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의 고민, 연금개혁](4)'다층보장체계' 만든다는데..아직은 부족한 기초연금, 퇴직연금

박용하 기자 입력 2018. 8. 1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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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는 돈도 적은데 그마저도 줄어들면.’ 국민연금을 받는 이들은 돈이 적어 불만이고, 젊은 세대는 훗날이 걱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제도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입자들에게 돈을 더 걷으려 했다가도 반발이 심해 번번이 정부가 ‘포기’했다. 진작 높였어야 할 보험료율은 20년째 같은 수준이다.

학계나 전문가들은 실마리를 풀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번째는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일단 급여를 올린 후 보험료 인상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당분간 ‘용돈 연금’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보험료를 올려 재정을 확충하면서 조금씩 급여를 인상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전제가 따라붙는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을 조합해 노후를 보장하는 ‘다층보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초연금, ‘보편성’이 문제 오는 17일 국민연금 제도 개선 공청회를 앞두고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소득 보장에 중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지만 급여를 올리는 것에는 신중한 입장이고, 국민연금 이외의 수단들을 결합해 다층보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분위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다층체계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계시킬지, 소득보장 체계 전반을 어떻게 재구축할지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이외에도 노후소득을 보장해주는 수단은 여러가지다. 1994년 민간금융기관에 개인이 가입하는 개인연금이, 2005년에는 기업 퇴직금을 연금처럼 받는 퇴직연금이 도입됐다. 2008년에는 기초연금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가입대상이 아닌 65세 이상 노인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기초연금 신규 수급자 1000여명을 조사해보니 총소득 중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의 비중은 18.6%와 18%로 거의 비슷했다. 국민연금으로는 생계비를 메울 수 없는 이들에겐 월 20만원 가량의 기초연금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기초연금 계속수급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기초연금이 총 소득의 31.6%를 차지해 국민연금의 기여도(12.1%)보다 높게 나왔다.

다층보장체계에서 기초연금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다음달부터 액수가 월 25만원으로 오르고, 내년부터는 소득 하위 20% 노인에게 30만원씩을 준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어디까지나 연금 사각지대의 빈곤 노인층을 위한 대책에 가깝다. 국민연금이 지금 수준으로 용돈처럼 주어진다면 빈곤선 위의 연금수급자들 불만을 가라앉힐 수 없다. 기초연금의 대상을 늘리려면 세금이 늘어나야 하니 사회적으로 합의를 해야 한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본인 기여에 상관없이 받는 기초연금 혜택만 늘어난다면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아직 자리잡지 못한 퇴직연금 다층보장체계의 또 다른 축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노동자에게 줄 퇴직급여(퇴직금)를 금융회사에 맡겨 퇴직 뒤에 연금으로 지급하게 한 제도다. 회사가 도산해도 퇴직자는 금융회사로부터 안정적으로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제도가 정착됐다고 볼 수 없다. 2014년 정부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사업장들이 퇴직연금을 반드시 도입하도록 했지만, 중소영세사업체들의 도입률은 아직 15.4%에 불과하다. 제도가 도입되고 10년이 넘어 적립금 규모가 150조원에 이르렀으나 먹고살 길이 막막한 퇴직자들은 월정액보다는 옛날식 일시금을 선호한다. 2016년 만 55세 이상 가입자 중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24만718명이었는데, 98.4%가 일시금으로 받아갔다.

우해봉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이 빠른 시간 내 확대되는 것을 가정해 국민연금의 노후보장 역할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을지 계산했다. 연구 결과,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상당한 기간이 흘러도 국민연금을 보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소득 수준이 높은 이들일수록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에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의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지는 않다”라며 “향후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린 뒤 연금 종류별 역할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공무원·군인연금과의 ‘형평성’도 논란 공무원, 군인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은 국민연금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다. 제일 큰 불만은 연금 수령액수다. 국민연금을 20년 이상 부은 사람이 현재 받는 월평균 급여액은 90만원이 채 못 된다. 평균을 따지면 1인당 월 33만원남짓을 받는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240만원 이상이고, 사학연금은 260만원이 넘는다. 물론 공무원연금은 월급에서 떼어가는 연금보험료 비중이 국민연금의 2배인 9%이고 후불임금과 퇴직금 등이 포함돼 있어,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다.

문제는 적자를 세금으로 메꿔주는 구조다. 국민연금 재정이 말라붙지 않게 하려면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는 것밖엔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국민연금보다 앞서 1960년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재정이 이미 2001년에 고갈됐다. 그나마 제도개혁을 했는데도 올해 적자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군인연금은 공무원연금과 함께 도입됐고, 1970년대 후반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군인연금 국고보전은 올해 1조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군인연금은 20년 이상 복무하면 언제 은퇴하든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군인으로 일한 기간보다 연금을 더 오래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개인 부담률은 7%로 국민연금(4.5%)보다는 높지만 공무원연금보다는 낮다. 2030년 정부가 메꿔줘야 할 돈은 공무원연금 16조원, 군인연금 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치도 있다. 사학연금은 개인이 7%, 사학법인이 4% 정도를 내고 아직 재정고갈은 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재정고갈 우려가 나오자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공무원·군인연금부터 개혁하라는 비난글이 줄줄이 달렸다. ‘형평성’을 최소한이라도 확보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에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도 세금으로 보전해주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재정을 점검하는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주기적으로 재정을 들여다보고 개인 부담을 늘리거나 급여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무원연금은 1995년, 2001년, 2009년, 2015년 제도를 조금씩 개편하면서 그나마 손을 봤다. 하지만 군인연금은 수급자들의 반발을 이유로 손대지 못했다.

2015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2100만명이 넘는다. 공무원연금은 109만명, 군인연금은 18만명, 사학연금은 28만명 선이다. 중장기적으로 공적연금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재정으로도 40년가량을 버틸 수 있는 국민연금에 이미 적자가 쌓인 연금들을 다 합치면 결국 그 부담은 국민들이 떠맡는다. 통합보다 먼저 특수직역연금 개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조세팀장은 “통합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는 있지만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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