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잘한 짓이 되는 '딴짓' [직설]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8. 9. 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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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7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고 댓글을 하나 달았다.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현실 정체성은 직장인인 한 사람의 고민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진심이 담긴 열린 제안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번 해봅시다”로 시작한 일은 100명이 넘는 규모의 콘퍼런스라는 큰 판으로 커졌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키워오던 개인들이 ‘작당’해 만들어낸 프로젝트였기에 중단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협업하게 된 11명의 개인들은 구체적인 ‘개인의 시대’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9명의 연사를 초대했다. 딴짓으로 창업한 남의집프로젝트 문지기 김성용, 외신기자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변신한 최정윤, 자칭 ‘사이드프로젝트 중독자’라는 마케터 고재형, 벤처캐피털을 다니면서 맥주 편집숍을 운영 중인 김경민, 자기 강점을 찾고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낸 장영학, 하루 3줄 일기로 인생을 바꾼 <스몰 스텝>의 저자 박요철,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고마워하며 현재의 나에 충실히 살고 있는 전 대기업 직장인 이인규, 9번 회사를 옮긴 ‘프로 이직러’ 김대우, 기자를 그만두고 과학과 연결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이진주까지…. 일단 시작했으며,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다르게 움직여도 괜찮은, 그러면서 “딴짓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개인들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지난 14일 열린 ‘평생직장 개뿔, 개인의 시대’ 콘퍼런스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금요일 오후 반차를 사용해야만 함께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도 100명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날씨 좋은 불금의 오후 1시, 꽤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놀라우면서도 뿌듯했다. 나 자신을 포함해 ‘이 사람들은 오늘 무엇을 얻기 위해 여기에 왔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2018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과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결로 전개 중이다. 공무원처럼 확실한 안정성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퇴사 학교’가 만들어질 정도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요즘 직장인들은 조직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인싸(인싸이더)’ 대신 자발적인 ‘아싸(아웃싸이더)’를 택하면서까지 조직보다 자신의 성장을 원한다. ‘직장’에 다닌다고 자동으로 ‘직업’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좋아하는 일로 꼭 밥을 벌어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상반된 질문이 함께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연사들은 생존형 사이드 프로젝트 성공 노하우부터 딴짓을 잘한 짓이 되게 만드는 법까지 ‘꿀팁’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한번에 3만개의 알을 낳는다는 개복치처럼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라”는 주문과 함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라며 백수를 강력 추천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영화’ 혹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이 사라진 불확실한 저성장의 시대, 반나절의 콘퍼런스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영감 혹은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던 한 연사의 말처럼, 앞서 시도한 개인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다른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잠재적 자영업자’인 직장인들에게는 “의미 없는 것을 잔뜩 하는 것이 인생”이며 “인생의 의미 없는 딴짓이라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이끄는 힘을 찾아내는 것, 직장이라는 울타리와 상관없이 나 자신이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지 찾아내는 것이다. 콘퍼런스는 끝났지만 더 많은 질문이 남았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가장 나답게 살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분투해볼 계획이다. 평생직장 ‘개뿔’인 ‘개인의 시대’를 조금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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