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공작 은폐 '김하영·김기동'..위증에 5년 허송세월

한광범 2018. 9.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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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신분 불구, 朴정부서 적극적 진실 은폐 가담
'댓글 발각' 김하영, 차폐막 뒤에서 혐의부인 재판중
'원세훈 위증' 김기동, 자백·사죄..집행유예 선고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국가정보원 정치공작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평직원(파트원)은 김하영과 김기동이다. 상부의 지시를 받아 공작에 가담한 말단 직원 대부분이 처벌을 피했지만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이 국정원 댓글공작의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김하영은 처음으로 댓글공작이 발각된 국정원 요원으로서 댓글공작의 상징적 인물이다. 국정원에서 여전히 근무 중인 그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 공작 장소가 발각된 지 5년 2개월여만인 지난 2월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2013년 9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상부에서 댓글 공작을 위해 하달하던 ‘금일 이슈 및 대응 논지’에 대해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허위증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 (사진=연합뉴스)
그는 지난 5월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지난 12일까지 세 차례 재판을 받았다. 김씨는 첫 재판을 앞두고 “현직 국정원 직원 신분으로서 신원 노출의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재판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는 대신 차폐막을 설치해 김씨의 모습을 방청석에서 볼 수 없게 조치했다. 김씨는 법정 출석시에도 법관 전용 통로를 이용해 신원 노출을 피하고 있다.

김씨는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구두로도 이슈와 논지가 하달된 적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며 위증이 없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으로 댓글 공작을 직접 실행했다. 대선 8일 전인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안팎의 제보를 받은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에 의해 공작 장소가 발각돼 처음으로 정치공작의 실상이 외부에 드러났다.

◇김하영, 정권교체 후에도 “상부지시 업었다” 거짓말

말단 직원임에도 검찰이 김씨를 기소한 것은 그가 적극적으로 진실 은폐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발각 당일 민주당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찾아오자 문을 걸어 잠갔다. 김씨는 ‘밖으로 나오라’는 민주당·경찰·선거관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35시간 동안 집안에 머물렀다. 컴퓨터 전문가인 그는 집에 머물며 PC에서 공작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김씨는 이후에도 수사기관과 사법부, 국회를 철저히 농락했다. 그는 수사 초기 “정치 댓글을 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컴퓨터 포렌식 등을 통해 정치 댓글 물증이 나오자 “북한과 종북세력 왜곡·선전·선동 대응 목적으로 댓글을 달았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정치개입 관련 윗선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생중계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마찬가지 발언을 이어갔다.

김씨의 이 같은 태도는 정권교체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지난해 8월 ‘오늘의유머’ 운영자 이모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상부 지시는 없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기소 이후인 지난 4월엔 국정원 수사방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정치 관여 글을 작성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그렇게 평가되고 있는 게시글을, 지시를 받고 작성한 사실이 있다”고 답하며 사건 발생 5년 4개월 만에 일부 조직적 정치 공작을 인정했다. 하지만 수사방해와 위증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증언을 거부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연합뉴스)
◇김기동, 원세훈 파기환송 결정적 위증…“모두 시인” 읍소

김기동은 ‘원세훈 재판’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김하영과 달리 기소 후 혐의를 인정하고 읍소전략을 구사해 실형을 피했다. 그는 원세훈 전 원장 댓글공작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425지논.txt’, ‘ssecurity.txt’ 파일의 작성자다. 그의 위증 탓에 이들 파일의 증거능력이 의심받으면서 원 전 원장 재판은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425지논·씨큐리티 파일은 김씨가 상부에서 하달 받은 지시를 모아 개인 메일함에 저장해둔 파일이다. 425지논 파일엔 국정원 차원에서 댓글 공작을 위해 하달한 ‘이슈와 논지’ 내용이, 씨큐리티 파일엔 트위터 계정별 댓글 공작을 수행한 날짜와 장소 등이 기록돼 있다.

검찰은 2013년 수사 과정에서 이들 파일을 확보해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이 있었다는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이들 파일들의 증거능력이 인정될 경우 국정원 상부의 지시로 조직적인 선거개입이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찰 조사 단계에서 파일 작성 사실을 인정했던 김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작성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김씨의 위증으로 원 전 원장 재판에선 이들 파일들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됐다. 검찰 진술조서 등 법정에 제출되는 문서들은 피고인 측이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진술자나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 내용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절차인 진정성립이 이뤄져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다만 형사소송법 315조는 진정성립 없이도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서류들을 규정하고 있다.

심급별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이들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선거개입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증거능력을 인정해 선거개입 혐의도 유죄로 보고 실형을 선고한 뒤 원 전 원장을 법정구속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2015년 7월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도 대법 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추가로 확보된 국정원 내부문건 등을 토대로 선거개입도 유죄로 인정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지난 4월 전원합의체에서 11 대 2 다수 의견으로 이를 확정했다.

검찰은 지난 2월 김씨에 대해 위증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기소 당시 퇴직한 상태였다. 당초 혐의를 부인해온 김씨는 재판 시작 후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자백했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정말 다 다 시인한다. 다 잘못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반성하지 않은 채 수년 동안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를 보면 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다”며 선거법·국정원법, 위증죄에 대해 3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은 김씨가 하급신분이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항소로 김씨 재판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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