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로 맺은 다산과 제자들의 인연.. '茶信契정신' 200년 이어져


1818년 유배 풀린 정약용, 강진서 茶모임 결성
제자들 합심해 매년 茶만들어
유배지 떠난 스승에게 보내줘
‘다신계절목’에 세부사항 기록
제자의 후손, 茶山 종가 교유
초당 복원사업· 필사본 선물
茶공동생산 전통 살리기 활발
2007년부터 수제차품평대회
제다법 따른 잎차 복원 성공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년간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나면서 전남 강진 제자들과 맺은 ‘다신계(茶信契)’의 신의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후손들에 의해 일정 부분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로 신의를 지키는 계’라는 뜻의 다신계의 세부 사항은 1818년 8월 말 작성된 ‘다신계절목’에 기록돼 있는데, 제자들이 합심해 해마다 차를 만들고 그중 소량을 스승에게 보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산의 7대 종부 이유정(56·서울) 씨는 14일 “윤동환(69) 전 강진군수가 25년째 매년 햇차를 만들어 보내 주신다”며 “다산 할아버지 시대에 맺은 사제 간의 신의가 200년이 넘도록 지켜지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고 아름다운 전통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군수는 ‘다신계절목’에 등장하는 강진 지역 제자 16명 중 한 명인 윤종진(1803∼1879) 선생의 현손이다. 이 씨는 “보내주신 차로 매년 봄 다산 할아버지 제사와 가을 시제 때 헌다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관련 학계는 강진의 차가 다산 종가로 보내지는 다신계의 전통이 형식적으로나마 193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박희준 한국차문화학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강진차 관련 학술대회에서 “110여 년간 그 전통이 이어진 것은 다신계절목에 등재되지 않은 다산의 막내 제자 이시헌(1803∼1860)과 그 후손들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그 근거로 △다산이 해배 후 이시헌이 보낸 차를 평가하고 제다법을 지도한 점 △1857년 다산의 장남 학연이 이시헌으로부터 차 선물을 받고 감사편지를 보낸 점 △일본 학자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1864∼1946)이 1932년 쓴 글에서 ‘(수년 전) 여유당을 방문해 강진에서 보내 왔다는 금릉월산차(金陵月山茶)를 맛보았다’고 기록한 점 등을 들었다. 금릉월산차는 이시헌 선생 집안의 손자뻘로 국내 최초로 녹차를 상품화한 이한영(1868∼1956) 선생이 만든 차다. 다산이 타계 전 “무신계(無信契)가 됐다”고 한탄할 만큼 갈라진 신의의 틈을 다신계원이 아닌 제자 이시헌 선생과 그 후손들이 메웠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다산의 7대 종손 정호영(60) EBS미디어 대표이사는 “다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강진 제자(와 후손)들이 정기적이지는 않더라도 집안에 차를 보내 왔다고 들었다”며 “1925년 대홍수로 남양주 마현부락의 종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1927년 증조부(정규영)께서 작고하셨고, 조부(정향진)께서도 1935년쯤 고향을 완전히 떠났으니 그 무렵부터 강진과의 교유가 끊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끊어진 교유는 다신계원 제자 윤종심(1793∼1853) 선생의 증손인 윤재찬(1902∼1998·서예가) 씨가 주축이 돼 다산초당 복원사업(1956∼1959년)을 추진한 직후 다시 이어진다. 윤 씨는 1961년 강진을 방문한 다산의 5대 종손 정향진(1905∼1968) 씨에게 다신계절목 필사본을 선물했고, 다산 종가는 이를 잘 보존해 오고 있다. 윤 전 군수는 1972년부터 다산의 6대 종손 정해경(90) 씨와 친밀하게 지냈으며, 10여 년 전부터는 7대 종손 정 대표이사와도 잦은 교유를 갖고 있어 다신계의 신의는 현재진행형으로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다신계가 차 공동생산으로 차 산업화를 모색했던 만큼 그 정신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2007년 해남군 일지암에서 18년간 상주하던 여연 스님이 강진 백련사로 옮긴 뒤 ‘만경다설’이란 공동생산자조합이 만들어졌다. 또 2007년부터는 국내 유일의 야생수제차품평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강진 차문화산업을 이끌 연합체인 강진군 다인연합회도 2011년 발족했다. 다산 제다법에 따른 잎차인 ‘백운옥판차’와 다산떡차도 수년 전 복원됐다. 박희준 회장은 “강진에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자연상태의 차 나무가 분포하는 등 좋은 인프라가 있다”며 “다산이 우리 차 산업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듯이 강진이 침체일로에 있는 우리 차 산업을 견인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진=정우천 기자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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