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후기 인상주의자 3명 중에 한 명인 폴 세잔은 고갱과 고흐보다는 대중에게 좀 덜 알려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생애 동안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대하는 방식에 관해 일으킨 변화는-세잔 이후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모든 이들이 느끼게 만든-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세잔의 작업 이후에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가 가능했고, 마티스의 단순화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20세기 예술의 큰 부분을 세잔에게 빚지고 있다고 미술사가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폴 세잔은 화가로서의 위대함과 별개로 성격은 상당히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이었습니다. 부유했던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경제 부분의 문제가 적었던 탓도 있겠지만, 대중에게 호응하는 작품을 남기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평생 천착할 수 있었지요. 프랑스 남부의 액상 프로방스라는 작은 마을이 고향인 세잔에게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에밀 졸라는 성공한 예술가들은 모두 파리에 있다면서 파리에서 화가로 성공하길 권했습니다. 하지만 세잔은 아버지의 반대 속에 했던 초반의 유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에 평생 자기 마을의 풍경과 정물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으로 자신의 길을 택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림은 아마도 세잔의 풍경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일 많이 시도했고, 제일 오랜 기간 반복했으며, 그 때문에 가장 변화가 많았던 주제, 그의 집에서 1 시간가량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먼 곳의 풍경인 ‘생 빅투아르 산의 풍경’이라는 작품입니다.
“화가 쿠르베가 항상 자기가 태어났던 두브강 유역과 쥐라 지방에 애착을 가졌듯이 화가 폴 세잔도 항상 자기 생애 동안 본인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의 풍경과 자연에 관심을 간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라이트모티브 즉 자기가 정한 고정적인 주제를 선택해서 본인 예술에서 형식적인 실험을 하려고 했다. 세잔의 실험은 특히 지중해의 밝은 빛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사물의 형태를 뭉개고 단순화해 실루엣만 남기는 것으로까지 발전시키려고 했다. 짧고 정연한 붓 터치로 묘사된 빅투아르 산의 모습은 마치 점차 사라지는 것 같이 보이는데, 생의 후반부에 세잔이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들에 비해서 색깔은 강렬하고, 리듬감은 더 활발하게 느껴진다.”
세잔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모습이 전통적인 풍경화나 사진과는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세잔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잔이 하고 있는 시도는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면이 있어서 우리에게 정말로 비춰지는 자연의 원리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의 눈은 절대로 정해져 있는 단일 시점 아래, 정돈해서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기계적인 시각, 카메라의 초점과는 다르게 복합적이며, 여러 각도를 한꺼번에 관찰하고, 분석하는 색깔도 통일되어 있기보다는 혼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잔은 원근법이 순차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풍경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존재하고 어떤 부분은 무시된,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 빛 아래에서 어떻게 색깔이 받아들여지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버전은 1890년쯤에 그려진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단순화된 원근법 도입으로 돌산의 기하학적인 모습은 극도로 간단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의 시점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특히 앞쪽에 돌출되어 있는 돌벽은 그림 속에 완전히 섞여들어가 있다. 이런 원근감과 깊이감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의도는 나무들을 그린 모습 안에 나무들의 형태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나뭇잎은 십여 년 전에 세잔이 이미 사용했던 가늘고 비스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언뜻 보게 되면 아이들 그림처럼, 혹은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그림처럼 혼란스럽지만, 오랜 시간 관찰할수록, 자연을 실질적으로 관찰할 때 느껴지는 바로 그 색과 광경이 눈에 차차 남게 되는 것이 세잔의 예술이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여러 번에 걸쳐 다른 날씨, 다른 계절에도 꾸준히 자연을 관찰해 그 자연의 본 모습을 파악하려는 그의 노력은 정해진 대로 보는 과거의 전통과는 다른 방향, 오로지 본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냅니다.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평가 받는 현대 예술은 아마도 예술가 개개인의 개성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바로 그 모습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눈이 항상 기계적이고 과학적이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인간적이고 개성적인 관찰을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그의 그림에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보는 자연의 형태들은 점점 더 단순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죠. 아마도 오르세가 설명하는 “화면 속의 대상들은 혼합된 기법과 조형 요소들 속에서 서서히 그리고 조용하게 자기들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다”라는 말이 현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이해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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