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또 들를게요" 한마디에 할머니는 매일 밖을 바라본다

송미옥 2018. 8.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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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38)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에게는 매일이 기다림이다. 그 분들에게는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인 것이다. [사진 pixabay]

몇 해 전 독거노인 생활 관리사 일을 3년 동안 했다. 혼자 계시는 분을 찾아뵙고 말동무도 하며 건강도 보살피는 일이다. 그 일을 하면서 어르신의 삶을 깊이 알게 되고 심리상태도 많이 이해하게 됐다. 요즘도 주위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눈에 자꾸 들어와 지나가는 길에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오곤 한다.

어르신 댁을 방문하고 돌아설 때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은 “언제 또 오냐~”라는 물음이다. 처음엔 대답을 잘못해 어르신들을 엄청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지나가는 길에 들릴게요”라든가 “수일 내로 들릴게요”라고 하면 그날부터 어르신들은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말이어서 금방 잊어버릴 말이지만 그분에게는 종일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인 것이다.

이전 근무할 때 어느 겨울날엔 아침 10시경에 한 어르신 댁에 도착하니 어르신이 큰길 밖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에그. 추운데 왜 밖에서 이러고 계셔요?” 했더니 “오늘은 꼭 올 것 같아서 저쪽 골목에서 올까, 이쪽 골목으로 올까. 큰길로 오는가, 거랑길로 오는가…” 하며 혼자서 내기를 하며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어린애가 기다리던 엄마를 만난 양 반갑게 손을 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가셨다. 혼자서 심심할 때 드시라고 자제분이 사 놓고 간 귀한 딸기며 사탕, 그리고 밥그릇에 수북이 타온 커피까지 내 앞에다 밀어놓고 기다림과 내기하다가 당신이 졌다며 웃으셨다.

할머니는 어느 날 문득 혼자라는 것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오면 불도 없는 무서운 골방에 처박혀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셨다. 이런 시골에선 특히 더 큰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독거 어르신이 내 이름을 써서 선물로 주신 거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딸이 없어서 나를 딸같이 대해 주셨는데 이분도 몇해 전 돌아가셨다. 자제분들과 의남매를 맺어 지내고 있다. [사진 송미옥]

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멀다는 이유로, 게을러지는 나를 기운 내게 하는 어르신의 표정에 반성과 함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언젠가 사발에 가득 타온 커피를 다 마실 즈음 어르신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쑥스럽게 내미셨다. “이거~ 선물이야. 기다리면서 쓴 거야. 아무도 보여 주지 마.”

무학이라 글을 읽으실 줄 모르는 어르신이 언젠가 내 이름을 어떻게 쓰냐길래 공책 한장 쭉 찢어서 그림 그리듯이 써 드렸더니 며칠 동안 기다림을 끌어안고 그림 그리듯 하셨나 보다.

나는 쪼글쪼글 라면 같은 얼굴을 한 어르신의 얼굴을 가슴에 꼭 안아 주면서 선물을 대신하곤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 나올 때면 까닭 모를 눈물이 나던 날이 참 많았다.

그 일을 그만두고 도시 근교로 나와서도 오랫동안 그분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한 해 한 해 그분들의 타계 소식을 들으며 나도 나이 들어감을 실감한다. 수양딸 하자며 어머니같이 잘 해주시던 또 한 어르신의 부고를 받고 문상 갈 준비하면서 이 글을 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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