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동물원 '동물의 집' 이대로 괜찮나요?

2018. 8. 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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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더(THE) 친절한 기자들
25억 들여 리모델링한 서울동물원 야행관
물 잘 안 빠지고 시멘트 바닥, 서식지 재현 못 해
동물 잘 아는 동물원이 건축계와 적극 소통해야

[한겨레]

야행관 킹카쥬가 사는 실내 방사장의 모습이다. 시멘트 바닥으로 설계돼있어 그 위에 나무껍질을 깔아주었다. 문제는 물청소를 할 때마다 나무껍질을 걷어내고 청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흙 바닥으로 했다면 동물의 발에도 좋고 물 빠짐 걱정도 없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신문에서 동물 관련 기사를 쓰는 ‘애니멀피플’팀 최우리 기자입니다. 동물원에 가는 게 취미인데 동물원에 갈 때마다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오늘은 동물원 동물이 사는 집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5월 리모델링해 새로 문을 연 서울동물원 야행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야행관은 지상 1층의 연면적 622.2㎡(약 188평)의 건물로, 야행성 동물인 킹카쥬, 라쿤, 네이키드몰렛, 사막여우, 아프리카포큐파인, 이집트과일박쥐, 아드바크 등 다양한 동물이 사는 곳입니다. 새로 문을 연 만큼 좋을까요? 동물, 관람객, 사육사 모두가 만족할 만 할까요?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물청소 해줘야 하는데…

“사육장이 넓어졌다. 햇빛을 볼 수 있는 점은 좋아졌다. 그런데 배수구가 너무 좁아서 물이 잘 안 빠진다.”

지난달 24일 서울동물원 야행관을 찾았을 때 김진수 사육사가 말했습니다. 총 공사비 25억원을 들여 1년 4개월 동안 리모델링 공사를 한 건물인데 물 빠짐이 좋지 않다니 의아했습니다.

“라쿤만 4마리. 아침이면 물에 젖은 털이 어른 주먹 크기만큼씩 빠져있다. 그런데 배수구가 작으니까 다 걸린다. 배수구가 막히면 물이 역류하기 때문에 직접 구멍 안에 망을 제거했다. 그랬더니 좀 낫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동물사를 물청소하는데 배수구가 일반 건물의 것과 같아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욕조 크기의 연못에 있는 배수구는 지름 5㎝, 내실 배수구는 길이 12㎝의 정사각형 모양이었습니다. 배수시설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사육사들의 요구로 사무 공간과 내실을 연결하는 통로에 4개의 긴 배수구를 추가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방사장의 배수구가 더 문제였지만, 그럴 경우 바닥에 깔린 난방 공사까지 새로 해야 해서 그건 고치지 못했다고 하네요.

사람 욕조 크기의 연못에 지름 5㎝의 배수구가 보인다. 사육사들은 동물 털이 많이 빠져있는데 건져내고 치워도 배수구에 자주 걸린다고 했다.
야행관 건물의 배수구는 특별하지 않다. 다만 야행관이란 건물이 동물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배수구는 맞지 않는다고 사육사들은 지적한다.

“동물사마다 신경 쓰는 게 물이 잘 빠지느냐다. 그런데 잘 되는 곳은 거의 없을 거다. 항상 사육사가 만족하기 쉽지 않다. 야행관은 새로 공사하면서 신경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김 사육사는 아쉬워했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오전 11시 회의 전까지 청소를 하는 데 그때마다 느낀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이주희 사육사도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바닥이 시멘트이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좋지 않다, 나무껍질이나 흙을 다시 깔아야 해서 역시 물청소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 사육사는 공사 기간 동안 자연 흙과 잔디를 깔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래도 사육사들이 시멘트 바닥 위를 동물이 살기 편하게 나무껍질이나 나무판 등을 깔아놓아 다행입니다. “동물이 사는 곳의 배수구는 사람이 쓰는 건물 배수구와 달라야 한다. 배수가 잘 되어야 하고, 동시에 동물이 빠져나가지 못 하게도 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 동물원만 만드는 건축사무소, 건설회사는 없으니까 이런 게 세세하게 다 잘 될 수가 없다.”

아쉬운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관람으로 얻을 교육 효과도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서울동물원은 야행관 동물을 두고 하늘(박쥐)부터 땅 속(네이키드몰렛)까지 다양한 서식환경에서 사는 야행성 동물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업계 전문가는 교육 효과가 크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야행성 동물 한곳에 둔다고 교육 안 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전문가는 “꼭 야행관에 있어야 하는 동물들이 아니다. 연관성이 없다”라며 ”야행 동물의 습성과 모습을 보여줘서 동물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이들이 잘 살려면 빛 공해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까지 끌어내야 좋은 동물원이다. 하지만 야행관에는 그런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동물원의 미래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이어야 한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온대 기후인 북미에 사는 라쿤과 열대 기후에 사는 포큐파인 등이 같은 공간에 있다니 이해가 안 된다. 단순히 야행성 동물이라고 실내 한곳에 모아놓고 전시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우선 동물원 동물사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건축사무소를 찾기 어려운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사나 시공업체 탓을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일이 적으니 동물원 전문 건축사가 있을 수가 없지 않겠냐”라고 되물었습니다. 1984년 서울동물원 개원 이후 각 지역의 자랑처럼 동물원이 문을 열 때 비슷비슷한 동물사를 지은 뒤 동물원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이제야 하나씩 겨우 손을 보고 있는 현실에서 일감이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한국 동물원 설계와 시공은 동물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조경설계사무소나 종합조경시공업체가 주로 맡습니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미국에는 동물원만 전문으로 하는 대형 설계사무소 3곳, 소형 설계사무소 10여개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에 등록된 동물원만 220개가 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막여우의 야외 방사장.
지난 5월 문을 연 서울동물원 야행관. 25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다. 하지만 최신 생태 동물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동물원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해 리모델링한 광주 우치동물원의 해양동물관을 설계한 광주의 한 설계사는 “사육사의 말을 참고해 설계를 계속 바꿨다. 물을 여과해주는 장치도 하나로 하려다가 동물사마다 달기로 조정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행관 건물 설계를 맡은 황아무개 건축사도 지난달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동물원 쪽과 협의를 해 지은 건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서울동물원에 확인해보니 공사 기간이던 2016년 말부터 지난 3월까지 회의를 13차례 열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요.

동물원 관계자들은 동물원의 책임의식 부족, 전문성이 쌓일 수 없는 순환 보직이라는 인사제도 등을 짚었습니다. 야행관 리모델링 공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육시설이 동물 복지적으로 지어질 수 있도록 설계, 시공 과정에서 소통을 담당할 관리자가 필요했는데 사정상 그러지 못했다. 담당이 여러 번 바뀌어 누구라도 책임지고 공사를 이끌어 갈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또 사육사들은 한 동물을 5년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사육사의 입장이 잘 전달되지 못할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야행관도 야행관 공사 중에 담당 사육사가 바뀌었습니다.

동물원의 책임감, 소통 능력 중요

야행관 사례는 한국 동물원에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한국의 동물원은 1984년 서울동물원이 개원하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대구, 광주 등 전국적으로 동물원이 세워졌습니다. 동물원이 있다는 게 지역의 자랑처럼 여겨졌지요. 문제는 동물 복지와는 담을 쌓았던 1960~1970년대 외국 동물원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동물원 사육장이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검은 철창으로 통일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사육시설이 지금은 낙후되어 앞으로 리모델링, 신축공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동물원 업계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하지만 외실을 보기 좋게 단장한다고 해도 내실은 엉망인 곳도 여전히 많다고 하니 더 걱정입니다. 새로 만드는 동물의 집은 30년 전 건물처럼 특색없고 반생태적으로 짓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1996년 서울시에서 낸 ‘한국동물원 80년사’를 보면 “최신 동물원은 생태 동물원으로 지어지는 추세”라며 이를 반영할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후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생태 동물원처럼 최대한 동물의 서식지를 재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물과 가장 가까운 동물원이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로 일해야 함은 분명합니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야행관에 사는 동물들. 전문가들은 많은 동물이 야행성 동물인 데다, 지금 동물들이 야행관에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야행관의 킹카쥬.
2018년 미국 시애틀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의 야행관 모습. 같은 실내 전시공간이지만 서울동물원 야행관과 비교해볼 때 서식지를 더 잘 재현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드랜드 파크 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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