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75세의 나이에 250km 고비사막마라톤 완주한 비결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2018. 8. 18. 07:50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성별
말하기 속도
번역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종구 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이무웅 씨 제공
올해로 만 75세인 이무웅 씨(구진피티에프이 대표)는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몽골에서 열린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했다.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다. 이번엔 비까지 내려 더욱 힘든 레이스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참가자중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령이었다. 그에게 사막마라톤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기회였다. 그에게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뭐 그런 것 있지 않나. 내 몸을 극한으로 치닫게 한 뒤 그것을 이겨내면 밀려오는 쾌감, 언젠가부터 그것을 즐기고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이집트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이루는 등 지구촌 극지마라톤을 16차례나 다녀왔다. 2번 이상 간 곳도 있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모래바람도 이겨야 한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카타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한마디로 극한을 모두 모아 놓은 대회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메달을 들고 찍은 모습. 광복절인 15일 서울 영등포구 이무웅 씨 회사 사무실.

“고비사막마라톤이 중국 위구루 신장 쪽에서 열리다 올해부터 몽골 쪽에서 열렸다. 중국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코스는 쉬웠는데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했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달렸는데 그게 균형이 맞지 않았는지 허리가 너무 아팠다.”

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속보로 걸었다. 중간에 비까지 내렸을 땐 포기할 생각도 했다. 약 40k를 달리는 셋째 날이 고비였다. “그날 오후에 비가 왔다. 당연히 배낭이 젖었다. 무거워서 통증이 배가 됐다. 허리 아파 먹은 약 때문에 배까지 아팠다.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끌고 갔다. 속도는 더디고 허리는 아프고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려니 달려온 게 너무 아까웠다. 3일째 레이스를 마치고 캠프에 들어가서 4, 5일 째 긴 거리를 달리는 롱데이 땐 비가 오면 그만둔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비가 안 오더라. 그래서 다시 달렸다.”

4일째도 오후에 폭우가 쏟아져 다시 포기할 생각을 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멈출 수 없었다. 약 70km를 달리는 롱데이를 19시간에 완주했다. 그렇게 완주하고 나니 더 기뻤다. “아파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었다. 사실상 내 체력으로만 버텼다. 그게 자랑스러웠다. 약 5km를 발목이 빠지는 습지를 달리기도 했다. 그런 극한을 이겨낸 뒤 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무웅 씨 제공
이 씨는 우연한 기회에 달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골프에 입문해 열심히 훈련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그립을 못 잡을 정도였다. 그 때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했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2015년 작고)이 조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 반바지에 테니스운동화를 신고 냅다 뛰었다. 그런데 150m인 운동장 트랙 절반도 못 돌고 숨이 막혔다. 허허, ‘한바퀴도 못 도내’하며 한탄하고 돌아섰다. 다음 날 또 달렸다. 또 한바퀴도 돌지 못했다. 그 때 알았다. 내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것을…. 천천히 달리면 되는 것을 냅다 뛰었으니…. 천천히 달렸더니 한바퀴, 두 바퀴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많이 달리니 땀이 흘렀고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게 여기까지 온 계기가 됐다.”

운동장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 외곽을 달렸다. 매일 달리니 한번에 뛰는 거리도 늘었다. 공식대회에서 검증을 받고 싶었다. 1998년 10월 춘천마라톤 10km에 신청했다. “당시 내 나이가 55세였다. 속칭 중늙은이였다. 혹시나 달리다 변이 생길까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엔 심각했다.” 56분45초. 첫 완주 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1999년 3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동아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1시간56분51초.

“솔직히 마라톤대회를 잘 몰라 10km 다음엔 15km, 20km 등 차근차근 출전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대회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것이다. 이번에는 아들 딸 대신 회사 직원들과 야유회를 함께 가는 식으로 경주로 갔다. 역시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웠다.”

풀코스는 전문적인 훈련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꿈도 꾸지 못했다. 2000년 10월 춘천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리려 했는데 그해부터 하프코스가 없어졌다. 낭패였다. 어쩔 수 없이 풀코스를 신청했다.

“참가신청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프인 21.0975km를 달렸으니 그 거리 이상으로만 달리자는 생각으로 출전했다. 사실 미리 포기를 생각하고 간 것이다. 25km를 넘기고 마의 35km에선 모든 관절이 아프고 근육 경련이 일어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달려온 게 아까웠다. 걷다 뛰다를 반복해 결국 완주했다. 4시간56분48초. 그것도 제한시간인 5시간 이내 완주였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다 그렇듯 달린 땐 고통 속에서 ‘내가 다시 풀코스에 출전하면 바보다 바보’라고 하다가도 결승선만 통과하면 ‘내가 언제 그랬지’하며 다음 대회를 찾듯 이 씨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달렸다. 어느 순간 풀코스가 싱겁다고 느껴졌다. 좀 더 고통스러운 게 없나 찾았다. 100km 울트라마라톤이 보였다.

“난 이상하게도 늘 좀 더 힘든 것을 찾았다. 하나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힘든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2002년 서울울트라마라톤 100km를 13시간30분48초에 완주했다. 제한시간 14시간 이내 완주다. 마라톤 풀코스하고는 완주 감동이 달랐다. ‘뭐 또 없나’하며 2003년 200km 울트라마라톤을 뛰었다.”

극한에 극한을 찾다 2004년 사막마라톤을 접했다. 당시 사막마라톤에 빠져 있던 유지성 극지마라톤 전문가(47)와 함께 했다. 사막마라톤은 약 250km를 6박7일간 달리는 극한마라톤이다.

“풀코스도 훈련이 필요하지만 사막을 달린다고 하니 살아올 게 더 걱정이 됐다. 훈련을 아주 많이 했다. 매일 달렸다. 결국 2004년 3월 동아일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3시간49분25초. 그리고 약 한달 뒤 모로코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했다.”

이무웅 씨 제공
사하라사막마라톤은 모로코와 이집트에서 열리는 게 있는데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은 이집트 대회를 인정해준다. 그래서 2005년 4월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한 뒤 10월 이집트사하라사막마라톤에 출전했는데 실패했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7월 아타카마사막마라톤을 먼저 완주 한 뒤 그해 10월 이집트사하라사막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남극마라톤은 위 3대 사막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출전자격이 주어진다. 이 씨는 2007년 11월 남극마라톤까지 완주했다. 남극마라톤은 일정한 거리를 일정 시간 안에 완주하는 레이스. 이 씨는 20시간에 95km를 완주하며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이 씨는 2008년 ‘10km에서 남극마라톤까지 냅다 뛰었습니다’라는 책도 썼다.

이렇게 극한을 향해 달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6·25 때 피난 길 기억 때문인 것 같다. 1951년 겨울 한강이 꽁꽁 얼었을 때 부모님 손 꼭 잡고 한강을 건너 경기 평택까지 피난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내 손을 잡고 끌고 간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이 씨는 6·25 때를 다시 떠올리기 위해 서울에서 평택까지 뛰어 가기도 했다. 교통 상황 등으로 완주는 못했지만 달리면서 부모님과의 피난길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이 달리는데 몸에 부작용은 없을까.

“부작용? 난 기록과 완주 횟수를 의식하지 않는다. 내 몸 생각하며 달린다. 풀코스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때 한번 완주한 뒤에는 4시간에서 5시간 사이로 천천히 달린다. 내가 뛰는 이유가 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횟수도 늘리는 것도, 기록을 당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건강을 위해 달린다. 그러기 위해선 다치지 말아야 한다. 내 몸에 맞는 속도로 천천히 달린다.”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천히 달렸는데도 2014년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2010년부터 기록이 떨어지면서 달리는 게 힘들었다.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물론 그 때도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2014년 사막마라톤 입문 10주년을 기념해 모로코사하라사막 마라톤에 도전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그리고 9월 수술 받았다.”

이무웅 씨 제공
이 씨는 “나이 들어 10kg 이상 배낭을 메고 달린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이 들면 키도 줄고 몸이 오그라드는데 10kg 이상을 메고 사막을 달렸으니 협착이 급격히 진행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척추 협착증 수술 이후 다시는 안 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땀 맛’이 또 생각났다. 수술한 뒤 한달도 되기 전에 10km를 완주했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하프, 풀, 100km 울트라…. 2015년 스리랑카 22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완전히 내 몸이 과거로 되돌아갔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안 다치게 노력한다. 몸이 부드러워야 안 다친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요가를 한다. 근육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눈 뜨자마자 한다. 각 관절 및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그래야 오래 달릴 수 있다.”

이 씨의 운동 ‘제1 원칙’은 하체 강화. 다리가 튼튼해야 건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스포츠를 빛낸 선수들 잘 봐라. 축구의 박지성, 야구의 박찬호, 골프의 박세리,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세계를 호령한 선수들 모두 하체가 튼튼하다. ‘꿀벅지’로까지 불린다. 하체가 부실하면 절대 운동선수로 성공 못한다.”

이 씨는 유연성과 달리기 위주로 운동을 한다. 평소 주 2~3회 7km를 달린다. 주말엔 2~3시간 지속주(천천히 오래 달리기)를 한다. 산도 달린다. 산과 들을 달리는 ‘트레일런’ 대회에도 출전한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난 몸이 이상하면 바로 포기한다. 절대 무리해서 안 뛴다. 다음을 기약한다. 내 몸이 싫다고 하면 바로 멈춘다. 그래서 내 운동 수명이 긴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울트라마라톤 하는 최고령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령이다. 그 자부심을 오래 느끼려면 천천히 욕심을 버리고 달려야 한다.”

이무웅 씨 제공
이 씨는 “이젠 사막마라톤 같은 힘든 레이스는 하지 않겠다. 나를 더 이상 극단적 고통에 넣기 싫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울트라마라톤과 트레일런 등을 즐기며 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향후 계획이 뭐냐’고 묻자 금세 눈을 반짝거리며 “내년 8월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TMB)”이라며 “100km에 출전하느냐 170km를 달리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UTMB는 울트라 트레일러닝(Trail-running) 대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트레일러닝은 포장길을 달리는 일반 마라톤과 달리 산과 들 계곡 사막 등 비포장 길을 달린다.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한 뒤 힘들어 더 달릴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눈은 울트라 트레일런의 최고봉인 UTMB을 향해 있었다. UTMB는 극지마라톤을 달리며 일정 점수를 획득해야 출전할 수 있는데 이 씨는 이미 다 채웠다. 유지성 씨는 “운동은 일종의 마약이다. 힘이 있는데 안할 수 없다. 이무웅 선생님이 더 이상 사막에 안 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며 웃었다.

“일반적으로 나이 먹으면 운동을 안 하려고 한다. 모든 게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100세 시대를 살 수 있다. 난 힘이 있는 한 달릴 것이다.”

이 씨는 달린다는 생각 만해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