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면 남보다 더 어색한 친척들.. 대화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김라윤 2018. 9. 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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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엄마 아빠와 나눈 주된 이야기가 성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화내용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 ‘성적을 더 올리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중심이었다. 결국 아빠의 일방적인 윽박지름으로 대화가 종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화 횟수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전부 일방적인 훈계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성적이나 성공 등이 아닌 사적인 주제로 가족끼리 대화를 장시간 이끌어 가는 게 힘들다 (직장인, 채모(32·여)씨)

친척이지만 사는 곳이 제각각이었다. 할아버지 재산을 두고 몇 차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간 분쟁까지 이어지면서 사촌들 사이까지 서먹해졌다. 대 놓고 묵은 감정을 풀면 해소가 어느 정도 됐을 수도 있겠지만, 시기를 놓치고 한참이 흐르면서 친척들 간 묘한 경쟁구도까지 생겼다. 남보다 못한데 오히려 애써 친한 사이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견디기 힘들다 (대학생, 감모(27)씨 )


단순히 혈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감대, 편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안일한 착각’은 오히려 친척 간 관계를 해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가족(친척 포함) 간 대화와 여가 활동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이마저도 자녀들은 부모들이 ‘성공’, ‘성적’ 등 지나치게 ‘사회적 성취‘만을 강조하는 대화를 많이 해 대화내용의 질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 대화가 불만족스럽다보니 멀리 있던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 어색함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많은 친척들이 ‘결혼’, ‘성적’, ‘연봉’ 등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주제의 힘을 입어서라도 침묵을 깨려고 거듭 시도하는 데는 이러한 한국 가정의 ‘대화같은 대화문화의 결핍’도 근저에 원인으로 깔려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가족 간 대화시간, 성취를 강조하는 가족 대화문화...명절 때도 유대감 해쳐

여성가족부의 가장 최근인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응답자의 50% 가량이 가족과 하루 1시간미만으로 여가를 나누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분 미만이라고 언급한 응답자들도 18.8%나 있었다.

이처럼 가족과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유로는 ‘일이 너무 바빠서’(31.0%), ‘가족 공동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24.5%), 경제적 부담(16.0%), 가족 공동 관심사가 없어서 (8.8%), 몸이 피곤해서 (8.2%), 정보가 없어서 (4.4%) 등이 꼽혔다. 대체로 시간부족을 이유로 지목한 사람이 많았지만 경제적 부담 역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배우자와 하루 평균 대화 시간 역시 줄어들었다. 2015년 가장 최근, 응답자들의 29.2%는 30분 미만으로 대화를 하며, 30분에서 1시간 사이라 답한 응답자들이 34.5%에 육박했다. 사실상 1시간 미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응답자들이 63.7%에 이른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2009년(171분)보다 30%가까이 줄어든 127분으로 조사됐다.

이에 더해 자녀들이 부모와 나눈 내용을 ‘성취지향’과 ‘성숙지향’으로 구분해 대화패턴을 연구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중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6명가량은 부모와 대화를 나눌 때 ‘성숙지향형’ 대화보다는 ‘성취지향형’ 대화를 훨씬 더 많이 나누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세계일보와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연구팀은 서울지역 6개 초·중·고교 학생 976명(초 353명, 중 382명, 고 241명)을 대상으로 ‘가정 내 의사소통 양식’을 설문조사해 학생별로 부모 등 가정 내 보호자가 자주 강조하는 얘기와 관련해 10가지 문항에 응답한 점수를 합산해 분석한 뒤 백분율로 환산했다.

성취지향성’을 측정하는 항목은 ‘친구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것 강조’,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에 대한 강조’, ‘성적과 대학 진학 등에 관한 이야기 편중성’, ‘공부만 잘 하면 다른 건 대체로 용서되는 분위기’ 등 총 5가지로 구성됐다. 반면 ‘성숙지향성’을 측정하는 문항은 ‘이웃과 사회에 도움 되는 삶에 대한 중요성 강조’, ‘사람 됨됨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 비중’,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가치 언급’ 등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평균 59%는 가정에서 성숙지향형보다 성취지향형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정도는 초등학생(55.4%)보다 중학생(62.2%)과 고등학생(59.1%)이 더 심했다.

서울시에서 공립중학교를 다니는 최모(15·양)은 “평소 부모님이랑 항상 하는 얘기가 성적 이야기니까, 친척들이 모인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누가 몇 등인지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식 성적을 두고 어른들 사이의 묘한 경쟁구도도 생기는 것 같다.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할말은 없고, 유대감도 낮고...불편한 친척 간 대화

결국 가족 간 평등하고, 자유로운 대화문화보다는 성취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잔소리를 많이 듣고 ‘대화문화’를 학습한 사람들이 명절에 모이니, 대화내용 역시 연봉수준, 자산형성 정도, 취업한 기업의 위상 등 성취와 관련한 불편한 내용이 다수를 이룬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최근 대학생 및 취준생, 직장인 등 성인남녀 19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석에 듣기 싫은 말’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 결과, 미혼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 하는 말들은 ‘연봉은 얼마나 받니’, ‘돈은 얼마나 모았니’,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 ‘저축은 잘 해뒀니’, ‘애인은 있니’ 등이었다. 김모(33·여)씨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판단하기 위해러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 불쾌하고, 즐겁지가 않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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