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국 인재를 '수출 전사'로 쓰는 일본 기업

이승철 입력 2018. 9. 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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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한국 기업의 도쿄 지사장은 일본의 기업인으로부터 뿌듯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굴지의 종합 상사 중역으로서 경험이 많은 그는 한국 직원의 장점을 여러 가지 들며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이 기업의 경우 무역을 중개하는 상사인 만큼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최근 해외 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일본 직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 요즘은 기업별로 인력 쟁탈전이 심해 심지어 해외 발령을 내면 사표를 내고 회사를 옮기겠다는 분위기마저 있어 골치란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해외에 보내놓아도 직원들이 현지에 동화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한다. 일본 상사의 지사 내에서는 일본어가 공용어. 사실상 일본을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 속에 몇 년이 지나도 일본인 직원이 할 수 있는 현지어라고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수준일 정도.

그런데 최근 한국 직원을 인도네시아 지사로 보냈는데, 현지어를 열심히 배우는가 싶더니 사업 상대들에게도 이런 점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비즈니스 성적은 뒤따라 왔을 터. 왜 한국의 '국제화'가 빨랐는지, 수출이 급속히 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이 기업은 한국 지사에서 검증된 한국 직원을 본사로 불러들인 뒤 가르쳐 다시 해외 지사로 보내 '수출 일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니, 글자 그대로 한국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한국 청년들이 외국 기업에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3국 수출 시장에서 우리 청년들끼리 맞붙는 상황도 그려지는 조금 복잡한(?)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 ‘반경 1m 세대’…성장의 경험이 없는 일본 청년들


몇 년 전 교토대의 모 교수를 만났을 때 학생들에 대해 이러 말을 들었다.

"교토 옆에 비와코라는 호수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비와코 건너편으로도 가지 않으려고 해요."

교토 동쪽에 비와코가 있는데 이곳을 넘는다는 말은 도쿄로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정도로 밖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곳에서만 살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런 일본의 젊은이들을 '반경 1m 세대'라고 표현했다.

일본 청년들의 '보수성' 내지 '자기 안착성'은 기본적으로 긴 시간 불황을 경험하면서 나타났다는 분석이 많다. 즉 경제 성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세대인 만큼 미래 소득이 늘 것이라는 확신이 약하고 기본적으로 자기 긴축 성향이 강하다는 것. 이러한 성향이 변화를 지양하고 내 주변, 범주 내에서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쪽으로 맞춰졌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일본 소비자 청이 분석한 '평균 소비성향' 지표를 보면 1984년과 2014년을 비교했을 때 30~34세 구간은 13.3%p, 25~29세는 10.9%p, 25세 미만은 11.9%p의 하락 폭을 보였다. 전 가구 평균이 7.8%p 낮아진 것에 비하면 젊은 층의 소비 성향 하락폭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적 후퇴기인 잃어버린 20년 동안 유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풍족한 소비 경험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현상 유지 혹은 긴축에 맞춰진 행동 양식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 승진도 싫은 젊은이들…서서히 쪼그라드는 日

다시 일본 기업 이야기.

지난해 5월 미쓰비시 UFJ 리서치앤드컨설팅이 재밌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신입사원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출세'와 '출세 없이 즐거운 업무' 중 하나를 고르는 조사에서 53.4%가 '출세 없이 즐거운 업무'를 택했다.

자기 삶의 질을 찾는 '워라벨' 현상이 일본에서 더 빠르게 자리 잡은 것도 있지만, 일본은 그 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가 제자리에서 지분지족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 기업 내에서 더는 승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른바 '승진 기피'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건 이제 놀랄만한 뉴스도 아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일손 부족으로 정년 연장까지 되는 마당에 굳이 애써서 많은 일을 부담하는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다.


진취성의 부족은 해외에 유학하려는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데서도 알 수 있다. 2004년 8만 2,945명을 정점으로 해 2015년에는 5만 4,676명까지 그 숫자가 줄었다. 오죽하면 일본 정부가 장학금까지 만들어 해외 유학을 장려하고 나섰을까?

가뜩이나 내수 시장 중심의 폐쇄적 갈라파고스 형 '일본 경제 구조'에 "일본 안에 다 있는데, 왜?"라고 말하며 변화를 싫어하고 외국 생활을 꺼리는 젊은 세대의 성향까지 더해져 일본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본 내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가지 조금 다른 이야기. 국내 한 반도체 회사의 일본 수출 실적을 물어보니 매년 줄어들었단다.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반도체' 수입이 줄어드는 건,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관련 산업이 약화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래도 반도체를 제일 많이 하는 일본 기업은 '소니'란다. 그런데 소니는 지난해 전자보다는 '금융'에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

이승철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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