 도전
국가가 외면한 폭력 피해자, 희망의 아이콘 되고파
현대판 홀로코스트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자 최승우씨의 모습. 30여년간 한을 품고 살아온 그는 최근들어 복지원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극에 도전한다. (부산 CBS)
"14살 그해 봄, 개금 파출소 앞을 지나지만 않았더라면... 가방에 그 빵이 없었더라면... 저는 짐승처럼 살지 않았을 겁니다. 단 하나의 질문, 그것의 답을 얻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내가 무슨 죄가 있냐고 말입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최승우(50)씨는 매일 10알이 넘는 약을 먹는다.

신경안정제, 혈압약, 디스크.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을 때마다 다짐한다.

"이제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날의 참상, 폭력, 끔찍했던 기억은 약속이라 한 듯 매일 밤 악몽으로 찾아온다.

그렇게 반복된 것이 벌써 30년 세월이다.

"10대 시절을 꼬박 형제 복지원에서 살았습니다. 계속되는 소대장들의 성폭행과 폭력, 하루마다 죽어 나가는 시신들, 암매장.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스스로 채찍질한 게 벌써 30년입니다. 자그마치 30년. 잊혀지겠습니까?"

그는 1982년 4월, 집으로 가던 중 부산진구 개금 파출소 인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어디 가냐, 가방 좀 보자' 시답지 않게 말을 건내던 경찰은 그의 가방안에 있던 빵을 보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경찰서로 끌고 가 이유 없이 곤봉으로 때렸다. 담배를 피우던 라이터로 성기를 고문했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결손가정에게 주는 그 빵봉지 하나를 '훔쳤다'고 거짓 자백했다. 그길로 형제 복지원으로 갔다. 집에 바로 코앞인데, 경찰서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그 지옥으로 말이다.

14살에 들어간 그곳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일상적인 폭행과 노역은 그나마 괜찮았다. 이른바 '소대장'이라고 불리던 형제복지원 관계자들은 최씨를 '똥띠'라고 불렀다. 성폭행을 일삼으며 대수롭지 않게 부르던 별명이다.

복지원 내부 텃새도 견디기 힘들었다. 3~4살 많은 형들은 이유 없이 구타했다. 자신들이 받은 폭력의 아픔을 더 어린 아이들에게 되갚음했다. 이가 흔들리면 장난삼아 실로 이를 다 뽑아 버렸다.

"체구도 작고 어리고 하니 항상 성폭력의 대상이었습니다. 10대 때 수년간 시달리다 보니 대소변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소대장들에게 저는 그저 하나의 물건일 뿐이었습니다"

일상이 된 폭력.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들. 고단함이 뭔지 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노역.

꼬박 4년 8개월이다. 그 지옥에서 지낸 세월이.

도망치듯 복지원을 나와 사회를 마주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흉포해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년간 연락이 끊어진 아들을 당시 이혼상태였던 부모는 궁금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더 큰 상처가 됐다. 대한민국이 싫어 배를 탔다. 무조건 떠나고 싶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인도 만났다. 아이도 가졌다. 이제 나도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는 것을 처음 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임신 8개월 때 그녀의 부모는 '형제 복지원 출신이면 부랑자나 다름없다'며 강제로 여인을 데려가 버렸다.

수년 뒤 아이는 이름모를 기관에 입양되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그의 오빠에게서 들었다.

사회는 더이상 그를 인간답게 살길 허락하지 않았다. 그 형제 복지원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들 때 마다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경찰을 보면 두렵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릴 적 트라우마는 최씨를 폭력적으로 만들었다. 경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공무집행방해로 교도소 신세도 지게 됐다.

같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남동생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2009년 세상과 하직했다. 최씨는 더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2013년, 같은 처지의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도 최씨와 다르지 않았다.

억울한데, 왜 그랬는지 묻고 싶은데 방도가 없었다. 이미 몸은 엉망이어서 일을 할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래도 한줄기 '빛'을 봤다.

"이제 사람답게 살도록 우리끼리 의지하자"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1년 가까이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형제복지원 관련 특별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부산 CBS)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을 모으고 참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회 앞에 노숙 천막을 지었다. 이후 삭발과 단식투쟁,국토대장정을 끝내고 다시 노숙농성까지.

혹한, 폭염을 견디며 꼬박 5년 가까이 목이 터져라 외치다 보니 조금씩 사람들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생존자들끼리 다짐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서로 다독이며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자고 손을 잡았다.

처절한 몸부림 끝에 희망이 생겼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명백한 위헌, 위법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 비상상고를 권고한 것이다.

진선미 의원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오거돈 부산시장도 머리를 숙였다. 부산시가 당시 복지 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한 책임이 있다고 '부산시장으로서' 공식 사과한 것이다.

수년간 외침 끝에 최근 상황이 급박히 돌아간다. 하지만 뭐가 달라졌는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특별법이 제정돼야 끔찍한 폭력의 진상규명, 피해회복이 이뤄진다. 최씨에게 '그때'는 도대체 언제가 될지, 기나긴 기다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그저 오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그래도 자신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300일 넘게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이유 없이 국가의 폭력, 폭압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이들의 투쟁과 연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술병대신 그의 손에는 연극 대본이 들려 있다. 연극 '편육'에 배우로 도전하게 된 것이다.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알리고, 이유 없는 폭력 때문에 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이번 추석이 그래도 덜 외롭습니다. 제가 먼저 바꿔야 모든 것이 바뀐다는 사실을 30년간 몸부림친 뒤에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 길목에 있습니다. 짐승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연극을 통해 희생자들의 아픔을 달래고, 나 또한 바뀌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생존자들 모두에게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고 가슴 깊이 느끼길. 진실규명을 외치는 목소리가 그 과정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그 빵 한개가 평생 원망스러웠던 최씨는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꿔본다.

생존자들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에서 자유로워지길, 자신이 오르는 연극 무대를 통해 많은 이들의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길. 그래서 더욱 뜻깊은 추석이다.

△ 형제복지원 사건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내무부 훈령에 근거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무고한 시민 3천여 명 이상을 감금, 강제 노력, 폭행, 살인을 행한 인권 유린 사건으로 '현대판 홀로코스트'로 꼽힌다.

형제복지원이 자체 집계한 사망자만 해도 551명에 이른다. 일부 시신은 암매장됐고 유족 동의 없이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오랜시간 잊혀져 있다가 최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과 국가인권위원회, 전국 사회복지 관련 단체의 특별법 제정 촉구 성명 등 노력 끝에 공론화됐다.

또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도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명백한 위헌, 위법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 비상상고를 권고했다.

비상상고는 법원의 확정판결에 법령위반이 발견됐을 때 검찰총장이 이를 바로 잡아달라며 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제도다.

현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이 연락이 닿은 생존자는 2천여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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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김혜경 기자] hk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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