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덕성은 감탄해야 할 '진화의 기적'
진화인류학으로 도덕의 기원 추적
"영장류 '공감'→인간 '공정·정의'로
내면화·자기규제는 오직 인간뿐"
[한겨레]
도덕의 기원-영장류 학자가 밝히는 도덕의 탄생과 진화
마이클 토마셀로 지음, 유강은 옮김/이데아·1만9000원
약 38억년 전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이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온갖 생명체가 번성하고 명멸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도덕’ 관념의 원형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도 불과 600만년 전. 대형 유인원과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공통 조상이 혈연 단위를 넘는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도덕 관념의 시원은 생존을 위한 협업에서 비롯한 공감이다. 모든 포유동물은 공감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혈연적 공감을 넘어 소속집단 안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적 가치로서의 도덕은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발견되는 특질이다. 도덕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인가? 아니라면, 언제 어떻게 생겨난 걸까? 진화생물학·인지과학·영장류학 등 자연과학이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도덕은 주로 철학과 종교(신학)의 영역이었다. 오늘날 도덕 진화 이론은 크게 진화인류학, 도덕심리학,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등 세 가지 접근법으로 나뉜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소장인 마이클 토마셀로의 <도덕의 기원>은 인간에게 어떻게 도덕 관념이 생겨났는지를 진화론의 틀로 설명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인간 도덕성의 자연사’(책의 원제)는 ‘공감의 도덕’에서 ‘공정의 도덕’으로, 그리고 ‘정의의 도덕’으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영장류 이상의 고등동물에서 보이는 ‘상호의존 가설’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타인의 안녕에 대한 관심은 포유류 동물의 새끼 돌봄(수유와 보호)에서 나왔다. 이는 무상으로 수행되는 본능적 이타성이다. 일부 종에서는 제 새끼가 아닌 비혈연 관계의 동종 개체에도 이런 관심을 보인다. 혈연선택을 넘어서는 친사회적 행동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대형 유인원들에서 관찰되는 상호의존성에서 비롯한다.
도덕의 두번째 진화 단계인 ‘공정의 도덕’은 생태환경의 변화로 촉발됐다.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초기 조상인 호모(Homo) 속이 등장했을 당시 지구에 빙하·건조기가 닥쳤다. 부족해진 먹이를 두고 원숭이, 대형 유인원과 경쟁이 치열해졌다. 약 40만년 전께부터 초기 인류는 본격적으로 큰 동물 사냥에 나섰는데, 여기엔 협업이 절대적이었다. 먹잇감을 함께 사냥하거나 포식자와 적으로부터 집단을 지키는 공동지향성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싹텄다. 협업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면서, 좋은 협력 파트너를 찾고 ‘나’도 파트너로 선택받는 게 절실해졌다. 여기에서 상대를 나와 동등한 자격으로 대하고, 집단 안팎의 무임승차자를 배척하며, 협력적인 파트너만이 전리품을 나눌 자격이 있다는 감각이 생겨났다.
토마셀로는 이같은 공정의 도덕은 “여러 개인의 협력적 동기와 경쟁적 동기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일정한 균형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이는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본다. “대형 유인원이 자원을 나누는 일에 공정성 감각을 갖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는 전혀 없으며, 그런 감각이 없다는 증거는 많다.” 다만, 공정성 실험에서 대형 유인원들이 “잠재적으로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일”에 대해 ‘분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동종개체와의 비교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실험자가 좋은 먹이를 줄 수 있는데도 형편 없는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한 분노라는 것.
약 15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난 인구학적 변화는 다음 단계의 도덕적 진화, 즉 ‘정의의 도덕’이 형성되는 배경이 됐다. “초기 인류의 느슨하고 비교적 소규모인 집단에 근거한 협동적 먹이 찾기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었지만 (…) 문제는 이것이 지나치게 성공적이라는 점”이었다. 현대인류 집단들은 규모가 커지고 충돌이 잦아지면서 쪼개지기 시작했고, 서로 구별되는 집단정체성을 갖는 부족 조직들이 형성됐다. 앞서 ‘공정의 도덕’ 단계에서 보인 공동지향성이 이제 집단지향성으로 확장됐다. 상호의존성은 자원과 영역을 놓고 경쟁하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기 위한 문화적 정체성과 소속집단에 대한 충성 감각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집단의 성공을 위한 분업체계 속에서 객관적인 규범과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된 도덕 관념이 바로 ‘정의의 도덕’이다. 이 단계에선 도덕 규범 위반에 ‘죄의식’을 느낄 만큼 내면화된 자기 규제가 작동한다.
토마셀로(68)의 도덕진화론을 역시 영장류학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란스 드발(70) 미국 에모리대 교수의 주장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두 사람은 각각 오늘날 영장류 연구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에모리대 그룹과 막스플랑크연구소 그룹의 간판 학자이자 학문적 라이벌이다. 국내에도 토마셀로는 <생각의 기원>과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이,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폴리틱스> <공감의 시대> <착한 인류> <내 안의 유인원> 등 다수의 저서가 번역돼 친숙한 편이다.
두 사람 모두, 도덕이 종교나 문명의 발명품이 아니라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진화적 압력이라는 기본 인식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영장류와 인간이 도덕적으로 구별되는지를 놓고는 팽팽하게 맞선다.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드발은 다른 영장류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감, 협력, 배려의 가치를 공유하며 인간만의 독특함으로 보기 힘들다고 보고 도덕진화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반면, 토마셀로는 침팬지 등 인간의 사촌 종들이 겉으론 인간과 비슷한 도덕적 행동을 보이지만 그 메커니즘에는 (인간과) 질적 차이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드발은 <착한 인류>에서 “이미 유인원 사회에서 도덕은 개체들 간의 일대일 관계의 문제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협약으로 도약했다”고 말한다. “다른 사회적 영장류도 우리처럼 감정과 행동 사이에 여과장치를 갖고 있는 덕분에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신사협정에 도달한다.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은 오래된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토마셀로가 “대형 유인원이 자원을 나누는 일에 공정성 감각을 갖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과 분명히 대조된다.
그렇다고 인간이 진화의 세례 덕분에 올바름, 선함, 도덕심으로만 충만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공감과 공정을 중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기심을 경계하지만, 동시에 종종 이기적이다. 토마셀로는 “우리가 도덕적인 것은 기적이며, 우리가 꼭 이런 모습이어야 했던 건 아니”라면서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경탄을 감추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도덕이 우리 인간 종과 우리의 문화, 우리 자신들에게―적어도 지금까지는―어쨌든 좋은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하고 축하해야 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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