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영혼 없는 레플리카 전시하려.. 550억이나 들여 미술관 짓는다고?

기자 2018. 9. 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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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성요한 성당의 ‘피에타상’ 레플리카.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 피에타상과 같은 크기로 ‘프랑코 에 체르비에티’사가 복제했다.

‘국내 GDP 1위’ 지방도시서

“상권 살리자” 명분으로 추진

“복제기술 발달로 아우라 위축”

80년前 베냐민 우려, 현실로

왜 미술관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가? 이유는 미술품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작품의 고고한 분위기, 미묘하고 개성적인 미술품 고유의 본질을 느낀다. 원작이 갖는 카리스마라 할까. 우리가 미술품을 대하며 느끼면서도 말로 표현 못 했던 이것을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에서 ‘아우라’라 명명했다.

아우라 넘치는 원작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은 대중의 가질 기회를 제한한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대리만족 또는 학습, 연습, 장식, 선물용으로 제작된 복제품 즉 레플리카(replica)다. 레플리카가 가장 흔했던 시절은 그리스 조각을 모각(模刻)해 정원이나 실내에 두었던 로마 시대다. 인간의 욕망은 어느 시대나 레플리카를 필요로 했다. 물론 미술가가 되려는 수련과정에서 베끼거나 만드는 모각, 임화(臨畵)도 레플리카의 일종이다. 동양에서는 형체뿐만 아니라 ‘화의’ 즉 아우라까지 베껴야 진정한 임화라 했다. 또 원화에 종이를 대고 베껴 그리는 것을 ‘탑화(榻畵)’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형체를 베낀 것에 불과해 임화의 반열에도 못 들었다. 조각도 원형을 주물기법으로 여러 점 떠냈지만, 법적으로 최대 13점 이상을 뜰 경우 레플리카라 하지 않고 모두 공예품으로 취급한다.

모조품이란 의미의 이미테이션(imitation)이나 무언가 흉내 낸다는 뜻의 ‘모방’, ‘모방품’을 가리키는 카핑(copying)도 레플리카와 같은 부류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가짜라 하진 않는다. 모두 독창성은 없지만 간발의 차이로 레플리카는 실제가 아닌 특정한 이유가 있는 대체품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을 여러 장 찍는 판화는 다르다. 보급 또는 예술적인 목적으로 복수의 작품 제작이 인정된다. 물론 총 몇 장을 찍고 그중 몇 번째인지 꼭 밝혀야 한다. 또 판화공방에서 제작해도 작가가 일일이 검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도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레플리카 즉 ‘복제본’은 원본과 매우 흡사한 복사본이다. 원작이 훼손된 경우 복제물이 원본의 예술성을 보완하지만 이는 원작의 망실된 부분을 설명하는 한정적인 경우다. 또한 복제는 원작자의 동의와 감독 또는 라이선스의 유무가 관건이며,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도 원작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실제보다 조금 작게 만들도록 규제받기도 한다.

따라서 레플리카가 존재하고 유통되려면 ‘선의’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미술관 숍에서 판매하는 복제품도 이런 경우다. 오늘날 식별이 불가할 정도로 잘 만든 최고의 짝퉁 명품가방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짝퉁은 짝퉁인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레플리카는 “비슷하지만 똑같은 것이 아닌” 복제품이며 모조품이다. 베냐민은 기술이 발달하면 많은 미술품이 완벽하게 복제돼 진품을 위협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 하더라도 (중략)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중략)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다”라고 하면서 아우라가 없는 복제품은 예술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80여 년 전 베냐민의 걱정이 대한민국에서,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한 지방 도시에서 현실이 됐다.

레플리카를 상설 전시해 관광객을 모아 동네 상권을 살리자는 일부 시민의 의견에, 10년 동안 진행돼온 미술관 건립이 중단된 것이다. 옆집 가듯 해외여행을 가는 판에 복제품 보자고 방문할 것이란 발상이 기발(?)하다. 그들은 아우라 즉 영혼 없는 레플리카를 보며 만족할까? 제아무리 변기가 예술품이 되는 세상이지만 변기에는 아우라를 대신(?)할 작가의 사인이라도 있다. 레플리카를 전시하자고 550억 원이나 들여 미술관을 짓는다고? 그냥 시청 복도에 걸어도 될 텐데.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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