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6주는 압록강쪽 아니라 中 요하 근처"..고려 국경선 지도 바뀌나?

2018. 8. 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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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를 거짓말쟁이로 몬 일본학자 스다 소키치
스다의 저의를 의심한 한국학자 윤한택

[동아일보]

스다의 고려 국경선

“서쪽으로는 고구려를 넘어서지 못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보다 더 넓었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지리지’의 고려 영토 범위다. 일반에 알려진 고려의 국경 경계선이 서북으로는 현재의 압록강, 동북으로는 현재 북한의 원산만이라는 점과는 너무나 동떨어지는 얘기다.

이 차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10년대 한국의 역사지리 연구에 깊숙이 관여한 일본인 학자 스다 소키치(津田左右吉)가 ‘고려사·지리지’의 기록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역사지리’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는 고려 사람이 그 영토권을 요구할 때 항상 그 역사적 연유를 과장해서 언급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영토 보유에 대한 역사적 자존심 때문에, 다른 하나는 중국에 대해 간접적으로 그 영토권의 확실함을 주장하기 위하여, 고려시대의 정부 당국자가 어느 때인가 날조하고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다는 강동6주를 되찾은 고려의 재상 서희(徐熙)야말로 대표적인 거짓말쟁이이며, 이런 고려인들이 기술한 지리지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한국의 역사지리를 재정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나름대로 이런 저런 고증을 통해 압록강과 원산만을 고려 국경선이라고 설정했다. 그의 주장은 다시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에 그대로 안착하였고, 1945년 이후에는 한국 역사학계에서도 비판적 평가 없이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스다가 획정한 고려시대 국경선은 지금까지도 모든 고려사 관련 자료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심지어 고려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고려시대 연구는 한국사 분야에서 식민사학의 세례를 가장 덜 받은 분야’ 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을 정도다. 스다는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를 비판한 학자인만큼 그의 한반도 관련 기술 역시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윤한택 교수의 고려 국경선

이런 학계 분위기속에서 처음으로 스다의 고려 국경선 획정에 의문을 제기한 이가 인하대 윤한택 교수(고조선연구소)다. 윤 교수는 고려의 토지 제도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 국경 경계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고, 고려 국경선을 획정한 스다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왜곡된 사실을 밝혀냈다.

윤 교수는 스다가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인 서희의 강동6주는 압록강 동남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요하 동쪽에 존재했으며, 요하가 고려의 서쪽 경계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사’ ‘요사’ 등을 근거로 고증했다. 고려 시대의 압록강은 현재 북한쪽 압록강(鴨綠江)이 아니라 고대 요하를 가리키는 압록강(鴨淥江)이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이는 ‘록’자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최근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고려 국경선에서 평화시대를 묻는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올해에 일본이 조작한 ‘반도고려’를 한국학자의 손으로 ‘대륙고려’로 회복한 것이다.

윤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고려 국경사 연구를 하는 동안 백내장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가 건강을 잃어가면서까지 이 연구를 한 것은 역사학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 역사학계가 스다를 중심으로 하는 일제의 반도사관을 너무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시대는 ‘분단의 역사학’이 아니라 ‘평화시대의 역사학’이 펼쳐질 것이고, 그 중심에는 경제적 영역인 ‘생활영토’가 중국 만주를 무대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우리 후세대가 활동할 무대인 ‘생활영토’의 확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곡된 반도사관을 극복하고 역사적 영토에 대한 새롭고도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윤교수의 연구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기류가 소멸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통합 후 부상할 중국 동북부 지역의 민감지대를 정면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윤 교수의 이번 연구는 학계에서 토론을 거치고, 확인을 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스다의 엉성한 논리 대신 정확한 사료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흐름은 바꿀 수 없을 듯하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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