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미투 승소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시간"

이하늬 기자 2018. 8. 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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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가의 서지현’이라 불렸던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56)는 최근 미투연대(전국미투생존자연대)의 ‘대모’가 됐다. 미투연대는 성폭력 피해자 당사자 모임이다. 상당수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는 만큼 미투연대 구성원 대부분이 2030 여성이다. 남 전 교수는 2015년부터 교내 성폭력 사건에 맞서 싸웠고 민사와 형사 1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남 전 교수는 “승소는 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며 “후배들이 그런 과정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 / 본인 제공

-미투운동이 시작된 지 6개월이 흘렀다. 운동의 성과가 뭐라고 보나. “그동안 모든 성폭력을 뭉뚱그려 ‘성폭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했다. 미투운동으로 위계와 권력에 의해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렸다.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카테고리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것이다.

-당시 미투연대가 꾸려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미투연대는 당사자 모임이다. 당사자들이 모여 피해사례, 해결과정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일종의 패턴을 알게 됐다. 성폭력 발생 상황과 이후 2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낙인, 법원에서의 다툼 등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다. 정보를 공유하고 또 우리가 알게 된 걸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공유하려고 한다. 알아야 대응할 수 있는데, 그동안 당사자들은 고립돼 있었다.”

-본인도 미투의 당사자다. 연대를 꾸리게 된 계기가 있나. “저는 민사와 형사 1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그 사이 직장을 잃었고 법정 다툼만 3년이 걸렸다. 가해자는 민사 판결이 난 이후에야 ‘해고’도 아닌 사직서를 제출했다. 억울했다. 그럼에도 변호사가 저는 상위 1%에 드는 케이스라고 했다. 훨씬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싸우는 과정에서 느낀 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거였다. 후배들이 이런 과정을 밟게 하고 싶지 않다.”

-피해자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가해자가 다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피해자도 선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건 피해자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지, 무조건 피해자 말이 옳다는 게 아니다. 미투연대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나갔다. 그 중에는 미투로 유명해지고 싶거나 자기 사건만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지점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미투 6개월이 지났는데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솔직히 말하면 비참하고 회의감이 든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권력형 성폭력은 조직과 제도의 탓도 크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직과 제도 변화와 관련한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미투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통과된 법은 하나도 없다. 정치인 개인의 인기를 위해 미투를 이용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가해자들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숨거나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권력형 성범죄에서 피해자 대부분은 격렬한 저항을 할 수 없다. ‘아니오’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정도다. 그런데 현행법에서는 이 정도는 거절의사로 보지 않는다. ‘비동의간음죄’부터 도입해야 한다. 해외에는 ‘노 민스 노(No means no)’는 물론이고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규정이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법과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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