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1위 물 건너간 한국 .. 난적 이란·우즈벡과 맞붙나

박린 2018. 8.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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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 발목잡힌 뒤 후폭풍
오늘밤 9시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
16강전부터 줄줄이 강적 상대해야
에이스 손흥민 리더십 시험대 올라
17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조별 예선 E조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2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고개를 떨군 손흥민. 한 수 아래의 팀에 뜻밖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손흥민은 20일 3차전에 선발출전할 전망이다. [반둥=연합뉴스]

‘반둥 참사’ 이자 ‘반둥 쇼크’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23세 이하)이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지난 17일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1위 말레이시아에 1-2로 발목을 잡힌 탓이다.

한국의 FIFA 랭킹은 57위. FIFA 랭킹이 114계단이나 아래에 있는 말레이시아에 한국이 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독일이 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한국에 0-2로 진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패배였다.
19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겔로랑 반둥 라우탄 아피 스타디움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둔 한국 U-23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주장’ 손흥민(26·토트넘)은 패배한 다음 날인 18일 후배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독일을 이긴 것이 역사에 남듯 우리가 말레이시아에 패한 것 역시 선수들의 커리어에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계속되는 공격 득점 실패에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둥 참사’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일부 네티즌은 수차례 득점 찬스를 놓친 황희찬(23·잘츠부르크)을 맹비난했다. 더구나 황희찬은 경기 후 말레이시아 선수들과 악수를 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돌출 행동’으로 더 큰 질책을 받았다.
연이은 실책성 플레이로 2실점 한 골키퍼 송범근(21·전북)도 비난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바레인과 1차전(6-0승)에서 선방 쇼를 펼친 골키퍼 조현우(27·대구)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김병지는 유튜브 방송 중 송범근의 평점(10점 만점)을 매겨달라는 질문에 “마이너스 2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비난이 쇄도하자 황희찬과 송범근은 소셜미디어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골키퍼 송범근이 한국-말레이시아 경기 후 SNS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사진 송범근 인스타그램]

1차전과 비교해 선발진을 6명이나 바꾼 김학범 감독의 선수 기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더라도 경기에 단 1분이라도 출전해야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점을 의식해 말레이시아와의 2차전에서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했다가 화를 자초했다. 축구 팬들은 “상대를 얕잡아보고 로테이션을 너무 일찍 가동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말레이시아 축구팬들이 지난 17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가 한국에 2-1로 승리하자 손흥민의 인스타그램 계정 게시물에 조롱성 댓글을 달았고 이에 격분한 한국 축구팬들이 욕설로 대응하면서 손흥민의 SNS 계정이 양국 축구팬들의 싸움장으로 변했다. [손흥민 인스타그램 캡처]
일부 말레이시아 팬은 손흥민의 소셜미디어에 들어가 조롱의 글을 남겼다. ‘우리한테 지려고 영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 건너온 거냐’고 적었다. 한국 축구 팬들이 욕설로 대응하면서 손흥민의 소셜미디어는 양국 팬들의 싸움장으로 변했다. 손흥민의 최근 게시물엔 5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결국 부담감을 극복해야 한다. ‘병역 면제 혜택을 받으려면 꼭 금메달을 따야만 한다’는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금메달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방심하지 않도록 일찌감치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말레이시아에 발목을 잡힌 대가는 너무나 크다.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김학범 감독이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도 조 1위를 놓친 탓에 향후 일정이 ‘꽃길’ 대신 ‘가시밭길’이다. 한국(1승1패)은 20일 오후 9시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에서 이기더라도, 승자 승 원칙에 따라 말레이시아(2승)에 밀려 E조 1위가 불가능해졌다. 16강전부터는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E조 1위를 내주는 바람에 16강전부터 줄줄이 강팀을 상대해야 한다. 16강전 날짜도 23일로 하루 당겨져 휴식일이 줄었다.

한국이 조 2위로 16강에 오르면 F조 1위를 만난다. F조에서 나란히 1승1무를 기록 중인 이란 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은 크고 작은 국제 대회에서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한국 킬러’다. 8강에 오른다 해도 ‘우승 후보’ 우즈베키스탄과 만날 가능성이 크다. 4강에 오르면 ‘숙적’ 일본과 한·일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김학범 감독은 "흙길, 시멘트길, 아스팔트길을 놔두고 가시밭길로 들어왔고 이젠 매경기 총력전”이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패배 탓에 팀 분위기도 흔들리고 있다. 손흥민이 후배들에게 강도 높은 질책을 한 것도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팀 내에서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겔로랑 반둥 라우탄 아피 스타디움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둔 한국 U-23 축구대표팀 손흥민, 이승우 등의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팀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건 와일드 카드(24세 이상 선수) 손흥민의 몫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남자 축구는 수퍼스타가 없었는데도 28년 만에 금메달을 땄다. 당시 부상으로 중반까지 결장했던 김신욱은 식당 로비에서도 후배 이용재를 붙잡고 가상의 상황을 대비한 플레이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당시 팀 미팅 때 ‘군대’는 금기어였다. 선수들은 “개인의 영광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위해 뛰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 A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가 20일 한국에 온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위주로 전술을 짰다. 한국 축구를 맡은 뒤에는 스트라이커 손흥민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앞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이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토트넘 생활을 접고, 군에 입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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