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밑이 어둡다? 수장고에서 '발굴'한 국보들
[경향신문] “좋은 유물 찾고 싶으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를 발굴하라”는 말이 있다.
객쩍은 소리가 아니다.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는 41만 여 점의 문화유산이 소장돼있다. 물론 절대 다수의 유물이 제대로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 한강 범람에 대비하여 한강의 수위보다 높게 조성했고, 철통 보안 속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보물창고’란 명성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문화재 사연
그러나 40만점이 넘는 문화재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간수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유물의 상당수가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발굴조사가 오죽했겠는가. 전문가의 식견이 부족했던 졸속발굴이 적지않았고, 조사보고서도 제대로 작성되지 않은 예가 허다했다. 보고서에 누락된 유물의 행방은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발굴에 간여했고, 총독부 박물관에서 일했던 일본인 학자나 직원들은 해방 이후 본국으로 떠났다. 한국인 중에 발굴이나 유물관리 전문인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더구나 한국전쟁 때 부산 피란 등 유물이 이곳저곳으로 떠돌았던 이력도 박물관 소장품의 관리 정리를 어렵게 했다. 박물관 소장품에게 부여하는 난수표 같은 유물번호를 봐도 박물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다.
■남산 1,2,3호, K 93, M1…암호같은 유물번호
예컨대 ‘본관품 1,2,3호…’으로 시작되는 유물은 조선총독부 박물관(본관)에서 인수받은 것들이다. ‘개 1,2,3호~’는 해방 이후인 1946년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에서, ‘덕~’은 이른바 1969년 덕수궁 이왕가 박물관에서 인수받은 유물번호이다. ‘신수~’는 해방 이후 새롭게 구입 또는 인수했거나 기증받은 유물의 번호이다. 특히 ‘남산~’이나, ‘K~’, ‘M~’자로 시작되는 심상치않은 유물번호도 있다. 그러나 그 정체를 알면 실소가 터져나온다.
‘남산~’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국립박물관에 편입된 남산의 국립민족박물관 유물을 일컫는다. ‘K~’로 시작되는 유물번호는 전란 등으로 인해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으로 여겨졌다가 뒤늦게 찾아낸 유물에게 부여한 가(假)번호, 즉 임시번호이다. 출처가 어사무사한 경우에도 일단 붙인다. ‘K’는 ‘가(Ka)’의 영어표기란다. 그래도 ‘K~’는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찾은 유물이거나 출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물건들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M’(번호가 없다는 뜻인 무번의 첫 영어 표기)자를 붙인 유물번호는 ‘K~’와는 또 다르다. 소장품으로는 남아있는데, 도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유물들을 그렇게 표시했다. 대체 박물관에 어떤 경로로, 왜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는 유물이라고 해서 ‘출처 불명의 유물’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출처불명의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1만4000여점이 있다.
그 중 국보도 있다. 1907년에 충남 부여군 규암면 절터의 쇠솥에서 발견됐다는 국보 제239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이 불상은 출토지(부여 규암리)와 시대(백제 7세기)를 알 수 있는 보물이지만 어떻게 해서 박물관에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기에 박물관의 공식유물로는 M(무번·無番)으로 분류됐다.
■수장고에서 발굴한 ‘대동여지도’
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굴’한 유물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다.
고산자 김정호의 역작으로 알려진 대동여지도의 목판은 현전하지 않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어졌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어독본’은 “흥선대원군이 전국을 돌며 지도를 완성한 김정호를 국가기밀누설죄로 죽였고, 이후 대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를 찍었던 목판을 모두 소각했다”고 썼다. 무지몽매한 조선의 위정자, 즉 대원군이 전국을 3번이나 답사하고 백두산을 8번이나 등반하면서 지도를 완성한 김정호 같은 위인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새빨간 가짜뉴스였다. 그런데도 이 가짜뉴스가 1993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읽기 교과서에까지 끈질기게 등장했다. 따라서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는 대원군 시대에 불태워버린 대동여지도의 목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이 대동여지도 목판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원래 이 대동여지도는 1923년 조선총독부가 최한웅이라는 인물에게서 구입한 총독부박물관 소장품이었다. 따라서 해방 이후 ‘본관품(총독부 소장품) 9739호’라는 유물번호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됐다. 그러나 이 유물은 한국전쟁 당시 전란을 피해 부산~경주(박물관)을 전전했다가 1970년대 서울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었을 때 새로운 유물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렇게 부여받은 유물번호가 즉 ‘K 93호’라는 임시번호(가·假)였다. 대동여지도는 원래 본관품 9739호라는 유물번호로 등록돼있었는데 전란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유물번호를 잃어버리고 K93이라는 임시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는 1923년 이래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거쳐 한국전쟁의 와중에서도 부산-경주를 거쳐 1970년대 다시 서울의 국립박물관 수장고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일관되게 박물관의 손길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 직원들은 누구도 박물관의 목제품 수장고에 있었던 대동여지도 목판 11판(앞뒤 22개 판목)이 진품인 줄은 몰랐다. ‘대원군에 의해 불태워진 대동여지도 목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선입견’ 탓이었다. 게다가 이 목판의 일각에는 재사용되고 미완성된 흔적도 보였으므로 그저 ‘미완성 복각품’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러다 199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전국의 고지도목록을 작성중이던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 전문가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물론 전문가들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약 3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돌아서던 전문가들에게 당시 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가 “저기요!”하면서 운을 뗐다.
“박물관 소장품 중에 흥미로운 목각품이 있는데 진위를 판단해달라”는 것이었다. 박물관 관계자의 말을 들은 당시 고지도 전문가들은 이 목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대동여지도 목판이 틀림없었다.
이 대동여지도 목판은 2008년 보물 1581호로 지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굴한 대표적인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수장고에서 찾아낸 신라 ‘이사지왕’
이른바 ‘수장고 발굴’로 찾아낸 역사적인 기록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 강점기에 졸속으로 조사하고, 제대로 보고서조차 내지 않은 몇몇 발굴에 대상으로 이른바 ‘일제수집유물 복원 사업’을 벌여왔다. 1921년 전문가 없이 단 4일 만에 졸속발굴한 탓에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유구와 유물의 출토상태마저 재대로 기록되지 않은 금관총이 눈에 띄었다.
박물관측은 일단 70여년 이상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금관총 출토 유물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복원했는데, 이때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고분의 주인공이 허리에 차고 있었던 환두대도(고리자루 큰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명문이 확인한 것이다. 칼집의 금속부에 새긴 명문내용은 이사지왕(이斯智王)이었다. 금관총의 주인공은 바로 ‘이사지왕’이었던 것이다. 그후 2년 뒤인 2015년에는 새롭게 재발굴한 금관총에서 또다시 ‘이사지왕’ 명문이 새겨진 칼집이 나왔다. 물론 ‘이사지왕’이 과연 누구인지는 아직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금관총의 주인’임을 온 세상에 알린 이사지왕의 현현은 ‘수장고 발굴’의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명문을 토대로 주인공을 특정짓는 것은 학계의 몫이다,
금관총은 물론,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의 주인공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4세기 후반~6세기 전반을 누볐던 마립간 시대의 임금들(내물왕·실성왕·눌지왕·소지왕·지증왕) 중 한사람일 것이다.
■수장고에서 일어난 ‘출생의 비밀’
물론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있었다.
1933년 4월 경북 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집주인(김덕언씨)과 일본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각각 반씩 찾아낸 황금 유물이 있었다. 귀고리와 목걸이, 팔찌 등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아리미쓰가 일본 발굴기관과 함께 발굴한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쪽은 일본 제실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으로 기증됐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일본에 있던 반쪽 유물이 돌아와 ‘합체’ 됐다.
1967년 합체된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팔찌(보물 454호)와 금귀고리(보물 455호), 금목걸이(보물 456호)는 보물이 되었다. 이중 금귀고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귀고리 대신 엉뚱한 금귀고리(경주 황오동 출토)를 문화재 심의 때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재위원들은 황오동 금귀고리를 노서리 금귀고리인줄 잘못 알고 ‘보물 455호!’라고 탕탕 지정해버린 것이다. 어떤 착각이었을까. 아마도 도쿄에서 가져온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귀고리를 수장고에 보관할 때 황오동 금귀고리와 착각했을까. 물론 문화재를 심의한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간에 이후 모든 전시도록과 전시회에는 노서리 금귀고리 대신 황오동 금귀고리가 버젓이 ‘보물 455호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귀고리’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 어이없는 실수를 지적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인 학자 후지이 가즈오(藤井和夫)였다. 후지이는 2000년 당시 이한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의 논문에 등장한 ‘보물 455호 노서리 금귀고리’ 사진에 황오동 귀고리가 잘못 실려있는 것을 보고 연락해왔다. 후지이는 일제강점기에 노서리 고분을 발굴한 아리미쓰 교이치의 지인이었다,
어쨌거나 보물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문화재 재심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2009년에 열린 문화재지정 재심의 때 놀라운 결정이 내려졌다.
박물관과 문화재관리국의 실수로 박힌 돌(노서리 금귀고리) 대신 슬그머니 보물이 된 굴러온 돌(황오동 금귀고리)이 아예 ‘보물 455호’라는 이름을 획득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보물목록을 보면 제454호와 456호는 노서리 215번지 출토 금팔찌와 금목걸이인데 가운데 455호에 ‘황오동 금귀고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때 문화재 위원회는 “황오동 귀고리가 더 예쁘다”는 것이었다.
신생아실에서 바뀐 아이들의 운명 같지 않은가. 이거야말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막장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용기가 필요한 수장고 공개
이밖에도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1926년 서봉총 발굴 유물 가운데 금반지 2점과 귀고리 5점 등 9점의 유물이 분실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101호) 사자상도 실은 지난 60여 년 동안 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다.
박물관의 수장고는 금단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문화유산은 제대로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직원들도 지문을 등록한 10여명에게만 출입이 허용된다.
유물은 습도와 온도 등 외부 요인에 민감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에도 보존환경은 오염·왜곡될 수 있다. 서화나 직물, 칠기류는 유물마다 유지해야 하는 습도와 온도가 또 다르다. 그러니 회화유물들의 경우 3개월 동안 전시하고, 9개월은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유물보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도난이나 화재 등 불상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수장고 공개를 꺼리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배기동 관장의 취임 1년을 맞아 그동안 금단의 영역이었던 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특별히 석사과정 이상의 연구자에게 상시 개방된다는 방 3칸 40평 규모의 열람실이 눈에 띈다. 수장고 전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싶지만 여건상 그럴 수는 없다. 배기동 관장은 “하지만 연구자들이 언제든, 즉석에서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가 수장고 유물을 활용해서 논문이나 글을 쓴다면 그 자체가 유용한 간접공개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국립중앙박물관 ‘망실품’ 유물이 1만4000점이나 된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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