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교조 법외노조', 대법·정부 사전조율 증거 나왔다

2018. 8.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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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PC서 '재항고 이유서' 발견
고용부 제출 전 미리 받아본 정황
대리 작성·법리 검토 등 의심

고법 집행정지 인용뒤 문건엔
"전교조 손해 없어" 고용부 '편들기'

1심 본안재판 땐 재판장에 전화해
재판 진행현황, 선고일정 확인

[한겨레]

'사법적폐 청산과 사법농단 피해 회복을 촉구하는 교사선언과 사법농단과 법외노조 관련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 추가제소 발표 기자회견'이 지난 6월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열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사법농단에 의한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규탄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근혜 정부 시절 최대 노동사건 가운데 하나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관련해, 당시 대법원에 접수도 되지 않았던 고용노동부 쪽 소송서류를 법원행정처가 먼저 받아 본 정황이 드러났다. 노조 자격을 박탈한 한쪽 당사자인 고용부의 핵심 논리를 재판과 상관없는 행정처가 미리 챙겨 본 것으로, 법원행정처가 고용부를 대신해 소송 논리를 제공하거나 대법원의 입맛에 맞도록 사전에 ‘법리 검토’를 해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 중 하나로 꼽은 바 있어 ‘재판 거래’ 의혹을 입증할 핵심 사안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최근 전교조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해 이같은 정황을 확인했다.

5일 <한겨레> 취재 결과, ‘사법 농단’ 핵심 관련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2014년 10월7일 날짜로 작성된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건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그해 9월19일 서울고등법원은 ‘고용부의 노조 자격 박탈 처분을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우선 멈춰달라’며 전교조가 낸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고용부는 대법원에 ‘전교조를 다시 법외노조 상태로 되돌려달라’는 재항고 의사를 밝혔지만, 문건이 작성된 10월7일에는 정식 서류접수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사건 진행기록을 보면, 대법원은 그해 9월30일 사건을 접수한 뒤 일주일 뒤인 10월7일 고용부 쪽 대리인에게 ‘재항고기록접수통지서’를 발송했다. 통지서가 발송된 바로 다음날인 10월8일 대리인을 통해 고용부 입장을 담은 재항고 이유서가 제출된 것이다. 문건 작성 날짜를 기준으로 보면, 고용부가 대법원에 재항고 이유서를 정식으로 접수하기도 전에 행정처가 ‘재항고 이유서’ 또는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한 서류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과 관련해 대법원이 공개했던 300여건의 문건은 제목에 달린 날짜가 실제 작성 날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행정처가 ‘노조자격 박탈 논리’ 대신 만들었나

행정처가 고용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미리 받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최고법원 법률 전문가’로서 법리 검토를 대신 해주거나, 대법관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논리’를 반영해 수정해줬을 가능성도 있다. 문건에는 재항고 이유서의 목차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고용부가 법원에 제출한 재항고 이유서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

실제 대법원은 이듬해 6월 고용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효력을 되살렸다. 두달 뒤 성사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2015년 8월6일) 직전 행정처가 만든 ‘대법원장 말씀자료’에는 이런 대법원의 판단을 ‘(대통령) 4대 부문 개혁 중 교육 부문’으로 분류한 뒤 “항소심이 효력을 정지시킨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효력을 되살려 전교조를 법외노조 상태로 되돌려놓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사건 주심은 지난 2일 퇴임한 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서울고법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지위를 다시 돌려주도록 결정한 직후 법원행정처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책 문건’을 쏟아낸 정황도 드러났다. 2014년 9월 말에 생산된 문건들에는 “(이 사건의 위헌제청사건을 접수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단일대오 할 필요”(9월24일), “(법외노조일 경우 보조금이 제한되고 단결권·단체교섭권이 제한된다는 주장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 “(서울고법의) 효력정지 결정은 부당하다”(이상 9월25일) 등 고용부 쪽 편을 드는 논리가 다수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BH(청와대) 폴더엔 1심 ‘보고자료’

이와 함께 행정처가 이 사건 1심 때부터 재판부와 긴밀히 연락하며 소송 진행 경과와 선고시기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청와대에 ‘직보’한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2013년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전교조의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여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1심 판결 때까지 미루는 결정을 했다. 당시 임 전 차장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BH’(청와대) 폴더에서 발견된 ‘전교조 사건 보고자료’ 문건(2014년 1월 작성)에는 “피고(고용부) 쪽 상황 볼 때 2회 기일 때 변론을 종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재판장 의견으로는 6~8월에 선고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피고 의견에 따라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보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행정처가 재판장에게 재판 진행 상황을 직접 물어본 뒤, 이를 정리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문건에는 “(정부의 노조 자격) 직권취소 결정은 법령상 근거 없이도 허용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정부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도 나온다. 실제 1심은 ‘재판장 의견’대로 2014년 6월19일에 선고가 났는데, 재판부는 고용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재판 거래’ 의혹은 지난 5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대법원 자체조사단도 살펴본 내용이다. 하지만 행정처가 공식접수일 이전에 ‘재항고 이유서’를 확보한 이유나 1심 재판장에게 사건 경과를 확인한 이유, ‘BH’ 폴더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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