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잊을 만하면 '의문의 역주행' '음원 사재기' 논란 반복, 왜?

이유진 기자 yjleee@ kyunghyang.com 2018. 7. 2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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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닐로 이어서 이번엔 숀 사재기 의혹에 다시 불붙여 ‘숀 안 대고 닐로 먹기’ 회자 아이돌 팬들 새벽 총공전에 제도 개선했지만 효과 미미 일각 한국적 고질병 분석 속 다양한 개선안 쏟아져나와 논란 법정으로 비화 조짐도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사라졌는가 싶으면 다시 고개를 든다. 가요계 ‘음원 사재기’ 논란이다.

지난 4월이었다. 가수 닐로의 ‘지나오다’가 인기 아이돌의 곡들을 제치고 갑작스럽게 음원 차트 1위를 하면서 사재기 논란이 불거졌다. 그보다 앞선 지난 1월엔 닐로와 같은 소속사인 장덕철 역시 사재기 의혹의 대상이 됐다. 둘의 공통점은 거대 팬덤이 없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가수이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외에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최근 사재기 의혹에 다시 불을 붙인 가수 숀의 경우도 비슷하다. 인디밴드 ‘칵스’의 멤버인 숀이 지난달 27일 음원을 발표한 ‘웨이 백 홈’(Way Back Home)은 걸그룹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을 누르고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다. 숀의 소속사가 닐로 소속사의 협력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의혹은 증폭됐다. 일부 누리꾼 사이에선 “숀(손) 안 대고 닐로(날로) 먹기”라는 조롱 섞인 유행어도 생겨났다. 숀의 소속사 디씨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7일 공식 입장을 내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 노래를 소개한 것이 전부”라며 “사재기나 조작, 불법적인 마케팅 같은 것은 없다”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 새벽 음원사이트는 전쟁터?

“잠시 후 밤 11시 총공타임이 시작됩니다. 가이드 참고하셔서 새벽 차트를 지켜주세요!” 늦은 밤 트위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이다. ‘총공’은 총공격의 줄임말로,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1위로 만들기 위해 이용자 수가 적은 시간대를 골라 집중적으로 음원 스트리밍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트리밍’이란 인터넷에서 음악이나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이다. 총공계정이 따로 있어 상황을 진두지휘하며, 음원사이트 ID를 모집하고 운영하기 위한 음원 모금계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특정 가수의 사재기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하는 것도 대부분 총공에 나섰던 아이돌 팬들이다. 한 아이돌 그룹의 팬 ㄱ씨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닐로나 숀의 곡은 팬들이 총공을 퍼붓는 새벽 시간 차트에 등장해 빠른 상승세로 1위에 도달했다”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가수가 새벽 시간에 1위를 차지한 것은 조작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새벽 시간을 둘러싸고 차트 경쟁이 끊이지 않자 음원 사이트들은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11일부터 이용자 수가 적은 오전 1시에서 7시까지 6시간 동안 시간별 차트를 발표하지 않는 ‘차트 프리징’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심야 시간 이용자가 약 2% 감소하는 등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숀의 노래는 역주행 속도가 앞선 경우들보다 2~3배 빨랐다. 국내 6개 주요 음악 사이트의 음원 사용량을 집계하는 가온차트 주간 순위 추이를 보면 장덕철은 100위권 진입에 7주, 닐로는 4주 만에 1위를 달성했다. 반면 숀은 26일 2주 만에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 사재기 논란, 한국만의 문제일까

일각에선 음원 사재기 논란을 두고 ‘팬덤’ 문화와 음원 시장 구조를 지적하며 ‘한국식 병폐’라고 분석했다. 한 음반 기획사 관계자는 “닐로나 숀 논란 이전부터 십수년간 음원 차트가 팬덤끼리 경쟁을 부추겨 과잉 판매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한국의 음악 차트는 영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말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외국의 경우 미국의 빌보드, 일본의 오리콘 등 특정 유통사, 음반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차트가 존재해서 공신력과 역사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은 음원 유통사의 차트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집단 스트리밍에 동참하는 팬덤의 행위나 사재기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차트가 음원 사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그런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석도 있다. 디지털 음원시장의 발전과 성장이 빨랐던 만큼 이로 인한 부작용이 한국에서 먼저 등장한 것뿐이라는 의견이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음원사이트가 존재하는 등 디지털 음반 시장이 가장 앞서 발달한 나라”라며 “해외에서는 스트리밍 시장이 다운로드 시장을 앞선 게 불과 3년 정도이지만 한국은 훨씬 이전에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해외에서 급성장하면서 최근 빌보드와 같은 해외 차트에서도 ‘음원 줄세우기’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음원 줄세우기는 한 앨범에 담긴 수록곡들이 연달아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걸 말한다.

닐로

■ 이대로는 안돼…수사 의뢰까지

사재기 논란을 바라보는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가요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김작가 평론가는 “거시적으로 보면 팬덤의 총공이나 기획사의 바이럴 마케팅은 큰 차이가 없다”며 “모두 외부적 요인이 차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시간 차트를 노출해 유통사, 음반사가 이익을 얻는 구조를 벗어나 주간차트 전환, 음원사이트의 큐레이션 기능 강화 등의 방법들을 사용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차트 프리징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한다”며 “실시간 차트를 오전 8~9시부터 오후 7~8시까지만 운영하는 게 차트 프리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요계 큰손들도 문제 개선을 촉구했다. 가수 겸 프로듀서 윤종신은 지난 18일 트위터를 통해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떡하든 올리는 게 목표가 됐다”면서 “실시간 차트와 ‘톱 100’ 전체재생 이 두 가지는 확실히 문제라고 본다. 음원차트 톱 100 전체재생 버튼을 없애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은 같은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업계의 여러 회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마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우선 조사를 의뢰하고 추가 결과에 따라 검찰에도 이 문제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숀 측은 지난 19일 직접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수사 의뢰 요청서를 접수했다.

연예기획사 매니저들 단체인 한국매니지먼트연합 관계자는 “이미 수차례 음원 사재기 문제가 지적됐고 닐로 논란 당시 문체부에 공문을 보내고 공정위에 제보도 했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못했다”며 “정직하게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논란 종식을 위해 유관 부처와 업계가 위원회 구성 등의 협의를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음원 사재기 의혹과 관련해 데이터 분석 업체를 선정하고 멜론 등 6대 음원사이트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자료를 받아보는 대로 차트 집계 방법 등을 분석하고 전문가 의견을 구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아직까지 음원 차트 논란과 관련해서 공정위에 조사 의뢰가 접수된 건 없다”며 “일단 신고서가 접수되면 공정거래법이 적용 가능한 사안인지 판단해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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