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차 사라진다'..베네수엘라에 문 닫는 주변국들

박용필 기자 2018. 8. 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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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4일 유엔은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로 인구의 7%인 230만명이 나라를 탈출했다고 밝혔다. 주된 이유는 ‘음식 부족’이라고 했다. 실제 230만명 중 130만명이 영양 실조 상태였다고 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한 탈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살기 위한 탈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출로가 점점 막히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탈출한 베네수엘라인들은 대부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브라질, 미국 등으로 향해왔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 모두가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하거나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브라질 로라이마주 파카라이마시의 버스터미널에서 1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이민자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파카라이마|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라”

18일(현지시간) 브라질의 베네수엘라 접경 지역 로라이마 주의 파카라이마 시에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벌어졌다. 공격은 전날 한 식당 주인이 베네수엘라 이민자로 추정되는 4명의 괴한에게 강도 피해를 당하면서 촉발됐다. 주민들은 베네수엘라인들을 향해 “나가라”,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민자들에게 돌을 던졌고, 그들의 텐트와 짐에 불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베네수엘라 이민자 수백명이 이날 다시 국경을 넘어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로라이마 주에는 하루 800명 정도의 베네수엘라인들이 밀려든다. 현재 5만명 가량이 거주 중이며 이는 로라이마주의 전체 인구(52만명)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브라질에서도 재정이 열악한 편인 로라이마주의 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범죄율이 치솟고 홍역 등 감염병까지 유입되자 주 정부는 지난 6일 국경 폐쇄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연방 정부에 의해 하루 만에 무효화됐지만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남성이 지난 8일 브라질 로라이마주 파카라이마시의 한 길거리에서 숙소로 쓸 텐트를 치고 있다. 파카라이마|로이터연합뉴스

에콰도르는 이날부터 베네수엘라인들에 한해서만 여권 미소지자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에콰도르는 남미 국가들 중 이민자나 난민에 가장 친화적인 나라다. 그러나 콜롬비아를 통해 유입되는 베네수엘라 이민자의 수가 하루 500~1000명 선에서 최근 4000명 이상으로 치솟자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지난 8일에는 카르치주와 피친차주, 엘오로주 등 접경지역 3개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페루 역시 오는 25일부터 여권이 없는 베네수엘라인의 입국을 금지시킬 예정이다. 페루에도 지난 11일 하루에만 5100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콜롬비아를 거쳐 밀려들어왔다.

이는 베네수엘라 이민자의 최대 유입국인 콜롬비아의 국경 역시 닫힐 수 있음을 뜻한다. 콜롬비아 국경을 넘은 베네수엘라인 상당수는 그동안 에콰도르나 페루로 빠져나갔다. 올 들어 콜롬비아 루미차카 시를 거쳐 에콰도르로 빠져나간 베네수엘라인은 42만3000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여권 미소지자였다. 잉크와 종이 부족 등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는 이들 국가로 향하는 베네수엘라 이민자 상당수가 콜롬비아에 잔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콜롬비아 역시 여력이 없다. 이미 80만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수도 보고타 등 각지에 거주 중이다. 크리스티안 크루거 콜롬비아 이민청장은 17일 “여권이 없는 베네수엘라인들이 에콰도르와 페루로 건너가지 못할 경우 결과가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최근 ‘드론 암살 기도 사건’ 등을 두고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부와 콜롬비아의 우파 정부 간 갈등이 깊어지는 것도 국경 폐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지에서는 베네수엘라가 먼저 콜롬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베네수엘라 여성이 17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루미차카 시에서 에콰도르로의 입국이 거부된 직후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루미차카|AP연합뉴스

■새로운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베네수엘라는 브라질, 콜롬비아, 가이아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중 가이아나를 통해서 갈 수 있는 나라는 수리남과 프랑스령 기아나 뿐이다. 모두 인구 100만명이 채 안되는 작은 나라들이다. 때문에 브라질, 콜롬비아와의 국경이 막힌다는 것은 육로를 통한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을 뜻한다. 북·중·남미의 다른 나라로 향하려 해도 콜롬비아나 브라질을 거쳐야만 한다. 이 외의 탈출로는 북쪽의 카리브해를 통한 해로 뿐이다. 그러나 카리브해 연안국이나 인근 중미 국가들 중 어느 나라도 이 정도 규모의 이민자를 수용할 여건이 못된다. 이들 나라를 거쳐 미국 국경에 도착한다 해도 그곳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해상 탈출은 새로운 비극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카리브해가 ‘제2의 지중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쪽배 등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혀 사망한 난민과 이주자는 150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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