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수술실과 부검실의 역사, 진실을 바라보다
[경향신문] ㆍ메스를 잡다
ㆍ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 488쪽 | 1만9800원
ㆍ진실을 읽는 시간
ㆍ빈센트 디 마이오·론 프랜셀 지음 |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380쪽 | 1만7000원

◆메스를 잡다
저자는 복강경 수술 전문의 마취술 없던 시대의 의술부터 루이 14세·빅토리아 여왕 걸쳐 오즈월드의 수술방 이야기까지 박진감 넘치는 수술사 담아
네덜란드 외과의사와 미국 법의학자가 각각 집필한 두 권의 책을 대하고 있자니, 의학드라마가 왜 하나의 장르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수술실과 부검실이라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다. 제아무리 부유하고 명성이 높고 존경받는 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하나의 육체일 따름이다. 환부를 도려내야 할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혹은 죽음의 진실이 아직 미궁에 빠진. 애써 극적 요소를 집어넣지 않아도 질병과 죽음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세상을 바꾼 수술, 그 매혹의 역사’가 부제인 <메스를 잡다>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부터 수술도 생겨났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4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두 발로 첫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외과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들을 얻게 됐다. 정맥류, 치핵, 고관절이나 무릎 관절의 마모, 디스크 탈출, 속 쓰림, 동맥경화 등은 모두 ‘손으로 직접’ 치료해야 하는 질병들이다. 외과의사를 일컫는 용어인 ‘surgeon’의 그리스어 어원은 ‘손’과 ‘일’의 의미가 합쳐진 ‘kheirourgia’다.
수술의 역사는 과학적 지식이 발달해 온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16세기 초까지도 상처에 끓인 기름을 떨어뜨리는 치료법이 통용됐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이 가려진 것이다. 인간 수명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19세기가 되면 위생관념이 발달하면서 외과 수술에도 놀라운 진전이 나타난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염 차단과 멸균을 위해 절개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복강경 수술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아르놀트 판 더 라르는 책에서 역사적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통해 수술사의 변곡점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에 따르면 근대적 마취술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계기로 발전했다. 이미 일곱명의 자녀를 낳은 바 있었던 여왕에게도 출산 시 통증은 여전히 괴로웠다. 왕궁으로 호출된 아마추어 마취의사는 분만하는 여왕의 코와 목에 손수건을 얹고 클로로포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이후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술은 ‘여왕의 마취’로 불리며 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고질병인 치루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좌식 변기에 앉아 손님들을 맞이하며 ‘볼일’을 보곤 했던 그는 아내와 아들, 총리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맡은 의사는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 75명에게 예행연습을 했다. 역대 교황들이 비만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고, 루이 16세의 포피에 생긴 문제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사이에 7년 넘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 등도 일반적 역사서술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상대성 이론의 주창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48년 대동맥류 수술을 받았다. 당시 대동맥류는 1~2년 내 사망할 우려가 있었던 질병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은 7년이나 더 살았다. 이를 두고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이론이 그의 신체에도 적용됐다는 유머러스한 해석을 내놓는다. 총상을 입고 뇌 조직이 흘러내린 채로 병원에 도착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수술했던 외과의사 말콤 페리는 얄궂은 운명에 처했다. 이틀 뒤 경찰서로 호송되는 도중 저격당한 케네디 암살 용의자 리 하비 오즈월드를 수술한 것이다.

◆진실을 읽는 시간
베테랑 법의학자의 ‘진실 퍼즐’ 두 번이나 진행된 오즈월드 부검 10대 흑인 살해 ‘지머맨 사건’ 등 저자가 관여한 작업 생생히 묘사 살인사건 이면 몰입감 있게 다뤄
<진실을 읽는 시간>에서는 베테랑 법의학자가 유명 범죄 소설가와 함께 의문의 사건들을 돌아보며 진실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여기서도 미국 현대사의 비극인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언급되는데, 바로 두 번이나 시신이 부검된 오즈월드의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한 지 18년이 흐른 1981년, 오즈월드의 시신은 무덤에서 다시 꺼내진다. 사망 직후 부검이 이뤄졌지만, 소련 공작설 등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음모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벡사 카운티 수석 법의학자였던 저자는 망자의 신원이 정말 오즈월드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에 착수한다. 결론은 명확했다.

저자는 “두 번째 부검은 새로운 증거가 아니라 이익, 호기심, 도시의 전설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40년간 9000건 이상의 부검을 행했던 빈센트 디 마이오는 서두에서 “나는 인간의 심장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내가 그 심장들을 마주할 때쯤에는 그 안에 담겼던 꿈, 희망, 공포, 유령이나 신, 수치심, 후회, 분노, 사랑은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생명, 즉 영혼은 새어나가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증거다. 내가 찾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 같은 고백은 사건을 대하는 태도로도 연결된다.
2012년 플로리다주에서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백인 자경대원 조지 지머맨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백인 경찰의 인종 프로파일링 등에 비춰볼 때 지머맨의 살인 기소는 피할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저자는 냉정하게 용의자 얼굴에 있는 상처와 머리 부상을 살핀 후, 쌍방 간 과잉대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머맨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며 “법의학자의 임무는 진실이다. 나는 공정해야 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은 도덕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수십명의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게 한 ‘죽음의 간호사’ 등 저자가 직접 관여했던 사건들에 관한 생생한 묘사는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이제는 현장에서 은퇴한 저자는 직업에 대한 강한 소명의식을 드러내면서도 법의학자를 과도하게 미화하는 대중문화, 과학수사를 만능열쇠로 보는 시각은 비판한다.
“최첨단 도구들은 어떤 사건이 남긴 미세한 잔여물들을 분석해준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으킨 공포, 악몽, 내면의 악마들을 간파해주는 과학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심장은 하드 드라이브가 아니다”라고 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나는 인간의 심장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되뇐다.
손과 두뇌가 최고의 과학수사 도구라고 믿는 법의학자의 믿음은 “외과의사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유치원 시절에 배우는 자르고, 꿰매고, 모든 것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외과의사의 직업의식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의사들이 쓴 두 권의 책이 아프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직시하게 한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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