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제주漁民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

제주/박성우 기자 입력 2018. 9. 22. 10:01 수정 2018. 9. 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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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만에 제주 취업시장서 사라진 예멘인
바다 한가운데서 "배 돌리라" 취업포기자 속출
대목 앞둔 제주 어민들 "한 해 조업 망쳤다"
의식주 모두 책임지는 과도한 지원 지적도

"난민에 ‘난’자로 꺼내지 마세요. 그 사람들 때문에 일 년 조업(操業) 다 망쳤습니다. 돈, 시간 빼앗기고 마음 고생한 것 생각하면 ‘콱’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참 답답합니다."
지난 14일 제주도 북서쪽 한림항에서 만난 조기잡이 배의 선장 한모(65)씨가 한숨을 쉬었다.
기자가 이 배를 취재했던 지난 6월 28일, 이곳에 취직했던 예멘인 5명은 한 선장을 "보스" "파더"라 부르며 따랐다. 그러나 최근 다시 찾은 한림항에는 예멘인이 보이지 않았고, 한 선장은 난민 이야기만 꺼내도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4일 제주 예멘 난민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제주도 한림항 인근 그물 작업장을 다시 찾았다. 지난 6월 이 곳에서는 5명의 예멘인이 취업해 그물에 어구를 다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 일을 그만둔 상태다. 사진은 지난 14일 모습(위)과 6월 26일 예멘인이 근무하던 당시 사진(아래) /박성우 기자

◇"물고기 잡으러 온 것 아냐" 예멘인, 취업전선서 잇단 이탈
제주도에 예멘인들이 본격적으로 상륙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5월 한 달에만 예멘인 437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논란도 이 무렵부터 본격화됐다.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난 6월 14일,18일 이틀간 예멘인을 위한 취업설명회를 여는 등 지원에 나섰다.
이때 예멘인 382명이 선박·양식업 등 분야에 취업했다.

예멘인의 한국 취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부분 "힘들다"며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기 시작한 것이다. 길게 간 사람도 두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외국인청 관계자는 "예멘인 취업자 절반 이상이 해고되거나 취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제주 어민들에 따르면 배가 출항한 다음 날 바다 한가운데에서 ‘일 못 하겠다. 항구로 돌아가자’면서 선실에서 나오지 않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한 뒤 제주 명소 관광을 다녀온 예멘인도 있다고 한다. 방만한 근태(勤怠)를 견디지 못한 고용주가 해고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제 발로 나가는 예멘인은 더 많았다. 조기잡이 어선을 모는 한 선장 얘기다.

"한번 조업 나가면 일주일 정도 배를 타는데, 예멘인 선원이 하루 만에 일을 못 하겠다고 뻗어버렸어요. 그 선원 하나 때문에 결국 조업을 접고 나흘 만에 귀항했습니다. 기름값 손해도 손해지만,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이 ‘왜 예멘인만 특별대우냐’며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어민들은 "예멘인의 취업 포기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금전적 손해를 봤다"고 말한다. 예멘인 1명당 인건비는 한 달에 약 160만원. 여기에 식비와 숙소를 제공하면서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230만~250만원 인건비가 들어간다. 예멘인 5명을 고용한 한 선장은 한 달간 11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나갔다. 예멘인들의 근무기간은 평균 약 20일 정도였으나, 일 효율이 떨어지고 기존 동남아 외국인 선원과의 갈등도 있어서 한 달 치 월급을 다 주고 내보내게 됐다고 했다.

문제는 ‘나비 효과’. 통상 조기 어선의 성어기는 9월이다.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 5~6월 베테랑 선원을 뽑기 위한 인력시장이 열린다. 하지만 제주 어민들은 예멘인을 믿었다. 교육을 시키면 몸값이 비싼 한국인 선원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이탈하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예멘인들이 못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몸값이 금값이 된 ‘용병’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조기잡이 선박의 선주는 "약 15일 정도의 1항(배가 한 번 나갔다 들어오는 단위)을 위해 500만원을 주고 목포까지 가서 ‘짤라’(임시직 선원)를 사용한다"며 "짤라 5명을 쓰고 있으니 월 2500만원이 나가고 있는데 미칠 지경이다. 6개월이면 1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예멘인 선원을 뽑은 선주들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며 "모든 게 예멘인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5~6월 예멘인 대신 오래 일할 수 있는 다른 선원을 뽑았다면 상황이 조금 더 좋아졌을 것 같다"고 했다.

예멘인들도 할 말은 있다. 이들은 모국(母國)에서 공직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 종사했다. 거친 ‘바닷일’은 해 본 적도, 할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만난 예멘민 난민 신청자 마호메드(가명·34)씨는 "저는 예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갑자기 ‘배 타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한국 정부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 곳에 물고기 잡으러 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탓에 제주 예멘인 취업자 수는 급감했다. 제주에 체류하는 예멘인 취업률은 지난 6월 대비 57.2%(278명) 줄어들었다.

지난 6월 외국인청의 요청으로 한림수협은 예멘인 100여 명을 어선 선원으로 취업시켰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인력은 고작 19명에 불과하다. 인근 제주수협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기간 66명의 예멘인을 채용했지만, 현재 단 1명만 남은 상태다. 166명을 취업시켰지만 3개월만에 88%(146명)가 그만뒀다고 한다.

그래픽=이민경

사정이 이렇게 되자, 화가 난 선주들이 수협에 몰려가 항의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제주도 수협 외국인인력 관리 담당자는 "예멘 난민 채용을 알선하면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다"며 "앞으로 예멘인 채용을 주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의식주 해결…일 할 필요가 없다
일각에선 제주 예멘인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가 시민단체의 ‘과도한 지원책’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주시 O관광호텔은 예멘인들의 ‘1차 집결지’였다. 지난 6월 기자가 찾았을 때만 해도 우리말보다는 예멘어로 소통하는 소리가 더 크게 났던 곳이다. 당시 O관광호텔 김모(54)씨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예멘인들에게 최소한의 숙박비만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 투숙객의 반 값 수준이었다. 한때 15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이곳에 묵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 묵고 있는 예멘인은 ‘제로(0)’다. 김씨는 "시민단체들의 ‘공짜 숙소지원’이 쏟아지면서 예멘인들이 떠나기 시작했다"면서 "숙소, 식사, 간식 등 의식주를 지원받는데, 굳이 돈 내고 호텔에 묵을 필요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이주민센터는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졌던 지난 6월 임시숙소를 마련한 뒤 ‘입소한 뒤 10일이 지나면 무조건 출소를 해야 했다’는 운영규칙을 세웠다. 출소 시점을 사전에 못 박아야, 예멘인들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은 이런 운영규칙이 사라졌다. 시민단체 지원에 힘입어, 예멘인들이 열흘 단위로 제주이주민센터 숙소를 돌아가며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까닭이다. 현재 제주도내에서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단체만 4~5곳. 여러 경로로 난민 지원 후원금이 늘어나면서 숙소, 식사 등 지원 여력도 늘어가는 상황이다.

난민 지원 담당 공무원은 "제주 예멘인들이 주목받으면서, 크고 작은 시민단체가 의식주를 모두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예멘인들이 일하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대부분은 일하지 않고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제주도 내 시민단체 분들도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모두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난민심사 결과도 변수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14일 제주도 내 예멘 난민심사 대상자 484명 가운데 23명에 대해 ‘인도적 체류허가’를 결정했다. 인도적 체류허가자들은 출도(出島)제한 조치가 해제돼, 서울 등 육지로 이동이 가능하다. 외국인청은 오는 10월까지 나머지 458명에 대해서도 심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심사 결과에 따라 육지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고용주들은 채용을 꺼리고 예멘인들도 취업 의지가 없는 것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난민 신청자들도 인도적 체류 허가가 떨어지면 대도시로 갈 생각이어서, 이곳(제주)에서 적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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