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펫 로스 증후군 줄이려면 이별의 기술 필요"
[경향신문] ㆍ반려동물 최후 보듬는 해마루동물병원 김현욱 원장

SBS <TV 동물농장>은 2001년 첫 전파를 탔다. 방송 이후 특정 견종은 품귀를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며 반려동물 붐을 견인했다. 그렇게 새 식구가 된 반려동물들이 노령화 단계에 와 있다.
소형견의 평균 수명은 10~12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학 기술 발달 덕분에 요즘은 14~15살까지 살고 있다. 대형견의 수명은 다소 짧다. 체중 50㎏대 초대형견으로 분류되는 그레이트데인의 수명은 7~8년에 불과하다. 소형견은 보통 7, 8살이 되면 노령에 든다. 견생의 1년을 인생의 6~7년으로 본다. 고양이는 해외 통계에 따르면 통상 18~20년을 산다.
나이가 들면 관절부터 삐그덕 소리를 낸다. 활동성이 떨어지고 뇌기능이 저하되며 시력과 청력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를 자연스러운 노화로 받아들인다. 반려동물 역시 같은 과정을 겪는다. 다만 표현을 못할 뿐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울 때 마지막 선택으로 ‘안락사’도
통증·운동성 등 지표 마련해 반려인에게 충분한 정보 주고 안락사 결정 후엔 심리적 지지
임종 지키고 장례 치르는 것도 펫 로스 증후군 더는 데 큰 도움
“ ‘반려’라고 하지만 개나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어서 자신이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이 때문에 보호자가 반려동물이 아픈 걸 인지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경우가 많죠.” 해마루동물병원 김현욱 원장(사진)이 건강검진을 통해 최소 1년에 한번은 건강 상태를 체크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반려동물은 질병의 조기발견이 특히 중요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질병을 조기발견할수록 적합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실제 둘러본 동물병원의 의료기기나 약제는 사람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비싼 기계의 활용빈도가 사람의 의료에 비해 적은 만큼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동물병원과 보호자의 몫이 되고 있다.
반려동물에게 더 이상의 의료적 조치가 어렵거나 삶의 질이 유지되기 힘들 때 담당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안락사를 권하기도 한다. 김 원장은 “수의사들이 안락사를 권하는 이유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는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본 뒤 ‘편하게 보낼 걸’ 하고 후회하는 보호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음과의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반려동물의 고통이 고스란히 보호자에게 전이되기도 한다.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차라리 빨리 갔으면 하는 양가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안락사에 대한 가족 내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있다. 안락사에 대한 비난을 짊어지게 되는 구성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원만한 작별이 안될 때, 감정적인 갈등을 겪을 때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혹독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고양이를 안락사시킨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반려인도 있었다. 김 원장은 반려인에게 안락사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주고 또 결정 이후에는 심리적 지지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자체 제작한 책자에서 반려동물의 삶의 질 척도표를 통해 질병 진행과정에 따른 계획을 미리 세우도록 했다. 통증, 배고픔, 위생, 운동성 등 각 항목의 점수를 체크해 35점 이하일 경우 안락사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일종의 객관적 지표를 마련해둔 것이다. 반려인들에게 이 척도표는 쉽지 않은 결정의 객관적인 근거이자 심리적인 지지대가 된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인은 극소수다. 반려동물 상실을 자식의 죽음에 비견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새끼 하나 죽은 거 때문에 뭘 그러느냐”는 비아냥은 도처에 있다. 특히 반려동물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은 노령층의 경우 반려동물의 죽음이 불러오는 충격은 크다. 김 원장은 “덴마크와 같은 선진국은 주치의와 수의사 간 협업관계가 잘되어 있어서 반려동물이 죽을 경우 수의사가 노령 보호자의 주치의에게 보호자의 정신적 특별 관리를 요청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해 24시간 펫 로스 상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4개조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365일 운영되는 2차진료병원이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반려동물이 무사히 반려인에게 돌아가는 회생의 공간인 동시에 숱한 이별과 맞닥뜨리는 극적인 장소다. 병원 내에는 임종을 앞둔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면회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김 원장은 “안락사를 결정한 보호자에게 ‘원한다면 반려동물의 곁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며 “잠들 듯 편안하게 가기 때문에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이 더욱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의 삶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죽음이란 관계가 영원히 단절되는, 가장 큰 슬픔 중 하나잖아요.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는다는 건, 나중에 겪을 수 있는 슬픔을 덜어줄 수 있는 일종의 심리적 예방주사라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의 노화에 동반되는 또 하나의 변화는 치매 증상이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개가 갑자기 실수를 한다거나, 수면 주기가 바뀌어 밤에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보호자와의 유대관계가 달라지거나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 반려동물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일본은 노쇠한 반려인을 대신해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3년 전 호스피스 개념의 케어센터를 열었으나, 국내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초고령사회가 된다면, 반려동물과 반려인 모두를 위한 동물 전용 호스피스센터가 절실해질지도 모른다.

장례식과 같은 고별 의식을 치르는 것도 펫 로스 증후군을 더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또한 ‘잘 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매장 혹은 화장을 하거나 지정되지 않은 곳에 유골을 뿌리는 것은 위법이다. 등록된 장묘업체를 통해 화장이나 빙장(氷葬) 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유골로 보석을 만들어 소유하기도 한다. 해마루동물병원은 보호자들에게 반려동물의 발 모형을 제작해주고, 원할 경우 사전에 털 일부를 잘라두었다가 보내준다. 반려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손끝이 기억하는 감촉이기 때문이다. 또한 펫 로스 치유모임을 소개하고 참석권을 제공 중이다. 상실감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펫 로스 증후군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다시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게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이 사람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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